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꿈은 가난하지 않다 2011년 10월 14일
작성자 김기석

꿈은 가난하지 않다

 

언덕을 걸어 넘는 데 앞서 가던 한 젊은이가 자기 흥에 겨웠는지 투 스텝으로 걸음을 전환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침부터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저렇게도 경쾌할까. 자기 내면에 들려오는 리듬에 따라 그는 ‘엇박자’를 만들며 스스로 즐기고 있었다. ‘비뚜로’, ‘어긋나게’를 뜻하는 접두사 ‘엇’ 속에는 당연의 세계를 뒤집는 경쾌함이 있는 것일까?

세계의 금융 중심지인 월가에서 벌어진 시위가 국경을 넘고 있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는 결국 1%에 속하는 이들을 위해 99%의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의 이야기가 정확히 전복된 시대이다. 시위에 참여한 젊은이들은 탐욕스런 자본의 독주를 향해 ‘아니오’라는 경고 카드를 내보임으로 ‘엇’을 만들고 있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입을 맞추는 세상을 노래했던 시편 시인의 노래가 다시금 불리워지기 시작한 것인가? 사람들은 시위대가 집결했던 주코티 광장을 자유 광장이라 부른다 한다.

아랍권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의 불똥이 엉뚱하게도 이집트 기독교인들에게 튀고 있다. 교회당에 대한 방화 사건과 노골적인 종교 차별에 항의하는 이들과 이슬람의 충돌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종교가 평화의 씨앗이 되기보다는 불화의 씨앗이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데 문득 정현종 시인의 <요격시 2>가 떠올랐다. 시인은 다른 무기가 없어 마음을 발사한다면서 이렇게 노래한다.

“토마호크 미사일은 떨어지면서 새가 되어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스커드 미사일은 날아가다가 크게 뉘우쳐 자폭했습니다./재규어 미사일은 떨어지는 순간 꽃이 되었습니다./패트리어트 미사일은 날아가다가 공중에서 비둘기가 되었습니다./…/자기악마 미사일은 어떤 집 창앞에 떨어지면서 나비가 되었습니다.”

눈부신 상상력이다. 어처구니없는 꿈이라고, 시인의 몽상일 따름이라고 말할 것인가? 시인은 말하면서 감추고 감추면서 말하는 사람이다. 시인은 지금 진정한 평화의 길이 무엇인지를 해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역사 변혁은 꿈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세상을 꿈꾸었던 주전 8세기의 예언자들도 있지 않은가. 예언자들은 역사에 ‘엇’을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어깃장을 놓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꿈을 이 땅에 나르는 사람들이다.

언덕을 넘던 그 젊은이의 경쾌한 걸음걸이처럼, 이 험준한 역사의 언덕을 가볍게 그리고 즐겁게 넘을 수는 없을까? 하늘의 리듬이 가슴에 깃들면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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