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2023년 09월 03일
작성자 김기석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영웅 헤라클레스는 자기 죄를 씻기 위해 에우리스테우스 왕의 종이 되었다. 심술궂었던 왕은 그에게 열두 가지 과업을 해결하라고 명령했다.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을 하루 동안에 청소하는 일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 외양간에는 소가 수천 마리 살고 있었고, 여러 해 동안 한 번도 청소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이지만 헤라클레스는 알페이오스 강과 페네우스의 강물 줄기를 외양간으로 끌어들여 단번에 외양간 청소를 끝냈다. 과거에는 일거에 일을 끝내버린 헤라클레스의 지력과 담력에 마음이 후련해지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외양간의 오물들이 강물로 흘러들어갔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 때문이다. 

일본의 도쿄 전력은 8월 24일부터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를 시작했다. 주변국들의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는 경청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그런 행태에 대해 항의하기는커녕 오히려 분노하고 있는 국민들을 괴담의 생산자 혹은 유포자로 낙인찍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해도 우리나라에 위험하지 않다는 취지를 담은 정부의 유튜브 홍보 영상 제작을 대통령실이 직접 주도했고, 문체부가 영상 송출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정부와 과학을 믿어달라는 말은 공허하기 이를 데 없다. 과학이 객관적 사실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염수 방류 사태를 두고 과학자들의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이 매우 주관적일 수 있음을 반증한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는 지구 공동체를 향한 생태 학살이라고 규정하는 종교인들도 있다. 오염수로 인해 생태계가 교란되고, 수많은 종들의 죽음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이다. 삼중수소가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라 말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것이 바다에 혹은 인체에 오랜 시간 누적될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유전적 변형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일어날 수도 있다. 미래 세대에 미칠 영향을 염려하는 것은 괴담이 아니다.

도쿄 전력이 내놓은 방류 계획서에 따르면 삼중수소 농도가 낮은 것부터 방류를 시작하여 향후 30년간 점차 농도가 높은 오염수를 배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충격의 표백을 자신하기 때문일까? 주변국들의 우려와 충격의 시효가 길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없다면 결코 짤 수 없는 계획서이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어렵지 않은 법이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 허용이 나쁜 선례가 되어, 여러 나라가 더 위험한 물질들을 해양에 투기하는 일을 망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모든 생명을 품는 바다가 죽음의 공간으로 변하는 순간 인류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기원전 6세기의 히브리 예언자 에스겔은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동족들을 생각하다가 놀라운 비전을 본다. 성전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가면서 조금씩 수위가 높아지고 강폭이 넓어지는 광경이었다. 강 좌우편에는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에게 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 강물은 동방으로 향하여 흐르다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마침내 바다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강물이 바다에 이른다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다음에 들려온 소리였다. "이 흘러내리는 물로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찌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게 될 것이다." 이 장면에서 바다는 사해를 가리킨다. 사해는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있기에 출구가 없다. 사해에 이른 물은 더 이상 흐르지 못한다. 흐르지 못하고 막혀 있기에 사해는 염분이 많아져 아무 것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되고 말았다.

물론 죽음의 바다가 살아나는 꿈은 몽상일 수 있다. 그런데 역사의 새로움은 언제나 말도 안되는 꿈을 꾸는 이들을 통해 개시되곤 했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죽었던 생명들이 살아나고, 강 좌우편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던지는 꿈. 이러한 꿈조차 없다면 삶은 얼마나 초라한가? 생명의 바다가 죽음의 바다로 변하도록 방치하면 안 된다. 생명이 넘실대는 세상의 꿈을 보여주던 에스겔의 비전은 경고음도 내포하고 있다.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다." 방사능 오염수가 흘러가는 곳마다 불모의 공간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경고의 나팔소리를 무시할 때 재앙은 예기치 않은 시간 우리 삶을 엄습하게 마련이다.

(* 2023/09/02일자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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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23 10-15 01:10)
김기석 목사님 칼럼이나 글을 대할 때 마다 항상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다. 간결하면서도 점잖게 우리가 지금 무엇을 잘 못 하고 있는 지를 말 해주고 있다!! 신앙인이란 어떤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 속에 내 자신을 다시한번 뒤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은 사유를 하게 되었다, 좀 더 많은 시간을 우리와 함께 해 주시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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