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노 대통령, 역사의 소명을 잊지 말기를 2003년 0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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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역사의 소명을 잊지 말기를


대통령의 언행을 두고 말들이 많다. 우리 사회에 잠복해있던 여러 가지 갈등 요인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시에 분출되어 나오니, 정신을 가지런히 할 여유가 없을 법도 하다. 수구 언론과 야당의 대통령 흔들기는 그러려니 해도, 자신의 지지기반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한총련이나 전교조, 시민단체로부터 터져 나오는 신랄한 비판은 매우 아플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대통령의 언행이 가벼워서는 안 된다. '이러다가는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든지, '남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상대가 고마워하지 않고 또 다른 트집을 잡으면서 배신할 때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궁금하다'는 말은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대통령직은 해먹는 자리가 아니다. 또 국정수행에 대해서 국민들의 칭찬과 박수갈채만을 기대했다면 그것은 현실인식이 안이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은 초인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뇌락(磊落)한 대통령을 보고 싶어한다. 세상의 온갖 풍상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의연한 사람 말이다. 작은 시련 앞에서 비명을 지른다거나 곱송그리는 것은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지금 같은 위기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힘겨워 비틀거리는 대통령을 바라보면서 역경 속에서도 국민들과 함께 멋드러진 춤을 추던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위로 올라갈수록 설 땅은 좁아지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높은 곳에서 전망조차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항상 좁은 길을 택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늘 원칙이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논리가 원칙을 삼킬 때가 더 많다. 그렇지만 원칙은 어떤 경우에도 폐기 처분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원칙이라는 대의의 끈을 옹골지게 붙잡으려는 결의이다. 지금 그를 향한 진보진영의 비판은 그가 원칙의 끈을 슬그머니 놓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도나 원칙을 버린다면 그는 새 시대의 지도자일 수 없다. 세찬 바람이 앞을 가로막는다 해도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 척박한 역사의 다랑논에 울면서라도 '바름'의 씨를 뿌려야 한다. 이것이 그를 택한 역사의 소명이다. "만물은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만큼/튼튼한 줄기를 얻고/잎은 흔들려서 스스로/살아 있는 잎인 것을 증명한다". 오규원 시인의 이 시구는 엄혹했던 70년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의 위로가 되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그 흔들림을 통해 더욱 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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