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하늘땅사람이야기26: 모든 사람과 함께 가라 2006년 0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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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과 함께 가라 형, 꽃샘 추위가 매섭습니다. 며칠 전부터 교회 화단에 힘겹게 고개를 든 비비추와 무릇 새싹들이 밤 사이 얼지나 않았나 싶어 안쓰러운 마음으로 안부를 물었습니다. “우리 아직 괜찮아요.” 새싹들이 오히려 나를 격려하더군요. 눈석임 물 흐르는 계곡에 들어 생명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이 엊그제인데 오늘은 새들도 조용합니다. 새만금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많은 환경단체 회원들과 지역민들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형이 이 편지를 받으실 무렵이면 이미 판결이 내려져 있겠네요.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을 앞에 두고 저는 다만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를 올릴 뿐입니다. “봄이 와 가장 여린 속살을 내보이며 올해도 꽃이 피고 연둣빛 새잎들이 나풀거리기 시작한다면, 이것은 당연히 올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지 않을 수도 있었던 봄이 오는 것”이라고 말했던 어느 시인의 고백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인가요? 지각을 뚫고 나온 새싹 하나하나가 생명의 기적처럼 여겨져 마음이 일렁입니다. 역천(逆天)의 길을 걷는 현대 문명 속에 머물면서 평화와 생명의 세상을 꿈꾸는 일은 참 가슴 아린 일입니다. 노구를 이끌고 미군 기지가 들어설 대추리에서 농성하고 있는 문정현 신부님은 “평화란 저 황새울 들녘이 푸른 생명으로 출렁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평화란 그렇게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네요. 예수님이 꿈꾸셨던 세상도 그런 것이었겠지요? • <요격시>를 발사하다 지난 2월 중에 레바논에 다녀왔습니다. 지중해를 건너 구름이 낮게 드리운 베이루트 전경을 보면서 나는 백향목을 생각했고, 칼릴 지브란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항에 내려 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난폭한 운전자들이 사방에서 울려대는 경적 소리를 들어야 했고 매캐한 매연 냄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마침 우리가 도착한 날이 레바논의 전 총리였던 하리리(Hariri)가 폭사한지 1년이 되는 날이어서 시내는 온통 추모객들로 넘쳐났습니다. 한 복판에 백향목이 그려진 레바논 국기를 흔들며 거리를 질주하는 젊은이들의 차량 행렬을 바라보며 조금은 긴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숙소 가까운 곳 어디를 걸어보아도 레바논 내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무너진 건물 잔해, 사람 사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 텅 빈 건물들, 짓다 만 흉물스런 건물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습니다. 내전의 뿌리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둘러싼 종교 간의 갈등이라고 들었습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하면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레바논으로 유입되기 시작했고, 1970년 요르단 정부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한 ‘검은 9월’ 사건을 계기로 난민들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답니다. 그들은 레바논을 근거지로 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레바논 인구의 60%에 달하는 무슬림들은 그들을 지원한 반면 이스라엘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던 기독교인들은 자체 민병대를 조직하여 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답니다. 결국 종교 간의 갈등으로 비화되고 만 것이지요. 서로에 대한 공격과 보복 공격이 계속되다가 1975년 4월에 마침내 레바논 내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내전에 시리아가 개입하고 이어 이스라엘이 개입하면서 점점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다가 10만 명이 희생된 가운데 1990년에야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내전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였습니다. 비둘기 섬 옆을 산책하는 데 허름한 차림의 한 사내가 다가와 말을 건네더군요.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는 남북한의 긴장 상황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인식을 뽐내듯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우리나라에 대해서 잘 아냐고 물었더니 베이루트도 항상 전선에 있기에 한국의 상황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고통의 연대인가요? 지중해의 푸른 물빛은 아름다웠고 도로변에 있는 바나나 레몬 올리브 오렌지 과수원은 평화로웠습니다. 하지만 재건의 손길이 채 미치지 못해 방치된 건물들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말없이 꾸짖고 있었습니다. 그 분쟁의 땅에서 나는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사11:6-8)는 이사야의 꿈을 아프게 떠올리며 ‘이 분쟁의 땅에 평화가 깃들게 해 달라’고 간곡하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슬픔의 땅에 정현종의 <요격시> 한편을 발사했습니다. 다른 무기가 없습니다 마음을 발사합니다 두루미를 쏘아올립니다 모든 미사일에 기러기를 쏘아올립니다 모든 폭탄에 도요새를 쏘아올립니다 모든 전폭기에 굴뚝새를 쏘아올립니다 모든 포탄에 뻐꾸기를 발사합니다 무기 공장에 비둘기를 발사합니다 무기상들한테 따오기를 발사합니다 정치꾼들한테 왜가리를 발사합니다 군사 모험주의자들한테 까마귀를 발사합니다 승리 중독자들한테 발사합니다 먹황새 물오리 때까치 가마우지…… 하여간 새들을 발사합니다 그 모오든 死神들한테 • 희망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굳이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내가 그 땅에 잠시 머물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옛날 그 땅을 거니셨던 예수님과 사도들의 발자취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가서 깨달은 것은 여전히 평화의 꿈이 난폭하게 짓밟히고 있는 분쟁의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이 흘린 피가 나를 소환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마다 평화를 가르치고 때가 되면 금식을 하고 기도를 하는 종교인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제 정치적인 맥락이 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혹은 알라의 이름으로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어느 편이 되었든 으뜸 되는(宗) 가르침(敎)을 짐짓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제 귀에는 칼릴 지브란의 피맺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집권자가 험악한 얼굴로 백성들에게 겁을 주면, 목사나 신부는 교활한 미소로 그들을 위로한다. 이리하여 양떼 같은 백성들은 늑대 같은 정치인과 여우같은 종교인 사이에서 찢기고 뜯기어 멸해진다. 지배자는 스스로를 법이라 하고, 성직자는 스스로 신의 사자라고 주장한다. 이 둘 사이에서 백성들의 육체가 고문을 당해 죽어가고, 백성들의 정신이 질식을 당해 숨통이 막힌 채 시들어버린다.”(칼릴 지브란, <<반항하는 정신>> 중에서) 이것이 그 땅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다른 종교인들을 사갈시(蛇蝎視)하는 개신교 지도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숨이 가빠집니다. 종교인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세상의 평화는 요원한 과제일 뿐입니다. 타종교에 대해서 관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친 한 기독교 대학의 젊은 교수가 재임용에 탈락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그는 마음이 너그럽고 겸손하여 모두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볼 때마다 시편 기자의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언제까지나…?”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고 그 은총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생명의 외부는 없습니다. 모두가 내부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쑤 금을 긋거나 담을 쌓아 너와 나를 가릅니다. 그걸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네 편 아니면 내 편,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송기숙 선생님은 사람이 모여서 ‘더불어’ 사는 최소 단위인 동네는 이 세상의 축소판이라면서 다음 다섯 부류의 사람은 어느 동네나 있는 사회의 구색이었다고 말했습니다. ①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동네 어른 ②늘 말썽만 부리거나 버릇없는 후레자식 ③일삼아서 이 집 저 집으로 말을 물어 나르는 입이 잰 여자 ④틈만 있으면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을 웃기는 익살꾼 ⑤좀 모자란 반편(半偏)이나 몸이 부실한 장애인(송기숙,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 그렇지요. 우리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마을만 떠올려보면 이 말이 얼마나 적확한 말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을은 그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말없이 품어 안았습니다. 간디가 마을 공동체의 회복을 통해 인도를 바꾸어나가야 한다고 한 말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싸구려 물건을 들고 나와 관광객들에게 달라붙은 아이들을 보면서 저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으며 자랄까 생각했습니다. 전쟁으로 죽어간 가족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랄겁니다. 이야기는 세상을 보는 창문이고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라지요?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1달러짜리 지폐가 아니라 희망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싸늘하게 서로를 응시하고 마음의 벽을 쌓아올린 채 살고 있는 이들이 만나 서로가 느낀 고통을 이야기하고, 함께 공감하고, 함께 울 수 있다면 세상은 한결 평화로워질 텐데요. 결국 종교가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레바논의 아들인 칼릴 지브란은 ‘종교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날의 삶이야말로 너희의 사원이며 종교, 거기에 들어갈 때마다 너희의 모든 것을 가지고 가라. 쟁기와 풀무, 그리고 망치와 피리, 필요에 의해서든 기쁨을 위해서든 너희가 만들었던 모든 것을 가지고 가라. 왜냐하면 몽상 속에서는 너희가 성취한 것 이상으로 오를 수 없으며 너희가 실패한 것 이하로 내릴 수도 없기 때문. 그리고 모든 사람과 함께 가라. 왜냐하면 너희는 그들의 희망보다 높이 날 수 없으며 그들의 절망보다 낮게 너희를 낮출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너희가 신을 알고자 한다면 수수께끼 푸는 사람이 되지 말라. 그보다 너희의 주위를 둘러보라. 그러면 그분이 너희 아이들과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니. 하늘을 바라보라. 그러면 그분이 구름 속을 걸어 다니며, 번개 속에서 팔을 뻗고 빗속에서 내려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너희는 그분이 꽃 속에서 미소 지으며 나무들 사이에 서서 손을 흔드는 것을 보게 되리라. • 신을 볼 눈이 열린 사람 “나날의 삶이야말로 너희의 사원이며 종교”라는 지브란의 말을 우리가 진정으로 인정할 수만 있다면 우리 삶은 변화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전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모든 곳이 거룩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형은 숲을 산책하는 것을 두고 나름대로의 경전읽기라고 하셨지요?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 마음이면 될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숲에 국한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의 욕망이 만나고 부딪치는 저잣거리나 생선 비린내가 배어있는 시장골목조차도 사원과 종교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매 순간 우리 의식이 깨어있다면 우리가 머무는 곳이 어디든 그곳은 거룩한 성전입니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당을 짓고, 자기들의 업적에 도취된 이들에게는 참 듣기 싫은 이야기이겠네요. “거기에 들어갈 때마다 너희의 모든 것을 가지고 가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신에게 가져갈 때 그것은 신성한 것이 됩니다. ‘쟁기와 풀무’ ‘망치와 피리’, 무엇 하나 신의 어전에서 속된 것은 없기 때문이겠지요. 삶에서 부득이 경험하게 되는 어둠과 부끄러움조차도 다른 이름으로 명명할 생각을 버리고 그분께 가져갈 때 그것은 빛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가르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선과 악, 미와 추, 호와 불호, 성공과 실패…하지만 산마다 골짜기도 있고 마룻금도 있는 것처럼 삶은 그런 반대되는 요소들이 교차하면서 생성된 무늬가 아니겠어요? “모든 사람과 함께 가라.” 신에게 나아가는 길은 누군가를 배제하고, 따돌리고 홀로 가는 길이 아닌가 봅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모든 사람’입니다. 우리 속에는 성인과 악인, 어른과 아이가 공존하고 있으니까요. 그중 어느 것 하나를 갈라놓으려고 무리를 하다보니까 삶이 힘겨워집니다. 형은 언제나 나를 살갑게 대해주시지만, 도무지 내가 정서적으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이들과도 잘 어울려 지내는 것을 보면서 참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들도 내 속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동안 나는 평화를 말하면서도 불화를 내면화하고 살아왔던 셈입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저 사람은 저래서 하며/모두 내 마음에서 떠나보냈는데/이젠 이곳에 나 홀로 남았네.”(김남기의 <그때 왜> 부분). 남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만약 너희가 신을 알고자 한다면 수수께끼 푸는 사람이 되지 말라.” 지브란이 지성적인 노력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닐 겁니다. 다만 그는 신은 명증한 언어를 통해 이해 가능한 존재가 아님을 일깨워주려는 것 같습니다. 바다 속에 사는 물고기가 바다를 모르는 것처럼 우리는 신의 현존 안에 살면서도 신을 알지 못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일상의 현실을 돌아보라고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놀고 있는 신, 구름 속을 걸어 다니는 신, 꽃 속에서 미소 짓고, 나무들 사이에서 손을 흔드는 신…그런 신을 볼 눈이 열린 사람은 참 복받은 사람입니다. 수피교의 현자인 나스루딘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어느 날 그는 약하긴 하지만 깨달음의 불꽃을 내면에 간직한 이웃을 보고 말했다. “자네에게 형이상학적인 진리를 가르쳐주고 싶네.” 그러자 그는 “반가운 말씀입니다. 언제든 제 집에 오셔서 저를 깨우쳐 주십시오” 하고 대답했다. 나스루딘은 그가 신비한 지식이 마치 말을 통해 온전히 전달될 수 있는 것인 양 생각하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며칠이 지난 후 그 이웃은 지붕에 올라가 있던 나스루딘을 향해 말했다. “나스루딘, 내 연료가 다 떨어져가고 있어요. 오셔서 나의 불꽃에 숨결을 불어넣어주실 수 없겠습니까?” 나스루딘은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자 여기 나의 숨이 있네. 이리 와서 자네가 가져갈 수 있을 만큼 가져가게나.”(Idries Shah, <>) • 침으로 서로의 몸을 적시며 사순절의 한복판을 지나면서 한국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니 아뜩합니다. 싸잡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교회들은 대개 피조 세계의 신음소리에 무감각하고, 세상의 고통에 민감하지 않습니다. 끝없이 타자를 상상하고 그들과의 차이를 부각시켜 그들을 배제시키면서 구원의 방주에 든 ‘우리’를 강조합니다. 저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보지 못합니다.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습니다. 형은 “네가 아무리 애쓴다고 세상이 달라지든?” 하며 나의 삶의 속도를 줄이라고 야단이시지만, 절망이 저렇게 깊은 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장자는 “말라가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 속의 붕어는 침으로 서로의 몸을 적신다”고 했어요. 이런 작은 몸짓이나마 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길들여진 슬픈 짐승으로 살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봄 같지 않은 봄이지만, 종내 나는 희망의 봄을 기다립니다. 저 추위에 몸을 곱송그리고 있는 새싹들을 위해서라도 봄은 와야 합니다. 봄볕 한 줌 보태줄 사람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봄볕에 그을린 형의 얼굴 보고 싶습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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