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패 읽기 2000년 0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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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드라마에 등장하는 변호사가 있습니다. 그는 정의감에 넘치는 사람입니다. 때묻지 않아 깨끗합니다. '아니요'와 '예'가 분명합니다. 돈벌이에는 아주 무능해서, 상식에 반하는 문제를 들고 찾아오는 고객은 돌려보냅니다. 돈이 될 리 없는 몇 건의 사건을 자청하다시피해서 맡기는 하지만 법정에서 그는 언제나 패자입니다. 야비한 야심을 속으로 감춘채 지성의 얼굴을 한 상대 변호사는 이 신출내기의 뱃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던 것입니다. 약한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그의 연설은 호소력이 있습니다. 자칫하면 그 연설에 감동할 정도로요. 그는 분명 진실의 한쪽 끝을 분명히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번번히 패합니다. 그게 진실의 운명이라고는 말하지 말아주십시오.

한번은 건달로 살고 있는 어릴 적 친구가 법정에 구경왔습니다. 그날도 그는 멋진 변론을 펼쳤으나, 상대편 변호사의 노련함에는 역부족입니다. 패배는 자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공판이 끝난 후 둘은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소줏잔을 나눕니다. 술잔을 털어넣는 속도가 빠른 것으로 보아 그는 무기력한 자신에 대해 견딜 수 없었던가 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건달 친구가 심드렁하게 한 마디 던집니다.
"내가 보기에 너는 변호사 소질이 없는 것 같더라."
위로는 못해줄 망정 이게 무슨 소립니까? 하지만 그 변호사는 친구의 그 말을 수긍하더군요. 기분 나쁜 표정도 아니었구요. 자라목이 외부의 자극에 쑥 들어가듯이 자기의 무력감 속에 더 깊이 침잠하는 것이었습니다. 애꿎은 소주만 거푸 마시면서요. 그 말을 들으면서 저렇게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심한 친구는 다시 발 앞의 돌멩이를 차듯 툭 말을 던지더군요.
"내가 당구장의 죽돌이로 일할 때, 가끔 포커를 치곤 했는데, 패가 어떻게 들어왔나 보다는 상대방의 패를 정확히 읽는 사람이 늘 따더라구. 그런데 내가 보니까 너는 상대편의 패를 전혀 읽지 못하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하고는 그 건달 친구는 표표히 자리를 떴습니다. 멋있지요? 마치 선풍(禪風) 아닙니까? 변호사의 눈이 번쩍하더군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대목에서 그만 나의 평화가 깨졌지 뭡니까? 사실 나는 쇼파에 누워서 그 드라마를 보고 있었거든요. 아무 생각없이. 그런데 그 건달 녀석이 던진 말 뭉치가 내 무의식의 한켠을 특 쳤던 겁니다. 상대방의 패를 읽지 못한다는 말은 무능하고 뭉툭한 내 삶에 꼭 들어맞는 말이었던 것이지요.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습니다. 사실 나도 진실의 한쪽 끝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고집스럽게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현실 속에서 진실이라는 것(?)은 참 무력하더라구요. '나'의 진실을 진실로 받아줄 '너'가 없는 진실은 창백한 진실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나'의 진실에 공감해주지 않고, 기대만큼의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 이들에 대해, 때로는 서운해하고, 노여워하고, 분노하고, 그러다가 무력한 진실에 대해 회의하게 되고, 급기야는 영혼의 빙점을 보여주는 냉소주의에 빠지게 되는 거지요.

발로 살지 못하는 까닭이겠지요? 신경림 선생님의 시가 건강한 것은 시에 발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너'를 향해 나아가는 '나'의 수고가, 그리고 '너'의 삶을 듣기 위한 귀기울임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그분의 시는 전해줍니다. 관념적인 진실은 건조합니다. 말인즉은 구구절절 청산유수지만, 듣고나면 왠지 공허해지는 말이 있는가 하면, 장식 하나없이 소박하고 새로울 것도 없는 말이지만 듣고 나면 울림의 여운이 오래 남는 말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이 그랬지요? 그런 말은 발화자(發話者)가 상대방을 향해 한 말이 아니라, 상대방 속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나의 '진실'과 '진정'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진실'과 '진정'도 소중합니다. 그리고 진실과 진실의 만남의 장도 소중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패를 잘 읽어야 하는 것은 그 장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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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철(13 06-05 10:06)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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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ta(20 10-20 04:10)
목사님의 진실... 알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어떤 삶을 사시는지.. 단지 가까이 뵐 수 없고, 말할 수 없어 마음으로 느끼고만 있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시대의 목사님임을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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