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참 사람을 기다리며 2000년 0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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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루스테스는 희랍신화에 나오는 괴인이다. 그는 아테나이로 통하는 관문에 쇠침대를 갖다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 침대에 눕혀서 키가 큰 나그네는 잘라 죽이고, 키가 작은 나그네는 늘여서 죽이곤 했다. 그는 '차이'를 견디지 못한다. 자기와 다른 것은 다 위험한 것이고, 파괴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예측될 수도, 제어될 수도 없는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시체로 바꾸어 놓아야만 안심한다는 점에서 그는 죽음 애호자이다. 프로크루스테스는 테바이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그의 그림자는 지금도 여전히 짙게 드리워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하나씩 간직하고 살아간다. 자신이 기준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재단한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지식, 내 판단을 절대화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이의 눈에서 티끌을 빼겠다고 나선다. 스스로 '우상'이 되려 하는 것이다.
신앙이란 우리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독선의 우상을 철폐하는 과정이다. 신앙의 성숙이란 애벌레가 고치로 변하고, 고치에서 나비가 나오듯이 자기애(自己愛)라는 징그러운 자아에서 해방되는 탈바꿈의 과정이다. 탈바꿈의 과정은 항상 고통이 따른다. '나의 세계'가 깨지는 아픔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성숙의 과육을 즐길 수는 없다. 성숙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낯선 것들에 대한 개방성이다. 아브라함은 자아가 해체된 모리아산 정상에서 여호와를 새롭게 만났고, 이삭은 아버지의 칼날 밑에서 새로운 종교를 배웠다. 낯선 것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성숙으로의 초대장이다. 나와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신앙적인 신실함이 아니라 미성숙의 징표이다.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첫째 계명은 어느 누구도 신의 자리, 곧 '기준'의 자리에 서려 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이다. 그런데 오늘의 감리교회에는 스스로 기준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독신의 무리들이 횡행하고 있다. 모든 것을 돌로 바꾸어 버리는 메두사의 시선처럼, 나와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이단, 사탄, 적그리스도라는 표찰을 붙임으로써 인격을 말살하는 행위가 신앙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십자가란 무엇인가? 권력의 부정이 아닌가? 자기 뜻에 따라 지배하고, 조작하려는 악마의 일의적인 욕구에 대한 사랑의 저항이 아닌가?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반역의 봉화가 아닌가? 그런데 오늘의 감리교회에서 십자가는 권력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 다른 이들의 견해와 주장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의 영적 오만, 또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이해할 능력도 없으면서 '진리'가 아니라 '우리 의식'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몽매함, 힘을 가진 자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추종함으로써 지위와 부를 확보하려는 사람들의 아첨이 삼위일체가 되어 감리교회의 난맥상을 빚고 있다.
우리는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의 전망이 불투명하고 얽히고설킨 사상의 미로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찬 샘물을 찾듯 다가가 귀 기울일만한 어른을 갖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하늘은 구체적인 인격을 통해 자신의 뜻을 드러낸다 한다. 집요한 자기애의 인력을 자기 부정의 날선 검으로 잘라내, 텅 비어 있으나 오히려 넉넉한 큰 어른을 만나고 싶다. 모두가 진실이라 우겨 말할 때 홀로 떨쳐 일어나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사람, 폭력과 광기의 세상에서 참과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거는 예수적인 존재는 어디에 있는가? 스스로 높아지려고 경쟁하는 사람들 속에서 진리를 자취를 감춘다. 권력보다 달콤한 유혹은 없다. 권력은 자기의 쇠침대에 다른 사람들을 눕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의 달콤함 뒤에는 낼름거리는 뱀의 혓바닥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우리 시대는 새로운 '테세우스'를 기다린다. 프로크루스테스를 도륙하는 세속적인 영웅 말고, 그조차 품어 안아 변화시키는 신앙의 영웅 말이다. 이 시대는 날마다 자기 속에서 잡초처럼 돋아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잘라내면서, 시련을 통해 더욱 강인해지고 어두울수록 더욱 밝게 타오를 참 사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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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ta(20 10-19 08:10)
가장 인간적이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목사님을 대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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