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다 2010년 03월 07일
작성자 김기석

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인 세계가 내적인 통전성을 지니고 있으며 땅, 바다, 공기, 숲, 산 그리고 인류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눈에 ‘좋았다'는 것을 확언한다. 창조의 보전은 사회적 측면과 생태학적 측면을 지니는데 사회적 측면은 정의를 동반한 평화로서 인식되고 생태학적 측면은 자연 생태계의 자기갱신적․지속적 성격에서 인식된다.”

 

“우리는 땅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확언한다…우리는 땅을 단지 시장성있는 상품으로만 취급하고, 가난한 자들을 희생시키면서 투기를 허용하고, 땅과 그 생산물의 착취, 불공평한 분배 오염을 조장시키고, 직접 땅으로부터 먹고사는 사람들이 땅의 참된 위택자가 되는 것을 막는 여하한 정책에도 저항할 것이다.”

 

1990년 JPIC(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 서울대회에서 채택한 최종 문서 가운데 나오는 신학적 확언의 일부이다. 어쩌면 한국교회 갱신의 돌쩌귀로 작용할 수도 있는 모임이었으나, 대형화를 지향하던 교회들은 한결같이 이 대회에서 논의된 담론들을 외면했다. ‘홍수와 무지개 사이’에서 살고 있는 인류에게 희망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오직 삶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 ‘더 많이, 더 편리하게’라는 소비사회의 구호가 마치 행복으로 가는 열린 문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절제를 요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비의 증대가 곧 근원적 행복과 직결될 수 없다는 사실은 후기 산업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보편적 경험이다.

 

일단의 사람들이 나무 위에 올라가 자기가 딛고 서있는 가지에 톱질을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가지가 부러지며 한 사람이 땅으로 떨어졌다. 나무 위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는 땅에 떨어진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 그들은 속으로 혀를 차고는 톱질을 계속했다. 브레히트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매우 예언적이다.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대재앙을 예고하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온다. 사람들은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익숙하던 삶의 방식을 바꿀 생각은 품지 않는다. ‘먹고 죽자’는 방탕한 허무주의 때문인가? 지금까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온 인류의 검질김을 믿는 낙관론 때문인가?

 

야훼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둘러보시며 흐뭇해 하셨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고, 보이지 않는 연대의 끈이 그 모든 세계를 그물망처럼 연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아직 어렸을 때 사람들은 삶의 우주적 차원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밤 하늘의 별을 보고 감탄했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통해 신의 음성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삶은 지상의 인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종교조차 이 병든 세상을 치유할 능력이 없다. 아니, 생각조차 없다. 대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생태학적 개종자들이 늘어나야 한다. 불편을 즐겁게 감수하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꿈을 가슴에 품고 해산의 수고를 하는 이들이 필요하다.

 

교회 지붕에 햇빛발전소를 세우면서 이 척박한 도심지 교회의 옥상마다 햇빛발전소가 세워지기를 꿈꾸었다.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도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감동하고 함께 동참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지붕을 바라볼 때마다 마치 그곳에 푸른 숲이 들어선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다. 그와 동시에 몇몇 교우들과 더불어 시작한 것이 ‘이산화탄소발생부담금운동’이다.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온 교우들이 먼저 시작한 이 운동은 조금씩 조금씩 참여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어떤 이들은 일주일간의 차량 운행거리를 계산해 부담금을 내고 있다. 더 적극적으로 이 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은 육류를 소비할 때마다 메탄가스 발생 부담금을 내기도 한다. 이 시대의 정신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구성해나가려는 이들의 이런 아름다운 실천은 미약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본래 희망이란 희박한 것이 아니던가? 이들이야말로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이산화탄소발생부담금과 메탄발생 부담금, 그리고 각자가 욕망을 절제한 후 그것을 액수로 계산해 내는 ‘녹색꿈헌금’을 모아 우리는 사막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몽골의 스텝지역에 ‘은총의 숲’을 가꾸기 시작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더불어 시작한 이 일은 이제 초기 단계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숲이 되살아나고 숲과 더불어 마을 공동체가 살아나는 광경을 머리에 그리며 이 일을 추진하고 있다. 몽골의 사막화는 더 이상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문제일 수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이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다. 사막에 꽃이 피어나고 광야에 물이 흐르는 광경을 그렸던 옛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꿈을 실현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저기서 탄소중립이나 탄소상쇄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부유한 기업이나 나라에 의해 악용된다면 세상의 양극화는 보다 더 심화될 것이다. 이 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고, 크게는 문명을 전환시키는 일이다. GDP가 늘어나는 것을 발전이라 여기는 사고가 인류를 사로잡는 한, 생태계의 파괴가 가속화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생태계의 파괴는 곧 인류의 멸절로 이어질 것이다. GPI(genuine progress index)가 되었든 GNH(gross national happiness)가 되었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몹시도 필요한 때이다. 우리 모두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은 ‘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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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철(11 02-15 04:02)
감사합니다.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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