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속물적 욕망을 넘어 고결한 인간 되기 2022년 07월 30일
작성자 김기석
속물적 욕망을 넘어서 고결한 인간 되기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1,2>, 이인규 옮김, 민음사, 2021)

1837년부터 1901년에 이르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가히 영국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고, 식민지 개척을 통해 경제력과 군사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산업자본이 형성되면서 신흥 자산가 계층들은 타고난 귀족 신분과 구별되는 ‘신사’(gentleman)라는 이상적 인간형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위대한 유산>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풍속도를 정밀하게 그려냈다. 1861년에 완성된 이 소설은 ‘핍’이라는 사람이 자기 삶을 반성적으로 회고하는 1인칭 소설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비견되는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위대한 유산>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도시 풍경이나 사회상은 후경으로 물러나 있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저마다 나름의 성격을 부여받은 인물들이다. 

전체 59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순진무구하던 핍의 소년 시절, 신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던 런던 시절, 그리고 시련을 통해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시절 이야기가 거의 비슷한 분량으로 배분되어 있다. 서양 사람들의 정신세계 속에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낙원-실낙원-복낙원의 변증법적 구조가 이 소설에도 반영되어 있다. 고아 소년인 핍은 영국 남동부의 켄트 습지에서 우악스럽고 거친 누나와 소박하지만 인간적 고귀함을 드러내곤 하는 대장장이 매형 조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자기 존재를 긍정할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 마치 내가 이성과 신앙과 도덕이 명령하는 것을 거역한 채, 그리고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강력히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에 태어나기를 고집한 죄인인 것처럼 누나에게 취급당했다.”(1권 p.45)

씨앗
어느 날 핍은 어머니 아버지가 묻힌 묘지에 가서 묘석을 살펴보다가 감옥선을 탈출한 죄수에게 잡힌다. 죄수는 핍에게 먹을 것과 줄칼을 가져오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거라고 위협한다. 핍은 누나의 감시를 피해 가며 음식을 마련하고 매형의 대장간에서 줄칼을 가져다 죄수에게 건네준다. 무섭기도 했지만 죄수에 대한 연민의 마음도 작용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탈출 죄수는 다시 붙잡히지만 자기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음으로 핍을 곤경에서 건져준다. 탈출 죄수와의 그 우연한 만남은 핍의 삶의 과정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자기 처지에 대한 투사 때문이든 죄수에 대한 연민 때문이든 핍이 그 죄수에게 보여준 따뜻한 응대는 그의 인생이라는 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았다. 소설은 그 씨앗이 어떤 형태로 성장해 가는지를 보여준다.

핍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 중 하나는 새티스 하우스이다. 부유하지만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괴퍅한 여인 미스 해비셤이 홀로 은둔하고 있는 음울한 집이다. 핍은 영문도 모른 채 그 집에 불려갔다가 기괴한 광경에 기가 질린다. 미스 해비셤은 누렇게 변색된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화려한 모든 집기들은 광채를 잃은 것처럼 보였고, 웨딩 케이크는 썩은 덩어리가 된 채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미스 해비셤은 결혼식 파티가 예정된 날 신랑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남성들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미스 해비셤은 자기가 신부복을 입은 그대로 결혼식 피로연 식탁에 눕혀지는 날, 곧 죽음의 날, 자기를 배신한 이에 대한 저주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새티스 하우스는 시간이 정지된 곳이다. 새티스 하우스에 있는 모든 시계는 결혼식이 취소된 9시 20분 전에 맞춰져 있었다. 흐름을 멈추고 정지해 버린 시간은 변화가 불가능한 시간이다. 멈춘 시간을 깨울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지만 미스 해비셤은 오히려 복수를 선택함으로 자기 삶을 박제화한다. 배신의 기억은 또 다른 씨앗이 되어 영혼의 마비를 초래했던 것이다. 핍은 새티스 하우스에서 미스 해비셤의 양녀인 에스텔러를 만나지만 에스텔러는 핍을 차갑고 경멸스럽게 대한다. 예쁘지만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에스텔러의 존재로 말미암아 핍은 자기 처지를 더욱 고통스럽게 자각하게 된다.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나는 그날 내가 보았던 모든 것들을 깊이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내가 천한 막노동꾼 소년이라는 점과, 내 손이 거칠다는 것, 내 구두가 두껍고 흉하다는 것, 네이브를 잭이라고 부르는 천박한 습관을 내가 지니고 있다는 것, 내가 어제까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무지하다는 것과, 전체적으로 볼 때 내가 비천하고 불량한 존재라는 사실 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1권 p.122)

신사와 속물
그날 핍의 가슴에 한 가지 꿈이 심겨졌다. 부유한 신사가 되어 무정하고 거만하고 변덕스러운 에스텔러에게 합당한 사람 되고 싶다는 꿈이었다. 중세의 신사(gentleman)가 갑옷과 검으로 무장하고 가난한 사람 혹은 억압받는 사람을 구하는 것을 의무로 삼았다면,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는 중산계급이 추구하던 이상적 인간상, 즉 물질적 여유를 누리고 정신적 소양과 도덕적 품성을 갖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기 나름의 개인적·사회적 개성을 조화롭게 개발한 사람, 열정을 자제할 줄 아는 사람, 자기 자신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고 남을 헐뜯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해 자기 감정의 주인, ‘자기 영혼의 선장’이 신사로 받아들여졌다.”(니코스 카잔차키스, <영국기행>, 이종인 옮김, 열린책들, p.211)고 말한다. 

핍은 비디의 도움으로 신사가 되기 위한 기초 교육에 돌입한다. 읽고 쓰기를 배우고 자기를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어느 날 변호사 재거스가 등장하면서 핍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그는 자기 신분을 밝히길 꺼리는 은인이 핍에게 많은 유산을 남겼다면서 그 은인은 핍이 런던으로 올라가 신사 교육을 받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가 막대한 유산 상속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빠르게 알려지면서 핍을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확연하게 변한다. 핍은 돈의 엄청난 위력을 경험한다. 핍은 런던행이 신사가 되려는 자기 소원을 이룰 기회라 여기며 대장장이 매형에게 작별을 고한다. 신분 상승의 꿈은 빅토리아 시대 중산층들을 사로잡고 있던 사회적 욕망이었고, 핍은 그런 시대정신을 온전히 반영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찰스 디킨스는 ‘신사’ 계급에 진입하려는 이들의 욕망 속에 담긴 허위의식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꿰뚫어보았다. 자본주의 물결이 시대를 휩쓸면서 신사라는 이념의 정신적 요소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재산과 신분 등 외적인 요소만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신사의 자리를 속물이 대신하게 된 셈이다. 핍은 런던에서 만난 허버트 포킷의 도움으로 신사 교육을 받지만, 풍요로운 삶이 주는 매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속물적으로 전락하기 시작한다. “나는 어느 틈에 나의 사치스러운 낭비벽과 허버트의 후원자 같은 건방진 태도와 내 훌륭한 장래를 자랑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1권 p.391)

핍은 매형 조가 런던에 있는 그를 잠시 방문하려 한다는 비디의 편지를 받고 당황한다. “나는 기쁜 감정이 아니었다. 참으로 수많은 점에서 그의 신세를 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쁜 감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큰 심리적 동요와 일종의 분노 어린 창피함, 그리고 내 신분과 맞지 않는다는 날카로운 느낌으로 나는 그의 방문을 생각했다.”(1권 p.399) 자기의 비천한 뿌리를 상기시키는 조의 존재를 그는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영혼의 속물적 전락이다. 그에 비해 조는 신사로서의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위엄이 있다. 그는 세상에는 역할의 구분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 역할이 무엇이든 존엄하다고 말함으로 핍을 무색하게 만든다.

핍은 속물적 삶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21세가 될 무렵부터 유산 가운데 일부를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되자 그는 더욱 물질에서 비롯되는 권력의 단맛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결국에는 많은 빚까지 지게 된다. 돈이 빚어내는 양가적 감정을 핍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인생을 끊임없이 즐기고 있다는 허구적인 유쾌함과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은밀한 자각이 공존하고 있었다”(2권 p.47).

진정한 유산
핍은 자기의 감춰진 은인이 옛날 무덤에서 그를 위협하던 탈출 죄수 매그위치라는 사실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는다. “너는 나에게 고귀하게 행동했단다, 얘야.”(2권 p.122) 매그위치는 핍이 보여준 친절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신사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호주에서 종신 유형수로 지내면서 그는 많은 재산을 모았고, 그 돈으로 핍을 후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은밀하게 신사 하나를 기른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일종의 보상이었던 것이다. 핍은 비로소 자기가 난파당했음을 알게 됐다. 그는 미스 해비셤의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던 에스텔러 역시 미스 해비셤의 복수를 수행할 일종의 도구였던 것이다.

“나는 하나의 편리한 도구로서만, 탐욕스러운 친척들에게 고통을 주는 수단으로서만, 다른 연습감이 가까이에 없을 때 연습 도구로 대신 사용할, 기계 심장을 지닌 인형 같은 존재로서만 새티스 하우스에 용인되었던 것이다.”(2권 p.134)

자기가 난파당했음을 알아차린 핍은 비로소 현실을 현실로 보기 시작한다.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핍은 매그위치의 동업자였던 사기꾼 콤피슨이 미스 해비셤을 버린 사람이고, 에스텔러가 매그위치의 딸임을 알게 된다. 난마처럼 얽힌 인간사에 대한 자각 때문이었을까? 핍은 처음으로 의젓한 일을 해보기로 한다. 종신 유형수가 유형지를 떠났다가 붙잡히면 사형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핍은 매그위치가 런던을 탈출할 수 있도록 돕기로 한다. 그것은 아무런 보상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다만 자기의 은인이 되고자 했던 사람, 깊은 애정과 감사와 관대함의 감정을 오랜 기간 간직해온 사람에게서 아름다운 인간을 보았던 것이다. “그에게서 나는 오직, 조에게 배은망덕하게 행동했던 나 자신보다 훨씬 훌륭한 인간의 모습만을 발견했던 것이다.”(2권 p.356) 종신 유형수를 위해 위험과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 핍을 사로잡고 있던 속물성으로부터 그를 해방하는 기회였다. 그러나 보트를 타고 탈출을 시도하던 매그위치는 결국 붙잡혔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핍은 그의 곁을 끝까지 지켰다. 

모든 유산을 다 잃어버린 핍은 빚을 갚지 못해 고발당했고, 열병에 걸려 눕고 말았다. 절망의 나락에 빠져들 때 그의 곁을 지킨 것은 매형 조였다. 조는 핍의 빚을 다 청산해주고 그가 인간의 땅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었다. 핍은 조와 비디가 살고 있는 습지의 고향을 찾아가면서 비로소 마음의 안식을 되찾는다. “오랜 세월 동안 방랑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돌아오고 있는 그런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2권 p.413) 고향 상실, 방랑, 귀향의 순환이 마침내 이루어졌다. 그러나 습지는 더 이상 그가 머물 곳이 아니었다.

허버트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가서 성실하게 살던 핍은 여러 해 후 새티스 하우스를 찾는다. 그곳에서 과부가 된 에스텔러와 마주친다. 차가움과 잔인함이 깃들었던 에스텔러의 얼굴에는 어느 결에 슬픈 친절함이 떠오르고 있었다. 시련의 가르침을 통해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변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휘어지고 부서졌어. 하지만 희망컨대 좀 더 나은 모양으로 휘어지고 부서졌다고 생각해.”(2-426) 둘은 폐허로 변한 새티스 하우스에서 벗어나 각자의 길을 갔다. 우정을 간직하고. 저녁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위대한 유산은 막대한 돈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 얻는 인간다운 순수함이었다. 찰스 디킨스는 인간 속에 씨앗의 형태로 깃든 사랑과 증오, 속물과 신사가 어떻게 싹이 트고 자라는지를 치밀한 이야기 속에 담아내고 있다. 돈이 새로운 우상이 되고 있는 이 시대에 이 고전적 소설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돌아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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