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기도로 품은 이슈35 2009년 04월 10일
작성자 김기석

떨고 있는 문풍지처럼

 

참 좋으신 하나님,

가을 가뭄 덕에 단풍은 여전히 곱습니다.

봄여름을 지나며

엽록소를 만드느라 분주했던 나무들이

문득 활동을 멈추더니

이제는 저마다의 빛깔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완상하는 것도 잠깐,

오랜 시간 비바람에 뒤채이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붙잡고 있던 줄기를

미련 없이 놓아버리는

낙엽의 자유낙하를 바라보며

어지러움을 느낍니다.

버릴 것 버리지 못해,

떠나야 할 것 떠나지 못해,

누추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삶이 반추되기 때문입니다.

건드리면 ‘쨍’ 소리라도 날 것 같은

저 짙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만 눈길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던

시인의 명징한 마음이,

오욕에 찌든 마음과 대비되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 가을,

주님의 현존을 깊이 느끼며

내면의 뜨락에서 조용히 거닐고 싶습니다.

저물녘,

정적이 깃든 저 가을 강물 위를 스치듯 나는 새들처럼

주님의 마음을 향해 그렇듯 날고 싶습니다.

덧없는 희망을,

분심으로 어지럽혀진 마음을,

모호하고 위험스런 생각을,

허망한 열정을,

가쁜 숨을,

가지런히 내려놓고

바람처럼 불어와 죽은 생명 살리는

그 큰 숨결로 새롭게 빚어주실

새 생명을 기다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주님,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습니다.

가슴 휑한 이웃들은 여전히 울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지필 나무 한 토막 얻지 못한 이들은,

풍년이 들어도 기뻐할 수만은 없는 농민들은,

새벽 인력 시장에 나와 서성이는 이들은,

자식들에게 사교육은 언감생심,

자격지심에 지청구나 늘어놓는 부모들은,

문 안과 문 밖,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떨고 있는 문풍지처럼

피울음으로 이 가을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저들에게 다가올 겨울은 더욱 큰 절망입니다.

저들의 시린 마음을 덮어줄 이불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이

사랑에 무능한 사람들이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님,

유다는 입 맞추어 주님을 팔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심문관도

입 맞추어 주님을 추방했습니다.

카잔차키스의 예수님은 지금도

머무실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계십니다.

이 땅의 교회는 말구유의 예수님을 잊은 듯합니다.

하늘을 버리고 땅으로 내려오신

주님의 마음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백 속에만 있을 뿐

그 고단한 길을 걷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교회당이 화려해질수록

정신의 빈곤은 더욱 뚜렷해집니다.

교권을 잡으려는 이들이 벌이는 이전투구는

차마 보아줄 수 없을 지경입니다.

염치도 부끄러움도 없는,

벌건 욕망만이 사투를 벌이는 이 난장을 보며

주님, 얼마나 절통하십니까?

사데 교회를 향해 주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너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깨어나라.”

주님, 매를 들어서라도 이 땅의 교회가 빠져있는

혼곤한 잠에서 우리를 깨워주십시오.

 

주님, 이 어둠 속에서 흐느껴 울며

샛별이 찾아오는 새벽이 오기를

한사코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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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21 01-16 07:01)
주말 새벽 목사님의 책을 읽다가 이 시를 읽고 마음이 동하여 감사한 마음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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