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생태 위기시대의 길찾기 2008년 0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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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위기 시대의 길 찾기 • 지금은 나팔을 불어야 할 때 호모 사피엔스를 태우고 다니느라 지친 초록별 지구가 이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아무리 무감각한 사람이라 해도 지구의 건강이 이전 같지 않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2007 한국환경보고서는 이런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구가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세계 곳곳에서 엘리뇨현상이 발생하고 겨울 이상고온현상이 일어나 알라스카 빙하도, 티베트 빙하도 녹아내려 바다수면 상승, 카타리나와 같은 대홍수 등의 환경재앙이 일어나고 또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급속한 사막화, 물 부족 국가의 속출 같은 생태계의 이상현상으로 지구는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둠즈데이를 예고하는 세속적 예언자들의 소리가 절박합니다.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큰일났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경제성장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홍수를 앞두고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몰두했던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지금 우리의 초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생명이라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조차 풍요의 잔치에 넋이 빠진 듯 보여 안타깝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생명력 있는 것이 되려면 각 시대가 안고 있는 가장 절박한 물음에 적절한 해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지금은 욕망의 시대입니다. 욕망은 무한증식을 본질로 합니다. 그 무한증식의 끝은 죽음입니다. 욕망의 열차는 지금 끊어진 다리를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풍요의 환상에 취해 있습니다. 종교는 잠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깨우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삼고 있습니다. 이제는 먼저 깨어난 이들이 나팔을 불어야 할 때입니다. 풍요 대신 절제를, 편리 대신 불편을 능동적으로 택하는 이들이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인이란 결국 하나님의 뜻으로 수정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겠지요. 생각은 지구적으로 하고, 실천은 지역적으로 하라는 말은 신앙적 삶의 세속적 번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래 전부터 교우들과 함께 이 시대에 하나님이 교회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메시지가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생명과 평화 세상을 여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 녹색의 삶을 향한 행진 우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교회 담장을 허무는 일이었습니다. 담장은 나와 너를 가르는 분리의 상징이기도 했기에 담장을 허문다는 것은 교회가 지역 사회를 향해 손을 내미는 몸짓이라 생각했습니다. 여러 가지 염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담장을 헐고 그 자리에 심은 나무가 뿜어내는 초록빛 향연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화단의 꽃을 보기 위해 들어왔다가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했습니다. 생명 살리기 혹은 돌보기는 가장 일상적인 삶의 자리에서 실천해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우리는 식탁을 살리는 일에 주목했습니다. 유기농 쌀을 재배하는 농촌 교회와 연대하여 그 쌀을 교우들에게 판매하는 한편, 주일에 나누는 애찬도 유기농 쌀로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용이 다소 더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우들에게 생명의 밥상을 차려 대접하는 것은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고, 생명운동에 동참하는 일이기도 했기에 우리는 지금도 기쁜 마음으로 식탁을 차리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진행한 일은 '빈 그릇 운동'이었습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는데, 기독교인이라 하는 이들이 음식을 남겨 함부로 버린다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습관을 고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았습니다. 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모두가 조심하여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잔밥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퇴식구에 디지털 저울을 가져다 놓고 남겨온 음식을 거기에 쏟도록 함으로써 자신이 남긴 음식량을 보도록 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간 교우가 약 300명 가까이 되었는데, 남은 음식물 찌꺼기는 수분을 포함하여 약 350그램 정도였습니다. 생명 문화를 만드는 일은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이기에 다소의 불편은 모두가 감내하고 있습니다. 몇 차례 교회에서 연 환경대학에 참여했던 이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환경부는 우리 시대의 환경현안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해가면서, 우리가 교회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지침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함께 '녹색 살림 지침'을 만들어 교우들에게 배부하고 그것을 실천해가도록 독려하고 있고, 이산화탄소 절감을 위한 운동에도 동참하면서 생태학적 발자국을 적게 남기는 삶으로 전환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작년에 가졌던 전교인 여름 수양회는 <녹색의 품으로>라는 주제 하에 녹색의 삶을 연습하는 장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금년에는 환경부 예산을 대폭 확장했습니다. 교인들에게 멀티 탭이나 절수기 등 환경상품들을 보급하기 위해서입니다. 얼마 전부터 많은 이들이 생협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생명의 밥상 차리기 운동이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유기농 식탁을 차려온 어느 교우는 유기농 제품을 사용하면서 삶이 훨씬 규모 있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꼭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고, 남김없이 먹기 때문에 가계 지출이 늘어났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친교실 한 구석에 마련한 생협 가게는 소박하지만 다양한 유기농 제품을 구비해놓음으로써 교인들이 자유롭게 친환경 제품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하늘의 창을 열다 작년에 우리 교우들이 가장 가슴 벅차게 여겼던 것은 <청파햇빛발전소>를 세운 일입니다. 한국의 1차 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OECD 국가 중 최고입니다. 또한 1차 에너지 가운데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세계 평균의 3배에 가깝다고 합니다. 거기에 비해 1차 에너지 중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2.13%에 불과한데, 그것도 실질적인 의미의 재생에너지라 할 수 없는 폐기물과 수력발전을 제외하면 태양광, 태양열, 바이오, 풍력, 연료전지, 지열 등 재생에너지는 전체 신․재생헤너지의 5.2%에 불과하다 합니다(<<한국환경보고서 2007>> 중에서). 교회가 에너지 문제에까지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크게 보아 그것은 생명과 관련된 문제였기에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교우들은 햇빛발전소를 세우자는 목회자의 뜻을 존중하여 따라주었고 마침내 우리는 교회 지붕에 '시민발전소'인 <청파햇빛발전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전력 생산현황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하단에 이런 고백문을 적어놓았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청파햇빛발전소를 세우는 것은 창조질서의 보전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굳이 시민발전소의 형태를 택한 것은 대안에너지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고, 또 우리가 생산한 청정한 에너지를 이웃들과 공유하자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생산한 전기는 전량 한전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모두 에너지 빈곤층을 돕는 일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좁은 교회 지붕에 세워진 햇빛발전소는 상당한 양의 이산화탄소 절감효과를 내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나무 800그루를 심은 효과와 같다고 합니다. 약 30제곱미터도 안 되는 공간에 키 큰 나무 800그루가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습니다. 금년 들어 변화된 것이 하나가 더 있습니다. 올부터 주보용지를 재생용지로 바꾸었습니다. 이전부터도 교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종이는 재생용지를 사용하였지만 주보는 미색모조를 사용해왔습니다. 컬러 주보를 버리고 흑백주보로 전환한 후부터 사용해왔던 용지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고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교우들이 내 뜻을 받아줄까 염려가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작년 연말에 주보 샘플을 미색모조와 재생 비율 40%인 종이 그리고 온전한 재생용지 등 세 가지 종이로 인쇄해 보았습니다. 교우들의 생각을 청취하기 위해 주일 애찬을 준비하고 있던 권사님들께 내려갔습니다. 세 가지 주보 샘플을 보여드리면서 각 종이의 특색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권사님 한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나선 우리 교회라면 당연히 재생용지를 사용해야지요." 그러자 다른 분들도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우들이 생명과 평화 세상을 일구기 위한 행진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 제 마음에 일었습니다. • 생태학적 회심 앞으로도 교우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오염된 물을 먹고 이질과 설사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캄보디아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벌이고 있는 우물 50개 파주기 행사가 금년 중에 끝나면, 이제는 인도나 몽골 혹은 중국이나 북한에 나무를 심는 운동에 동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도 교우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일은 이제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병든 지구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교회는 스스로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생명을 보존하고 파괴된 지구를 되살리기 원하는 기독교인들은 불편함을 즐겁게 택해야 합니다. 가급적이면 차에서 내리는 연습을 하면 좋겠습니다. 큰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더 이상 자랑이 아닙니다. 복음적인 회심은 생태학적 회심과 결코 무관할 수 없습니다. 신음하는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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