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사랑을 느낄 때 2009년 05월 15일
작성자 김기석

사랑을 느낄 때

 

해가 구름과 숨바꼭질을 하는 오전, 장독대를 오르내리는 발걸음이 부산하다. 웬일인가 싶어 올라가보니 솔라 쿠커(햇볕 조리기) 위에 냄비가 올려져 있다. 감자를 삶고 있는 것이다. 해와 직각이 되도록 설치해놓은 조리기는 아직 냉랭하다.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 몇 시간 반짝 해가 난다 싶더니 곰비임비 감자가 익었다는 전갈이 왔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햇볕이 준 선물을 나누었다. 모두 흐뭇한 얼굴들이다. 유자차 한 잔을 마시면서 “지난여름 어느 날/아무도 몰래/어느 유자나무 위로/내려앉은 햇살을//물에 풀어 마신다”고 노래했던 어느 관상가의 마음이 느꺼워졌다. 감자를 먹으며 우리는 햇살도 함께 먹었다. 흐뭇한 마음이 곧 알천임을 실감했다.

 

뜨거운 감자를 향해 내뻗는 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문득 고호의 그림 <감자먹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거친 입성에 햇볕에 그을려서인지 투박해 보이는 얼굴의 농부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다. 상 위에 놓인 것이라곤 접시에 놓인 감자와 차 한 주전자가 전부이다. 흐릿한 전등불빛 아래에서 그들은 말이 없다.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은 고호의 바람대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맵고 쓰린 삶이 여적처럼 묻어나지만, 그들의 고요한 얼굴에는 신뢰와 사랑이 배어 있다. 그 식탁은 더 이상 증오와 폭력이 미칠 수 없는 공간의 은유이다. 검은 빛이 주조인 이 그림은 아름답지 않다. 차라리 성스럽다. 언제부터인지 이 그림은 성찬식 장면으로 내 기억 속에 갈무리되어 있다. 거기에 비하면 풍부하나 감사는 적은 우리의 식탁은 속되기 이를 데 없다.

 

내친 김에 사무실로 들어와 고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놓은 책을 읽었다. 몇 대목이 가슴에 사무쳐온다. 너무나 외롭던 그는 헤이그에서 혼자 사는 동안 어느 임신한 매춘부와 그이의 어린 딸 마리아를 데려다 보살폈다. 임신한 채 버림받은 여자가 겨울 거리를 헤매며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기 때문이다. 고호는 그들 모녀와 함께 지내는 동안 살아있음의 기쁨을 한껏 맛본 것 같다. 그는 다소 들떠 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우리 실존을 삼엄하게 둘러치는 절망의 어둠을 이길 힘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는 데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 시대를 사로잡고 있는 우울의 뿌리는 이웃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까닭은 무엇일까? 전설에 의하면 가인은 동생 아벨에게 하나님의 거절로 인한 자신의 고통과 외로움, 버림받은 느낌을 이야기했다. 아벨이 그의 말에 어떻게 응답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결국 살인으로 끝나버린 이들 형제의 문제는 소통의 부재였다. 소통이란 나의 생각과 견해를 타자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아니다. 소통의 바탕은 신뢰이고, 신뢰의 밑절미는 곁에 있어줌이다. “까닭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애처럽게 그리워지는데”(조지훈),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아득한 거리에서 다가와 곁에 있어 주는 이,밑도 끝도 없는 투정에도 귀를 기울이고, 가끔은 고개도 끄덕여주는 이. 그이야말로 우리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이이다. 곁에 있어 주는 그 한 사람이 없어 사람들은 일쑤 외로움의 심연에 이끌린다. 심연에 삼키워진 이들의 가슴에 남는 것은 원한 감정이거나 폭력의 충동이다.

 

저뭇한 엠마오 길을 발밤발밤 걷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는 안다. 그들 곁에 한 나그네가 다가와 스스럼없이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깨달음을 나눴고, 초대에 기꺼이 응해 음식을 함께 나눴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지혜의 아침이 그렇게 밝아온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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