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공존의 지혜를 익힐 좋은 기회 2003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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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지혜를 익힐 좋은 기회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알게 해달라'는 기도를 떠올린다.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는 울고 있는 이들이 있고, 떨고 있는 이들이 있다. 국적 회복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던 조선족들은 조선족 교회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노 대통령은 "여러분은 우리 동포"라며 그들의 눈물에 화답했다. 하지만 살길을 찾아 이 땅을 찾았던 많은 이주 노동자들은 불법 체류 외국인으로 몰려 눈물을 흘리며 이 땅을 떠나거나, 강제 단속을 피해 숨어들었다. 불기조차 없는 폐가에 웅크린 채 온몸으로 파고드는 한기를 견디며 긴긴 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그들을 보면 마음이 저려온다. 희망을 빼앗긴 이들의 절망감을 죽음으로 표현했던 이들의 존재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우리의 자부심을 근본으로부터 흔들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사례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고, 체불시비 또한 그칠 새가 없었다. 물론 내년 8월부터 시행되는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 불법 체류자들을 단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조차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살길을 찾아온 이주 노동자들을 좀 더 부드럽게 다룰 수는 없는 것일까? 인간의 얼굴을 한 법 적용이나 제도의 운용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발걸음을 내딛고 보니 길은 발 밑에 있더라는 어느 산악인의 말처럼 길은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땅에 흘린 피가 하늘을 향해 하소연한다는 성서의 증언이 아니라 해도, 누군가의 눈물과 고통을 외면한 문화가 건강할 수는 없다. "신고를 받고도 모른 척 눈감아주면 직무를 유기하는 것 같아 괴롭고, 도망가는 그들을 잡으려고 추적하는 것은 마치 인간 사냥꾼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는 어느 단속반원의 고백이 참 아프게 들린다. 문득 쫓기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을 보면서 어쩌면 이들은 우리가 통일 이후에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갈등의 상황을 앞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남과 이북 사람들의 만남은 대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남북의 장벽이 무너지는 날 통일에 대한 장밋빛 꿈은 어쩌면 잿빛 현실로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낯선 타자와의 공존이나 소통을 익히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관념적 일치감은 현실적인 불편의 늪에 잠겨버리고, 부둥켜안아야 형제자매는 지겨운 타자로 변할지도 모른다. 겨울 바람보다 더 차가운 차별의 칼바람에 몸을 곱송그리는 이들의 시린 마음을 감싸안지 못한다면 우리는 분단의 장벽을 넘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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