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님 컬럼

제목 소멸과 불멸 2000년 0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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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한번 같이 갑시다" 하면 "내려올 걸 뭐하러 힘들게 올라가요" 하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대화는 단절되게 마련입니다. "좋지요, 하지만 바뻐서요", 혹은 "저는 산보다 바다를 좋아합니다" 한다면 대화는 어떻게든 이어집니다. 하지만 "내려올 걸 뭐하러 올라가요" 하는 응답은 당신과는 나눌 대화가 없다는 선언인 것 같아서 속상해집니다. 산을 오를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대체 나는 왜 해야 할 일을 잔뜩 쌓아두고 산에 오르지? 건강을 위해서? 삶에 여백을 만들기 위해서? 바위 타는 재미로? 사람만나는 재미로? 자연을 벗삼으려고? 그러다가 어쩌면 내가 산을 오르는 것은 山行이 인생을 닮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산길은 때로는 가파르고 숨가쁘지만, 어떤 때는 한적한 오솔길을 휘적휘적 걷는 것처럼 여유롭기도 합니다. 때로는 권태롭고, 때로는 막막하고, 때로는 아찔하고, 때로는 영문모를 그리움이 문득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고, 때로는 질척거리고, 때로는 팍팍하고, 때로는 아름답습니다. 산길을 걸으며 나는 내 인생과 만나는지도 모릅니다.
3월 8일 10시 경, 북한산에 눈이 내렸습니다. 처음에는 가는 눈발이 오락가락 하더니 산으로 들어갈수록 눈발은 점점 굵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산에서 눈을 만난 흥감함에 겨워서인지 문득 백석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지금 내리는 눈은 그저 오는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이란 말이지, 하면서 제법 시적인 흥에 겨워했습니다. 하지만 바람 한 점 없는 허공에서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 나붓나붓 땅에 착지하는 눈은 침묵의 문으로 나를 인도했습니다. 하릴없이 내리는 눈은 시간을 소거해가는 무위의 사도였던 셈인가요? 세상일로 난분분했던 마음 한 자락이 고요해지기 시작하더군요. 눈이 제 마음 속에 쌓이기 시작했기 때문일까요? 그때 함박눈 사이로 까마귀 한 마리가 사선으로 날아갔습니다. 마치 흰 눈에 대한 대구(對句)처럼요. 마술처럼 '소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깨끗하게 잎진 나목 위에 살포시 쌓인 눈은 흑색의 대비로 아름다웠지만, 얼마 안가 녹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쌓이지도 흐르지도 못하고 도착과 동시에 녹아버리는 육각의 결정체. 하지만 '소멸'은 '허무'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소멸하는 것들의 아픔과 한을 모르지는 않습니다만, 돌이킬 수 없다면 깨끗이 스러지는 것이 아름다움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불멸을 꿈꾸며 삽니다. 잊혀지는 것이 두렵기에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온 흔적을 남기려고 합니다. 마치 그것이 생명의 보람인 것처럼 말입니다. 자식을 낳는 것도, 책을 쓰는 것도, 집을 짓는 것도, 족보를 만드는 것도, 죽어 봉분을 만드는 것도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불멸을 얻으려고 하는 어떠한 인위적인 노력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차라리 추해 보입니다. 소멸만이 아름답다고 강변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다 척박한 산비탈에 씨알이 떨어져, 싹을 틔운 나무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통을 뒤틀고, 장애물을 휘돌면서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보면 '생명이 대체 뭐길래 저토록…'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나무들은 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땅을 찾아 뒤채다가 그만 밖으로 튀어나온 노근(露根)을 보면 흙 한 줌 덮어주고 싶어집니다. 그 나무들이 추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생명의 본성을 거스리지 않고, 환경적인 조건을 원망하지 않고, 제 몫의 삶을 말없이 살아내는 강인함 때문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봅니다.
히브리 시인은 모든 인생의 들의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집니다. 그게 자연이지요. 하지만 꽃이 진 자리에는 열매나 씨앗이 남게 마련이지요. 잎지고, 꽃진 후에 나는 무슨 씨앗으로 남을까 곰곰 생각해봅니다. 모든 소멸은 불멸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비애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소멸이 왜 두렵겠습니까? 길고 짧음이 문제겠습니까? 화려함과 수더분함이 문제겠습니까? 저는 불멸을 잉태한 소멸을 눈물겹게 부둥켜 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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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ta(20 10-19 05:10)
어떻게 목사님이 이런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으신지? ㅇ왠지 눈물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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