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길은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2009년 07월 31일
작성자 김기석

길은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당연하지 않은가. 원망하는 것은 사람의 버릇일 뿐이다. 욕구가 좌절되면서 생기는 결핍의 감정을 사람은 어떠한 형태로든 채우려 한다. 거기서 나오는 것이 탓이다. 아장걸음을 배우는 아기는 넘어지면 금방 일어나지만, 곧잘 걷던 아이가 넘어지면 울음을 터뜨린다. 예기치 않은 좌절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를 달래느라 애꿎은 땅을 박차거나 꾸짖으면서 땅을 탓한다. 그제야 아이는 좌절감과 부끄러움을 딛고 일어선다. 문제는 어른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탓하기’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는 주체로 살지 못한다. 탄생과 죽음 사이의 외줄을 건너는 인생이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소낙비 그치고 햇살 뜨거운 여름날, 신작로 길을 발밤발밤 걷다보면 움파리가 곧잘 눈에 띄곤 했다. 흙이 곱게 가라앉아 맑아진 물 위로 하늘도 비치고 구름도 비쳤다. 가끔은 그 고운 흙에 지렁이가 꿈틀대며 기어간 흔적을 아득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은 인생에 대한 어떤 예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인생은 초월이 아니라 포월이라 했다. 뛰어 넘는 것이 아니라, 기어서 넘는다는 뜻이리라. 인생 참 만만치 않다.

 

어린 시절 어른들을 따라 바다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갯벌을 뒤져 망둥이 쏙 백합 대합을 잡고, 돌을 뒤집어 박하지를 잡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재미를 누리기 위해서는 먼 길을 걸어야 했다. 내리쬐는 햇볕에 정신이 몽롱해지면 잠시 멈춰 서서 거리를 가늠하곤 했다. 가야 할 길을 내다보면 막막하기 이를 데 없고, 돌아갈까 싶어 돌아보면 걸어온 길이 이미 아득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느낌, 인생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런 막막함과 아득함을 잘도 견뎠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길벗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모든 길은 단순히 이곳과 저곳을 이어주는 공간이 아니다. 길은 사람들이 걸어 생기는 것이지만, 길은 그 길을 걷는 이들에 대한 기억의 온축이다. 길은 지향이기에 희망이고, 기억을 환기시키기에 그리움이다. 현대인의 불행은 길을 잊었다는 데 있다.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에 불안한 시선을 던지며 걷는 동안에는 희망도 그리움도 떠오르지 않는다. “‘논두렁 길’에서는 개구리가 뛰고, ‘오솔길’에서는 산꿩이 울고, ‘신작로(新作路)’에서는 자갈이 튀면서 먼지가 날리고”라고 노래하는 시인은 돌연 “‘고속도로’에서는 ‘국민 여러분!’ 하는 연설이 흘러나온다.”(윤석산, <낱말의 문화사적 풍경> 중에서)고 노래한다.

 

차들이 질주하는 고속도로와 도심에서 우리는 기억을 반추할 여유를 찾지 못하고,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걷지도 못한다. 구호에 쫓겨 숨가쁘게 달려가야 할 목표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 해도 길은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느긋하게 걷는 이들에게 정겨운 눈길을 던지며, 그 길을 앞서 걸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인간의 흐름 속에 섞여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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