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문화의 변혁자 2007년 08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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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화된 대중문화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대중문화’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범위가 너무도 광범위하여 대답하기가 무척 어려운 질문이군요. 얼핏 음악이나 영화, 소비주의 등이 떠오르지만 사실 대중문화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등장한 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나 익숙해진 사적인 혹은 공적인 공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노래방, 피시방, 찜질방, 대형 마트, 24시간 편의점, 멀티플렉스 영화관……. 삶을 구성하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는 우리 삶의 양식까지도 바꾸어놓습니다.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광장은 늘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광장을 걷는 사람들은 많지만 어느 한 사람도 누군가를 향해 걷지 않는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처럼 사람들은 여전히 외롭습니다. 손 전화와 피시를 통해 사람들은 끝없이 접속을 시도하지만, 상대의 영혼 깊은 곳에 가닿을 수 없는 말은 늘 제 자리를 잃고 떠돌고 맙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삶의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로 빠르게 질주할 때 운전자의 시야는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빠르게 달리면서 깊은 생각을 할 수도 없습니다. 감나무 가지에 달이 걸릴 때쯤 만나자던 옛 사람의 느긋함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분초 단위로 분절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느라 우리는 숨이 가쁩니다. 달맞이꽃을 이겨 만든 잉크로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옛사람의 낭만은 이제 사라진 것일까요? 물건들의 생애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지적하지 않아도 다 잘 아는 사실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삶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뭔가를 구매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비싼 값을 지불하면서까지 구입하려고 하는 것은 이미지입니다. 지금 매스 미디어에 등장하는 광고들은 거의 전부가 이미지 광고입니다. 그런데 이미지를 소비하는 이들은 숨이 가쁩니다. 새로운 상품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광고는 미시적 권력이 되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자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광고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세계는 주체성 없는 소비자들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매트릭스입니다. 상업화된 대중문화란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키는 말일 겁니다. 자본의 본질은 욕망을 확대재생산해내는 것입니다. 자본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소비자로 봅니다. 또 다른 비인간화의 시작입니다. 상업화된 대중문화에 깊이 침윤된 이들의 삶의 특색은 피상성입니다. 거기에는 자기 성찰과 타자에 대한 배려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욕망의 불꽃이 타오르는 동안에는 우리 속에 있는 신성의 불꽃은 사그러지게 마련입니다. 이제 맑은 눈을 가지고 우리 삶을 성찰하는 이들이 나와야 합니다. 욕망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세상을 향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나와야 합니다. 상업화된 대중문화는 사람들을 자기중심성 속에 갇힌 수인이 되어 살게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부름에 응답한다는 것, 누군가의 고통에 연루되기를 꺼리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온통 떠남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화려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었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문명권의 인력으로부터 빠져나와 언약에 바탕을 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상업화된 대중문화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이해와 존중과 사랑과 나눔과 절제와 섬김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야 할 소명 앞에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가치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초월적인 비전은 오늘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귀한 밑돌이 될 것입니다. 상업화된 대중문화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 작업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그 속에 깊이 침윤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거기에서 벗어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홀로는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깊이 대화하면서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는 지원공동체가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문화 변혁자’로서의 그리스도가 당신의 손과 발이 되어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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