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별이 된 사람 2011년 09월 09일
작성자 김기석

별이 된 사람

 

작센하우젠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길가에는 아름드리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강에는 작은 배들이 떠있어 한가로워 보였다. 국도변의 집들은 깨끗했고, 햇살을 뚫고 달리는 자전거 라이더들도 건강해 보였다. 베를린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작센하우젠을 찾은 것은 그곳에 있던 나찌의 수용소를 보기 위해서였다.

1936년 평화의 제전인 베를린 올림픽이 열려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실력을 겨루기 위해 집결하던 바로 그 때, 나찌는 그곳에 정치범들과 양심수들, 사회 부적응자들, 전과자들, 동성애자들, 여호와의 증인, 집시 등을 가두기 위해 대규모 수용소를 만들었다. 1938년 이후에는 독일에 살던 유대인이 잡혀왔고, 전쟁 포로들도 많이 이송되어 왔다. 점차 그곳은 살육의 현장으로 변해갔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용광로 속에서 한 줌 재로 변했고, 전쟁 포로들은 학살당했다.

그 흔적을 본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그곳에서 죽어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절망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이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모두가 살고자 태어난 생명 아니던가? 우수한 의사들을 불러 모아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했던 곳에 섰을 때는 '이것이 인간인가?' 하는 해묵은 그러나 통절한 질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자칫하면 악마의 형상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별히 악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모든 사람이 악마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섬뜩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워 몸조차 무거워졌을 때, 히틀러의 친위대가 운영하던 감옥에 들어서게 되었다. 건물 밖에는 세 개의 나무 기둥이 서 있었는데 그것은 죄수들을 매달아놓고 고문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고문당하는 이들의 처절한 비명소리는 또 다른 고문이 되어 동료 죄수들의 몸과 마음을 찢어놓았을 것이다. 감방의 창문은 나무 가리개로 가려 놓아 빛이 비쳐들지 못하게 해놓은 곳도 있었다.

감방에는 그곳에 수감되었던 이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무심히 지나가다가 문득 낯익은 이름과 마주쳤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 그는 독일 교회가 모두 나찌의 악령에 들려 히틀러의 체제를 찬미하고 있을 때 홀로 깨어 고백교회 운동을 벌였던 반체제 인사였다.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직은 진실의 얼굴을 보고, 그것을 증언하기 위해 고난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 아니던가. 그의 강직한 얼굴을 보는 순간 이명처럼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그가 있었기에 독일교회는 역사의 준엄한 단죄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가장 어두운 시대에도 별처럼 빛나 길 잃은 사람들의 앞길을 비추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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