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희망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2003년 0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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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릴 즈음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이 불의한 전쟁을 '이라크 해방전쟁'이라는 그럴듯한 수사로 포장하려고 하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그들이 세상에 안겨주려는 것은 '자유'도 '해방'도 아니다. 수 백발의 크루즈 미사일과 최첨단 무기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쏟아 부었던 작전명 그대로 미국은 '충격과 공포'를 세계인들의 가슴에 심으려 하고 있다. "우리 말 안 들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겠지?" 우리는 전쟁이라는 악령에 가위눌린 채 이 봄을 맞고 있다.

씨엔엔이나 비비씨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그 무자비한 불꽃놀이를 보는 사람들은 미국의 압도적인 힘 앞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미국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첨단 무기들의 화력시범을 보였다. 전쟁의 명분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다 폐기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우리는 미국이 개발한 가공할만한 무기를 보면서 할 말을 잊는다. 그 무기들은 물화된 탐욕에 지나지 않는다. 탐욕에 사로잡힌 영혼은 자기 외부의 살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은 지금 몰록신에게 절하고 있다.

더욱 더 비극적인 것은 이 전쟁이 지극히 추상화된 모습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날아가는 미사일은 볼 수 있지만, 그 미사일이 떨어진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은 볼 수 없다. 텔레비전 화면은 살고자 하는 생명들이 허망하게 죽어가고, 팔다리가 떨어져나가고,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사망한 사람들과 부상당한 사람들의 '숫자'일 뿐이다. 숫자로 환원된 사람들에게는 인격도 존엄성도 없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성의 황혼을 맞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의 기획자이고 명령자인 부시는 이 와중에도 휴가 여행을 즐겼다니 아연할 따름이다.

그러나 전쟁의 광풍 속에서도 아직 희망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세계 도처에서 미국의 탐욕적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평화 시위가 일고 있다. 그것은 민족주의라는 장벽에 갇힌 채 서로를 향해 흐르지 못했던 마음들이,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서 인류의 평화라는 장강에 합류하기 위해 흐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 거대한 흐름은 가인의 후예들이 득세하고 있는 현실의 터전을 뒤흔드는 해일이 될 것이다. 이런 시기에 정부가 현실논리를 내세우며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국가적 이익을 고려하면서도 의를 잃지 않는 솔로몬의 선택은 불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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