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비늘 2001년 05월 18일
작성자
비 늘

딸 아이는 나를 박치(拍癡)라고 놀린다. 젊은이들과 복음성가를 부르다보면 반 박자쯤 빨리 들어가거나, 늦게 들어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마이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지, 하면서 뚫어져라 악보를 들여보다보면 여지없이 틀리곤 했다. 그래서 어려운 박자가 나오면 슬쩍 묻어들어가려고 호흡을 고르는 척도 해보지만 젊은이들은 나의 의도를 너무나 잘 안다. 남 못보게 발로 박자를 척척 맞춰보지만 그것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머쓱해진 나는 "요즘 노래는 왜 이렇게 복잡해. 나도 찬송가 부를 때는 박자를 절대로 놓치는 않아" 하면서 엉너리를 친다. 아이들은 웃음으로 나의 무안함을 받아준다. 그렇지만 속상하기는 하다. 왜 남들 다 잘하는 데 나는 못하지? 그래서 어느 날 목소리를 낮추고 한 청년에게 물어봤다. "너희들은 어쩜 그렇게 악보를 잘 읽니?" 그러자 청년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저희는 그냥 리듬을 외워요. 많이 듣고 따라 부르는 거지요." "그∼래? 그렇다면 나도…." 아, 놀라운 일이었다. 악보를 보지 않고 내 귀와 몸이 익힌대로 리듬을 따라갔더니, 나도 제대로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내가 노래의 흐름에 몸을 맡기지 못하고, 악보 읽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다보니 박자를 놓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악보라는 유현금(有絃琴)에 매여 음악이라는 무현금(無絃琴) 소리를 듣지 못하다니. 참 어쩔 수 없는 데카르트의 후예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생각이 문제였구나.

가끔 외국인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면 새삼스럽게 구어체 영어를 가르치지 않은 교육제도를 탓하게 된다. "나는 읽고 번역하라면 잘 할 수 있는데, 말하는 것은 쉽지 않아." 나는 막 화가 난다. 충분히 내 뜻을 전달할 방도가 없으니 마치 바보가 된 것 같기 때문이다. 머리 속에 할 말을 떠올리고, 그 문장을 영어로 바꾸고, 입안에서 한번 연습을 해본 후에 말을 풀어내니, 그 말은 적절한 말일수도 없고 생동감있는 말일 수도 없다. 그런데 사정이 달라질 때가 있다. 서울에서 어려운 일을 만난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나면 나의 영어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방언을 연상하지는 말기 바란다. 나는 이미 그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그들의 가슴이 하는 말을 들었고, 내 가슴 속의 거문고(心琴)가 이미 조율을 끝낸 상태이기 때문에, 말은 저절로 제 길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외국어인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나를 어눌하게 만들지만, 의사소통에 대한 간절함은 나를 유창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언어라는 수단이 아니라 함께 공명하려는 마음이다.

서화담(徐花潭, 화담은 徐敬德의 호) 선생이 출타했다가 집을 잃어버리고 길가에서 울고 섰는 사람을 만났더랍니다.
"너는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
"저는 다섯 살 때 눈이 멀어서 지금 20년이나 되었답니다. 오늘 아침 나절에 밖으로 나왔다가 홀연 천지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기에 기쁜 나머니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길은 여러 갈래요, 대문들이 서로 어슷비슷 같아 저희 집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래 지금 울고 있습지요."
선생은,
"네게 집에 돌아가는 방법을 깨우쳐주겠다. 도로 눈을 감아라. 그러면 곧 너의 집이 있을 것이다."
라고 일러주었답니다.
그래서 소경은 다시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리며 익은 걸음걸이로 걸어서 곧장 집에 돌아갈 수 있었더랍니다.
(박지원,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중에서)

사실 우리는 본다고 하면서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산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다섯 가지 색이 눈을 멀게 한다'는 말대로 우리 눈은 뭔가로 가리워 있다. 눈뿐인가? 마음조차 갑각류를 닮아간다. 외부로부터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런저런 재료들을 끌어모아 어린갑(魚鱗甲)을 만든다. 하지만 자기 방어의 무기가 늘어날수록 영혼의 예민함과 동료 인간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는 줄어들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의구심은 늘어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어린갑이 결국은 자기 행동에 제약을 가져온다. 공원을 거닐다가 수컷 비둘기가 목 부분의 깃털을 부풀리고, 날갯죽지를 옆으로 벌리고는 암컷을 따라 다니는 것을 보았다. '수컷들은 꼭 저렇게 어깨에 힘을 준다니까. 하긴 뭐 짝짓기 철이니까.' 너그러이 이해하면서도 그 가련한 허장성세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돌아서서 걸어가는데 비둘기가 구구 거리며 나를 비웃는다. '너는 뭐 별 다르니?' 웃음의 뒤끝이 상쾌하진 않았다.

많은 직책이 기록된 명함을 내밀며 언죽번죽 '내가 이런 사람이오'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그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이 시선의 엇갈림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저 많은 직책이 주는 무게를 어찌 감당할꼬?' 하나의 일만도 옳게 감당하지 못하는 내게 그런 이들의 삶은 불가사의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는 아직 내가 무겁다. 무겁다고 느끼는 것조차 사치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직 자유로운 영혼, 들새처럼 나는 영혼의 힘으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 짐이 아직 충분히 무겁지 못하기 때문이다."(정현종, [절망할 수 없는 것조차 절망하지 말고] 중에서) 무거우면 깨어 있기 어렵다. 자기를 살필 기회를 잃게 마련이다. 전체의 흐름 속에서 오늘의 의미를 살피기 어렵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스타카토로 말씀하신다는데, 그래서 하나님의 선율을 이해하려면 각각의 음의 높낮이를 잘 살피고 그것이 이루어내는 조화를 느껴야 한다는데, 다시 한번 나의 의식은 너무 무겁다.

'나'를 의식하는 것, 다시 말해 '나'(我)의 심상에 비추어진 다양한 '이미지 혹은 모습'(相)에 집착하기에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사울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나'와 '율법'과 '경건'의 짐을 지고 살아갔으니.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그의 눈이 멀었다 한다.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눈이니 먼저 거두어가신 것이다. 그를 찾아온 아나니아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을 때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졌다 한다. 나는 아침마다 내 잠자리를 살핀다. 무슨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있지 않나 하고. '나'임을 부정할 수 없으되 결코 '나'의 본질이 될 수 없는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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