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2009년 05월 15일
작성자 김기석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염소와 똥 냄새를 풍기는 양치기였던 어느 크레타의 대장을 추억한다. 터키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전투에 나가 사자처럼 싸운 그가 전쟁터에서 갓 돌아오자, 아테네의 <크레타 결사대>는 그에게 표창장을 보냈다. 검붉은 글씨로 양피지에 쓴 표창장에는 그의 용맹함을 치하하며 영웅으로 일컫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양치기는 불같이 화를 내며 표창장을 가지고 온 전령의 손에서 양피지를 낚아채더니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 양젖을 끓이던 가마솥 아궁이에 처넣었다. 당황한 전령에게 그는 말했다. “가서 난 종이 한 장을 받으려고 싸우지는 않았다고 전해. 난 역사를 만들려고 싸웠어!” 이 일화를 읽으면서 ‘인간의 투쟁은 끝없는 성사(聖事)’라는 말을 실감했다. 양피지 표창장을 갈기갈기 찢는 그 양치기의 모습을 마음에 그리노라니, 일상사에 전전긍긍하며 잗다랗게 변했던 영혼이 후련하게 열림을 느꼈다. 보상과 관계없이, 원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은 인간이 영혼임을 증거한다.

 

신성함을 잃어버리고 납작해진 영혼처럼 슬픈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로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려던 이카로스의 꿈은 좌절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 꿈조차 없다면 인간은 살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불온함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을 보는 것보다 슬픈 일은 없다. 괜히 거친 체 하는 이들 말고, 영혼의 비상을 가두고 있는 물신주의와 권위주의의 쇠감옥을 부수기 위해 온 몸을 내던지는 이들을 보고 싶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적으로 개방한다면서 정부는 소비자들에게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엉너리를 친다.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된단다.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을 호도하기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검역주권을 포기한 처사에 대해서 분노가 들끓고 있다. 이스라엘 공군기가 발사한 미사일이 가자 지구의 민가에 떨어져 1살, 3살, 4살, 5살짜리 어린이들과 어머니가 즉사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주민을 인간방패로 이용한 하마스에 그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집단적 성폭력 사태는 가히 충격적이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을 지지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의 폭력적인 행동은 맹목적인 애국주의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희망의 조짐보다는 절망의 조짐이 더 많은 세상이다.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한 젊은이가 “밝은 이야기는 없어요?” 하고 물었다. 어둠에 익숙해져버린 까닭인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밝고 신나는 이야기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스스로 ‘밝은 이야기’가 되는 수밖에 없다.

 

육류소비가 늘면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더욱 식량부족에 시달린다는 소식에 접한 후 육식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대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이들이 있다. 남녀가 서로를 욕망충족의 대상이 아닌 소중한 인격으로 대하는 세상을 열기 위해 땀 흘리는 이들이 있다. 인종과 국가의 차이를 넘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연민을 조국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자기를 길들이려는 세상의 음험한 세력을 향해 ‘아니오’라고 말함으로 스스로를 주체로 세우고 있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이들만이 함부로 산다. 세상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린다. 그러는 동안 영혼은 점차 왜소해지고 근심과 걱정은 늘어난다.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지만 결코 죽음의 세력에 굴하지 않는 사람들, 척박한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때 되면 기어코 영혼의 꽃을 피우는 사람들, 그들은 인간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늘의 전령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긍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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