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기도로 품은 이슈28 2009년 04월 10일
작성자 김기석

이 혼곤한 풍요의 환상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오, 주님,

부활의 노래 소리가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칙칙하고 무거운 겨울옷을 벗어던진 이의 홀가분함으로

봄의 노래, 생명의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우리의 선율은 이내 단조(短調)로 바뀌고 맙니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조차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요즘입니다.

무고한 어린 학생들이 무자비한 폭력 앞에 스러지고 말았습니다.

이 죽음 앞에서는 '부끄럽다, 참담하다'는 말조차 췌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히브리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신 주님,

어린 딸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는 어머니들의 통곡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주님의 마음도 그 어머니들의 마음처럼 찢길 듯 아프십니까?

세상의 어떤 말로도 위로받을 길 없는 그들을 어찌해야 합니까?

무고하게 흘린 그 어린 학생들의 피를 어찌해야 합니까?

오늘만큼은 "어떤 피조물의 비열함, 사악함, 오류에 의해서도

주님은 침해당하시지 않는다"는 성인의 고백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주님, 꽂이 진 자리에 남는 열매처럼

이혜진 꽃, 우예슬 꽃이 스러진 자리에서

폭력이 사라진 세상의 오롯한 꿈이 열매로 맺히게 해주십시오.

 

주님께 흐뭇하고 행복한 보고를 올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런 우리의 소박한 소망을 비웃듯

참담한 일들만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즐겨먹는 스낵에서 생쥐 머리가 나오고,

참치 캔에서 칼날이 나오고,

단팥빵에서는 벌레가 나옵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천하보다도 귀하다 하신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급격하게 무너진 세상에 살면서

우리 영혼은 거칠어졌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대신,

의심과 냉소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삶의 도구를 바꿀 때

신조차 바꾼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풍요와 다산의 신은 지금도 우리에게 충성을 요구합니다.

자칫하면 욕망의 심연에 빠져들기 쉬운 나날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이라도 먼저 깨어나

이 혼곤한 풍요의 환상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욕심을 덜어낸 자의 홀가분함으로

생의 기쁨을 한껏 누리며 살게 해주십시오.

 

주님,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을 앞두고

독립을 부르짖던 많은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유혈진압에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올림픽 기간 중에는 도시 국가들 사이의 모든 전쟁과

적대 행위가 엄격하게 금지되고

사형 집행이 금지되고, 법적 분쟁도 중지되었던

고대 올림픽 정신은 가뭇없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티베트인들의 울부짖음은

세계의 양심을 울리는 쇠북소리이지만

그들에게 응답하는 나라는 보이지 않습니다.

강대국인 중국의 비위를 건드리기 싫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고요를 찢는 하갈의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그의 억울함을 감찰하였던 주님,

티베트인들을 보살펴주십시오.

그리고 그들과 같은 세상의 약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의 꿈을

인류의 가슴에 심어주십시오.

 

주님,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의 파도가

쓰나미가 되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유가 상승과 국제 곡물 가격 상승으로 말미암아

우리 경제는 위태롭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정부의 정책은 오락가락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리라는 국민들의 장밋빛 기대는

회색빛으로 변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정파별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이 땅에서 낯선 풍경은 아니지만

소태를 씹은 것처럼 입이 쓴 것은 사실입니다.

주님, 이 나라가 가야 할 길을 가르쳐주십시오.

그리고 그 길을 우직하게 걸어갈

새로운 일꾼들을 일으켜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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