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새소리
새는 언제나 명랑하고 즐겁다
하늘밑이 새의 나라고
어디서나 거리낌 없다
자유롭고 기쁜 것이다
즐거워서 내는 소리가 새소리다
그런데 그 소리를
울음소리일지 모른다고
어떤 시인이 했는데 얼빠진 말이다
새의 지저귐은
삶의 환희요 기쁨이다
우리도 아무쪼록 새처럼
명랑하고 즐거워하자!
즐거워서 내는 소리가
새소리이다
그 소리를 괴로움으로 듣다니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놈이냐
하늘 아래가 자유롭고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새는
아랫도리 인간을 불쌍히 보고
아리랑 아리랑 하고 부를지 모른다.
미소
-새
입가에 흐뭇스레 진 엷은 웃음은
삶과 죽음 가에 살짝 걸린
실오라기 외나무다리
새는 그 다리 위를 날아가다
우정과 결심 그리고 용기
그런 양 나래 저으며
풀잎 슬몃 건드리는 바람이기보다
그 뿌리에 와 닿아주는 바람
이 가슴팍에서 빛나는 햇발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갈
풀밭 길에서
입가 언덕에 맑은 웃음 몇번인가는
햇빛 반짝이는 언덕으로 오라
나의 친구여
언덕에서 언덕으로 가기에는
수많은 바다를 건너야 한다지만
나의 친구여.
한 가지 소원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 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들어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 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컷 살았나 싶다
별다른 불만은 없지만
똥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 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
우리집 뜰의 봄
오늘은 91년 4월 25일
뜰에 매화가 한창이다
라일락도 피고
홍매화도 피었다
봄 향기가 가득하다
꽃송이들은
자랑스러운듯
힘차게 피고 있다
봄기풍이 난만하고
천하를 이룬 것 같다.
봄빛
오늘은 91년 4월 14일이니
봄빛이 한창이다
뜰의 나무들도
초록색으로 물들었으니
눈에 참 좋다
어떻게 봄이 오는가?
그건 하느님의 섭리이다
인생을 즐겁게 할려고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