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소리와의 드잡이 2001년 08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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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의 드잡이

장마 끝이라 그런지 새벽에도 예배실은 몹시 덥다. 그리 많지 않은 인원인데다가, 여름에는 덥게 지내고 겨울에는 춥게 지내자는 생각에서 냉방기를 켜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지간한 거리를 걸어온 성도들은 실내의 그 후텁지근함을 견딜 수 없는가 보다. 앞자리에 앉아 마음을 모으고 있으면 교인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문 열리는 소리,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대충 누가 왔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서 신기해한다. '아, 사람을 소리로도 알아차릴 수가 있구나. 다른 이들은 나를 어떤 소리로 기억하고 있을까?' 그런데 걸어들어온 이가 선풍기를 작동시키는 소리를 들으면 짐작은 확신으로 바뀐다. 조심스럽게 선풍기를 작동시키는 이도 있고, 마치 무더운 게 선풍기의 죄라도 되는 양 줄을 두 번 거칠게 잡아 당기는 이들도 있다. 선풍기 몸체가 몸부림치듯 웽웽 소리를 내며 돌아가면 마음을 집중할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아, 오늘 새벽에도 저 소리와 경쟁을 해야 하겠구나.'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볼 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함께 하니까. 하지만 설교 시간이 문제다. 고요한 실내에는 두 소리가 경쟁을 한다. 선풍기는 자기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소음을 만들어낸다. 나의 음성도 저절로 높아간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속도가 높을수록 마음이 바빠진다. 이게 아니지, 이게 아니지 하면서도 내 마음을 붙들 수가 없다. 이쯤 되면 말들은 주인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자율적인 권리를 주장하고 나온다. 아이구.


낮에도 소리와의 싸움은 계속된다. 인근의 자동차 수리 수리센터에서 들려오는 소음이다. 쇠를 갈아내는 소리, 볼트를 죄는 기계음, 경적 소리, 게다가 서비스 품목인지 스피커를 타고 들려오는 뽕짝 소리. '참자, 참아야 한다' 스스로를 달래며, 도를 닦는 사람처럼 마음을 집중하려 하면 '이래도' 하는 양 전화벨이 울린다. 뭔가 장삿속이 있어서 전화하는 이들의 그 천편일률적인 어투와 어조가 내 속을 더 달군다. "안녕하세요, 무더위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세요. 교회는 많이 부흥되시구요? 항상 목사님의 건강과 교회 부흥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전화 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그래도 그렇게 걱정해주고 기도해주는 이들이 많아서 좋겠다구 아내는 낄낄 거린다.


소리를 피해 2층 예배실로 올라간다. 성경과 찬송만 챙겨들고. 마음을 집중하려고 찬송가를 몇 장 부르고 제법 느긋하게 마음을 살피는데, 고요한 시간을 분절하는 강박적인 전화벨소리가 울린다. 이런, 나도 모르게 무선전화기를 들고 올라온 것이다. 이 지독한 삶의 습기(習氣)여! 다시금 마음을 모으는데, 덥다.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일어나서 선풍기 고리를 잡는다. 그러다가 그만 둔다. 더위 속으로 들어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고요함을 얻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홍수에 떠밀려온 부유물처럼, 내 마음의 밑바닥에서 떠오른 온갖 감정의 부유물들이 보인다. 그것을 걷어낸다. 고요함과 침묵의 그물질로. 조금 열린 창문 틈으로 슬몃 들어온 바람이 나를 슬쩍 건드린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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