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은혜
- 서울의 소년소녀들에게
천상병
애들아 들어라
이 할아버지의 말을 들어라
지금은 12월 겨울이지만
이윽고 내일
봄이 온다
자연은
커다란 문을 열고
자연의 은혜를
활짝 열어줄 것이다
산이나 들에
꽃이 만발하고
싱싱한 나무가
너희들을 맞이할 것이다
자연의 은혜는
너무도 넓고 기쁘다
시골에 가서
그 자연의 은혜를
맛보아라.
아이들
나는 55세가 되도록
나는 아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을 좋아한다
동네 아이들이 귀여워서
나는 그들 아이들의 친구가 된다
아이들은 순진하고 정직하다
예수님은 아이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고 하셨다
나는 아이같이 순진무구하게
지금까지 살았다
아이들아 아이들아
크면 어른이 되는데
커도 순진하게 살아
내일을 살아다오
그러면 하느님이 돌보시리라.
빛
내낮의 빛은 태양입니다
밤의 빛은 전기요 등불입니다
내가 사는 빛은 예수님이고
내가 죽는 빛도 예수님이다
삼십 년 만에 만난 중학동창이
으리으리한 술집에서
내 마음을 달래주는 일
그것 또한 빛은 빛이다
빛은 어디서나 있을 수 있고
빛은 있기 어렵습니다
나의 삶이여
빛을 외면하지 말게 하소서.
나의 가난함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
내 형제들 셋은 부산에서 잘 살지만
형제들 신세는 딱 질색이다
각 문학사에서 날 돌봐주고
몇몇 문인들이 날 도와주고
그러니 나는 불편함을 모른다
다만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가난해도
나는 가장 행복을 맛본다
돈과 행복은 상관없다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해야 한다.
기쁨
친구가 멀리서 와
재미있는 이야길 하면
나는 킬킬 웃어 제낀다
그때 나는 기쁜 것이다
기쁨이란 뭐냐? 라고요?
하나 난 웃을 뿐
기쁨이 크면 웃을 따름
꼬치꼬치 캐묻지 말아라
그저 웃음으로 마음이 찬다
아주 좋은 일이 있을 때
생색이 나고 활기가 나고
하늘마저 다정한 누님 같다.
희망
내일의 정상을 쳐다보며
목을 뽑고 손을 들어
오늘 햇살을 간다
한 시간이 아깝고 귀중하다
일거리는 쌓여 있고
그러나 보라 내일의 빛이
창이 앞으로 열렸다
그 창 그 앞 그 하늘!
하늘 위 구름송이 같은 희망이여!
나는 동서남북 사방을 이끌고
발걸음도 가벼이 내일로 간다.
일을 즐겁게
모든 일을
이왕 할 바에야
아주 즐겁게 하자
일하는데
괴로움을 느끼면
몸에도 나쁘고
일에 즐거움 느끼면
일의 능률도 오르고
몸에도 아주 좋으니
그러니
즐거운 마음과
건강한 생각으로 일을 합시당.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답웠더라고 말하리라.
아기비
부실부실 아기비 나리다
술 한 잔 마시는데 우산 들고 가니
아기비라서 날이 좀 밝다
비는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맞았겠지
공도 없고 사도 없는 비라서
자연의 섭리의 이 고마움이여!
하늘의 천도따라 오시는 비를
기쁨으로 모셔야 되리라
지상에 물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