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기독교윤리4 2007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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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거부자, 동성애자, 에이즈환자, 마약중독자, 재소자, 중범죄자들에 대한 감리교회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참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네요. 이런 문제들 만큼 사람들 사이에 견해가 엇갈리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급된 모든 경우가 다 우리 사회의 그늘에 속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그늘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들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사람을 좀 불편하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주류 사회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난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10월 2일에 ‘차별 금지법’이 입법 예고 되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차별이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 전력, 보호처분, 성적 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을 분리, 구별, 제한, 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내포합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 가운데서 유독 ‘성적 지향’을 삭제해야 한다며 전면적인 투쟁을 선언했습니다. 동성애는 윤리도덕에도 어긋나는 성적행위로써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사회악이요 비정상이라는 것이지요. 차별 금지 법안은 동성애 확산을 조장하여 여러 가지 사회 병리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게 그분들의 주장입니다. 법무부는 결국 ‘성적 지향’를 포함한 7개의 조항을 삭제함으로 차별 금지법안을 완화시켰습니다.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전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위에 언급된 이들도 우리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입니다. 좋고 싫음을 떠나서 모든 사람은 존경까지는 아니라 해도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우리 눈에 거슬린다고 하여 누군가를 ‘비국민’ 취급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폭력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그들’을 구별하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일에 익숙합니다. 이런 구분은 은연중에 가치판단까지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정상’은 선하고, ‘그들’과 ‘비정상’은 악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누구도 속단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것도 함부로 규정할 게 못 됩니다. 성적 소수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피해자들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급한 욕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난잡한 이들도 있지만, 동성애의 문제는 취향의 문제라기보다는 생리적인 문제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남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 여성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든지, 여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 남성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면 그런 존재의 자기 불화 속에서 그들은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런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에이즈 환자나 마약 중독자, 중범죄자들을 보면 우리는 일단 의혹의 눈길을 보내게 됩니다. 그들은 낯선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이 없다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성년의 숲을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강도 만난 이웃들이 아닐까요? 어쩌면 그런 자리에 있는 이들이야말로 주님이 말씀하신 ‘땅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죄의 시선이나 냉소적인 말은 그들을 바른 자리로 되돌리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웃이 되어주라는 주님의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의 자리, 절망의 자리에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그들을 외면하면서 교회가 주님의 몸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병역 거부자 문제는 분단국가인 우리의 경우 매우 민감한 사안입니다. 국가주의와 천부의 인권 사이에서 우리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국가’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이들에게 병역 거부자는 반역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인권’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이들에게 양심에 반하는 병역의 부과는 폭력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대체 복무제는 특정한 종교 단체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충분히 그럴 소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폭력적인 소신 때문에 갈등하고 있는 이들의 고뇌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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