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기로에 선 한국 기독교 2009년 09월 16일
작성자 김기석

기로에 선 한국 기독교

-최형묵, <<한국 기독교와 권력의 길>>

 

한국 개신교의 몰락을 예고하거나 예견하는 목소리들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런 음울한 전망은 안티 기독교 진영뿐만 아니라, 기독교 내부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개신교회에 대한 호감도가 낮아지고 교인 수가 줄어드는 것과 목회자들에 대한 신뢰도 추락은 정비례한다. 대중들에게 각인된 개신교의 모습은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일부 대형교회와 목회자들의 이미지와 일치한다. 물론 이런 현상에 대해 억울해 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예수 정신을 꼭 붙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교회와 목회자들은 속이 탈 뿐이다.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도 있지만, 개혁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견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개신교의 몰락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라며 씁쓸해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우리 시대는 냉소의 시대”라고 말했는데, 젊은 목회자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냉소주의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보존의 욕망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냉소주의의 특색이다. 그 차가운 웃음은 실은 현실에 순응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제일 때가 많다.

 

한국 교회, 희망이 있는가? 이 질문은 시의적절하지만 무책임하다. 사실 희망이란 저절로 주어지거나 그저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속에 희망이 있으면 희망은 있는 것이고, 희망이 없으면 없는 것이다. 교회의 희망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응시와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비난 게임’(blame game)은 사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응시는 두 가지 방향성을 가진다. 내부자의 시선이 그 하나이고, 외부자의 시선이 다른 하나이다.

 

탄식은 있지만 정밀한 분석은 부족한 것이 교계의 현실이다. 그런 중에 좋은 목회자이면서 좋은 신학자인 최형묵 목사(이하 최형묵)의 <<한국 기독교와 권력의 길>>은 “그 내부에서 바라보며 대안을 찾는다”는 부제가 가리키듯 내부자의 시선으로 한국 교회를 응시하고 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병력을 추적하는 의사처럼 치열하게 바라본다. 그런 바라봄의 결실인 이 책은 한국교회가 이 지점에 당도하기까지의 궤적을 비교적 적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 부정적 시선에 가로막혀버린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을 제시하면서 대안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신앙적 문법

제1장에서 최형묵은 "한국 기독교는 단일한 실체인가?"를 묻는다. 이 질문은 교회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노정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질문이다. 한 하나님, 한 그리스도, 한 성령 안에 있는 실체로서의 교회는 하나이지만,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 속에 자리한 교회는 다양한 모습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주류 기독교가 보수적 색채를 띠고 있다면,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진보적 기독교도 분명히 있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1970, 80년대는 한국 기독교의 급성장기인 데 이 시기의 성장을 주도한 것은 물론 보수적 기독교였다. 이 때 벌어진 각종 대형집회는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종교임을 사람들의 뇌리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진보적 기독교는 또 다른 의미에서 큰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개발독재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단연 돋보였다. 하지만 이 두 진영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되고 있었는데, 정교분리를 표방하던 보수 기독교 진영은 정권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대투쟁 이후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진행되면서 진보적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줄어들게 되었고, 기독교는 점차 보수적 집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1989년에 결성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보수적인 정치 견해를 표명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고, 사회적 쟁점이 되는 사안마다 마치 이익집단처럼 행동했다. 이 과정에서 대형교회와 그 구성원들의 비리가 언론에 의해 노출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시민사회의 도덕적 규준과 심각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조금씩 노골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도 이 때부터이다. 하지만 현상에는 뿌리가 있게 마련이다. 사회학자인 정수복은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라는 책에서 "사회구성원들의 행위의 밑바닥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사고방식을 '문화적 문법(cultural grammer)'이라고 명명하면서, 그 문화적 문법은 "그 집단구성원들 사이에 일체감을 강화시키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변화를 거부하는 특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최형묵은 한국 주류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문법을 나름대로 분석해내고 있다.

 

그가 예시하고 있는 것은 경제적 성장을 신앙의 성취로 인식하는 현세주의와, 타자와의 소통보다는 일방적 태도를 고수하는 자기중심주의(23)이다. 이 둘은 '힘에 대한 숭배 성향'으로부터 파생된다. 제국과 성전체제에 대한 항거와 반역의 봉화였던 기독교가 힘에 대해 숭배한다면 그것은 자기 배반이 아닐 수 없다. 최형묵은 대형교회들의 성장 동력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는 선발 대형 교회와 후발 대형 교회를 나누는데 그 가름의 기준이 되는 때는 대략 1980년대 후반이다. 선발 대형 교회는 개발독재 체제하의 한국 사회의 흐름을 잘 붙든 경우라 할 수 있다. 교회는 돌진적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소외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역할을 감당했고, 전통적인 공동체성이 와해되어 갈 때 교회는 그 대안이 되었다.(26). 교회는 구성원들에게 성찰하는 신앙보다는 즉각적인 응답을 추구하는 신앙을 주입했다. 경제적 풍요와 출세는 신실한 믿음의 증거처럼 인식되었다. 현세주의는 이렇게 기독교인들의 내면에 각인되었다. 이 시기의 교회 성장은 목회자의 절대적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권력의 독점화 현상은 당연한 결과였고, 신앙도 균질화 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목소리는 용납되지 않았다. 나중에 나타난 교회 세습과 목회자의 윤리 문제는 내부로부터의 제어 기능 및 자정 능력을 기르지 못한 탓에 발생한 문제들이다.

 

후발 대형 교회의 등장은 민주화가 진전되는 과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대개 중상층 이상의 사람들로 구성된 이 교회들은 상당한 합리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창의성과 권력 분점이 요구되던 시대정신에 맞춰 교회는 그런 가치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평신도들의 지도력이 존중되고, 재정의 불투명성도 극복되고, 비리에 휘말리는 일도 드물었다. 도덕적 의제를 선점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한국 교회에 근본적 변화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그 밑바닥에는 여전히 힘에 대한 숭배 성향이 강하고, 성장주의적 가치관을 따르는 현세주의와 자기중심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정수복은 정재식의 말을 빌어 기독교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려면 "현실 긍정과 타협의 자세를 버리고 초월적 세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현실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새로운 삶의 원칙을 제시하는 예언자적 전통을 제시해야 한다"(앞의 책, 544쪽)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대형교회들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변혁을 지향하는 진보적 기독교도 이런 면에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문제는 목회자들과 회중 사이의 신념상의 이질성이 너무 컸다는 점이다. 사회에 대해 진보적인 견해를 가진 목회자들도 교회 안에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 민주화 이후 "국가권력의 성격이 변화된 상황에서 변혁보다는 적응의 태도를 취한"(31) 것도 그 한 요인이라 할 수 있겠다. 사회와 교회의 변혁을 지향하고, 변혁을 지향하는 사회적 세력들과 연대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이런 노력들은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힘에 대한 선망을 극복하려면

제2장에서 최형묵은 주류 한국 기독교의 보수성의 뿌리를 탐색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 뿌리는 전래 초기에까지 뻗쳐 있다. 한국 교회가 힘에 대한 동경을 내면화하게 된 것은 위기가 일상화 되었던 근세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래 초기부터 기독교는 '힘의 종교'로 수용되었다. 학교와 병원을 짓고, 근대적 제도를 도입하고, 탐관오리의 학정이나 전쟁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선교사들은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지도급 인사들이 기독교를 수용했던 것도 기독교 신앙을 서구적 근대화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최형묵은 1907년의 대부흥운동을 한국 기독교가 정치적으로 보수화되게 된 계기라고 평가한다. 선교사들은 기독교 신앙을 통해 한국인들이 점차 민족독립의식을 갖게 된 현실을 매우 위험하게 생각했다. 선교본국과 일제 당국과의 갈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부흥운동의 방향을 '성령 운동'을 통한 상한 영혼의 치유로 돌려놓았다. 결국 불의에 대한 공분과 시대에 대한 아픔은 종교적 카타르시스를 통해 해소되고 말았던 것이다. 교회를 보존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교회는 이때부터 불의한 권력에 대해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 그래서 불온시 되지 않는 교회가 되고 말았다.

 

교회는 사회적 불안에 대한 대용물로 내세에 누릴 복락, 물질 축복을 약속했다. 세속적 욕망을 정당화하는 신앙적 논리는 불안과 궁핍에 시달렸던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더욱 강화되었다. 이렇게 해서 성장한 교회는 진리 자체를 독점한 듯한 태도를 견지했으며, 타자들과 건강한 소통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쟁점들에 대해 공공의 영역에서 함께 토론하고 검증하기보다는 자기의 기준을 절대적 기준인양 제시하거나, 그도 여의치 않을 때는 실력으로 저지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동원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이 많아지면서 교회는 자신의 권력에 도취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배의 포기'를 가르쳤던 예수 정신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힘에 대한 선망을 내면화시키는 기제들이 교회 안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안목이 돋보이는 것은 이 대목이다. 그는 이런 의식이 교회 내에서 구조화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한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집합적 관행들은 무의식적인 삶의 양식이 되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교회의 직분이 그렇다. 직분은 역할의 배분이라기보다는 계급적 서열로 인식되고 있다. 예배의식도 마찬가지이다. 목회자 중심의 예배의식에서 평신도들은 수동적 객체로 전락하기 일쑤이다. 이로써 예배는 "위계화된 질서를 최종적으로 승인하고 강화하는 기제"(67)가 된다. 예배 공간과 여타의 공간을 갈라놓는 공간 배치나, 교회 안에서 사용되는 호칭들도 위계적 질서를 고착화시키는 기제가 된다. 최형묵이 지적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는 성서 번역의 문제이다. 한국에 나온 거의 모든 성경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거의 반말로 번역되어 있다. 이런 번역투는 섬기러 오신 주님을 제왕적 이미지로 고착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새로운 교회의 요청

제3장에서 최형묵은 대안을 모색하던 진보 기독교의 길을 탐색하고 있다. 저자는 진보 기독교의 뿌리를 일제치하의 민족적․사회적 저항운동에서 찾는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했던 해방직후부터 기독교를 통한 근대화의 실현을 꿈꾸었던 이승만 정부에 이르기까지 진보 기독교의 전통은 단절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4.19혁명의 성과를 뒤집은 5.16군사쿠테타는 숨죽이고 있던 진보적 기독교를 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삼선개헌안, 그리고 한일협정 비준이 시도되었을 때 일단의 기독교 인사들이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77) 경제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발생한 농민, 도시빈민, 노동자 등 민중의 문제에 관심을 보이던 진보 기독교계에 일대 각성의 계기가 된 것은 1970년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이었다. 1970년 11월 25일 신․구교 합동으로 드린 추모예배에서 김재준 목사는 추도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기독교도들은 여기에 전태일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나태와 안일과 위선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다."(78)

 

민중신학은 그렇게 해서 태동되었고, 진보 기독교는 한국 진보 사회운동의 요람이 되었다. 그것은 국내외적인 인적, 물적 네트워크 덕분이었다. 교회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용공 낙인에 대한 보호막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도적 1980년대 후반 민주주의가 제도 속에 정착되기 시작하면서 진보 기독교는 정권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며 민중의 현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반면 사회적 약자의 이해관계와 거리를 둔 채 이루어진 진보 인사의 정권 참여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게 되었고, 그들의 정치적 행동을 추동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발표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는 보수진영으로 하여금 위기감을 느끼게 만들었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다. 이때부터 한국의 진보 기독교를 대표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위상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보적 사회운동이 다양한 시민운동으로 분지해 나간 것도 진보 기독교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자본의 지구화, 군사적 패권의 확장으로 발생하는 폭력의 악순환, 지구 생태계의 파괴 현실은 진보적 기독교 진영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2000년대 들어 이런 문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진보 진영의 저변층과 복음주의 진영의 저변층이 연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전반적으로 보수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최형묵은 이 시대 기독교의 과제를 몇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자본의 횡포를 제어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에 대한 급진적 시각을 갖는 것, 대안적 세계화를 추구하는 세력과의 연대 모색, 생명․평화운동과의 긴밀한 결합, 소수자 운동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연대 강화, 기독교의 사회적 실천과 교회 및 신학의 유기적 결합 등이 그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성직자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교회의 모형을 추구해야 한다. 저자는 두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교회 해체 전략’으로 교회 중심주의를 부정하면서 탈교회적인 그리스도인의 존재 방식을 중시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재구성 전략’으로 앞서 이야기했던 바 위계질서를 내면화하도록 하는 교회 구조의 부정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다. ‘교회 해체 전략’이라는 용어는 ‘탈기독교’를 부추기는 것으로 곡해될 수도 있어 여전히 교회 중심적 신앙생활에 익숙한 이들 사이에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차라리 교회에 대한 전통적 이해의 틀을 확장하면 어떨까? 용산참사가 벌어진 후 촛불교회와 가톨릭교회는 그 곳에서 지속적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그 현장을 거룩한 장소로 바꿔냈다.

 

경계선에 서서

이제 다시금 묻는다. 한국 교회는 희망이 있는가? 제4장에서 최형묵은 희망의 단초를 제시한다. 권력화된 주류 기독교가 세속적 권력에 영합하는 길을 택했다면 새로운 기독교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초월적 전망을 제시하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 저자는 이런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진화심리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와 루이스 월퍼트의 견해를 참조하고, 니체의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을 끌어들인다. 그들의 논의는 참조할만한 것이지만 그 앞에 지레 주눅들 건 없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부정성을 노정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은 주인과 노예의 대립 자체를 넘어서는 세계를 바라보고 있고, 또 지금 여기에서 구원의 기쁨에 동참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유하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심판과 구원이 바로 지금의 문제임을 인식할 때 기독교는 희망의 닻을 올릴 수 있다.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세계의 특색을 ‘유동하는 공포’라는 말로 요약한다. 그 실체도 불분명하고, 위치도 알 수 없고, 형태도 불확실하고, 이리저리 유동하기에 종적도 원인도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가 사람들을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질서와 안정성을 위협하는 일들,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일들이 날마다 일어난다. 기독교는 과연 이런 시대에 빛과 소금일 수 있을까? 그 동안 한국의 주류 기독교는 현세주의와 자기중심주의를 강화해가면서 경이로운 신앙체험을 진부하게 만들어왔다. 기독교의 가르침이 오히려 마틴 부버의 말대로 ‘그대’의 세계에 다가서는 것을 가로막아 온 것은 아닌가?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자기들과 다른 견해를 가진 신학자들을 내쫓는 현실, 내세우는 명분은 보편적일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세속의 논리를 강화해주는 역할을 해왔던 기독교는 ‘유동하는 공포’ 시대의 ‘길’이 되기 어렵다.

 

지금 한국 기독교는 경계선에 서 있다. 자기 폐쇄적인 주류 기독교의 논리 속에 함몰될 것인가? 세상과 소통하는 개방성 신앙을 향해 길을 떠날 것인가? 최형묵이 가리켜 보이는 길은 물론 후자이다. 그는 한국 교회 현실을 조망하기 위한 분석의 틀을 우리에게 제공했다. 이제 독자들에게 남겨진 몫은 비판을 넘어 대안을 추구하는 것이다. 초월적 비전을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끌어들이기 위해 무수한 만남의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떠오른다. 울고 있는 성 다미아노를 꿈에서 만난 프란체스코는 “어찌 된 일입니까? 당신은 천국에 계시잖아요, 그렇죠? 그럼 천국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입니까?” 하고 묻는다. 다미아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그래, 천국에도 눈물이 있다네. 하지만 그것은 아직도 지상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눈물이지.” 그러면서 그는 프란체스코에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위험에 처해 있으니 어서 일어나게.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자네의 등으로 떠받치게. 온 교회가 나의 작은 예배당처럼 퇴락하고 무너져 내려 폐허가 되고 있다네. 교회를 일으켜 세우게!”(니코스 카잔차키스, <<성자 프란체스코1>>, 열린책들, 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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