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그대, 안녕하신지요? 2023년 09월 03일
작성자 김기석
그대, 안녕하신지요?

어린 시절, 아침에 길을 걷다가 동네 어른들을 뵐 때마다 ‘진지 잡수셨어요?’라고 인사했다. 진지는 누구나 알듯이 밥의 높임말이다. 밥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가 궁금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이 인사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기원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인사말이 사라졌다. 먹을거리가 풍부해진 세태의 반영일 것이다. 유대인들의 인사말은 ‘샬롬’이다. 평화라고 흔히 해석되지만 이 말 속에 담긴 함의는 복잡하다. 평화는 전쟁이나 불화가 없는 상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평화는 몸도 마음도 두루 평안할 뿐 아니라, 배가 고프거나 몸이 아프지 않고, 가족들이 다 무고할 때 우리 마음에 깃드는 고요함이다. 평화는 그래서 현실태라기보다는 실현되어야 하는 가능태일 때가 많다. 유대인들은 일상의 자리에서 뿐만 아니라 절멸수용소에서도 샬롬의 인사를 나누었다. 인도, 네팔, 스리랑카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인사말 ‘나마스테’는 산스크리트어로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내 앞에 얼굴로 현전한 사람을 아끼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단초라는 뜻이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산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이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일은 아주 자연스럽다. 낯선 이가 말을 건다고 불쾌한 낯빛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때 ‘안녕하세요?’라는 말 속에는 육체적 힘듦을 마다하지 않고 산을 찾는 이들의 동류의식이 담겨 있고, 끝까지 안전하게 걸으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일상의 자리에서는 낯선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기 어렵다. 얼빠진 사람 취급당하기 일쑤이다. 공동주택에 살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가 머쓱해진 경험이 한 두 번은 있을 것이다. 우물우물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런 대꾸도 없이 외면하는 이들도 있다. 그 완강한 침묵은 ‘나는 굳이 당신과 섞이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발언이다.

적대감이 넘치는 세상일수록 인사에 인색하다. 위험사회에 살기 때문일까? 인간은 타자들의 요구를 이해하고 응답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를 실현하는 존재이다.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은 ‘나를 존중해달라’, ‘나를 해치지 말라’는 일종의 메시지이다. 다른 사람의 동료가 되고, 보살피고, 그의 짐을 함께 지기 위해 몸을 낮출 때 우리는 비로소 욕구와 충족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욕망과 충족의 회로에 갇힌 이들일수록 타인들에게 적대적이다. 무표정으로 주변에 울타리를 쌓는 사람들, 다른 이들을 비존재 취급하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이 아닐까? 갑각류처럼 자기 속으로 자꾸 움츠리는 이들의 내면은 황폐해지기 마련이다. 다른 이들과의 소통을 완강히 거부함으로써 그는 심각한 자기 소외를 초래한다.

맹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 속에서 자기 마음을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줄 모르는 이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그들의 진면목을 깨우쳐주려고 ‘우산(牛山)의 숲’ 이야기를 들려준다(맹자, 고자 상편). 수목이 무성한 그 산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 산은 제나라의 도성 부근에 있었던지라 사람들이 저마다 집을 짓느라고 도끼로 나무를 베어내고, 소와 양을 방목하다보니 그만 민둥산이 되고 말았다. 후세의 사람들은 우산이 본래 나무가 없는 산인 줄 알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본래 다른 사람을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욕망의 벌판에서 허둥거리다 보니 그 마음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 맹자의 가르침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자기 충족을 지향하는 삶에서 벗어날 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열린다. 유대인 사상가인 아브라함 조수아 헤셸은 타자들에게 관심하는 사람이 사람이라고 말한다. “돌멩이는 자기-충족을 하지만 인간은 자기-능가(self-surpassing)를 한다. 그에게는 언제나 자신을 내주어야 할 누군가가 필요하며, 자기를 초월하는 무엇인가를 숭배하지 않는 한 자신과 화합을 이룰 수도 없다”(<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이현주 옮김, 종로서적, p.117). 마음을 다하여 독자들에게 수인사를 건넨다. ‘그대, 안녕하신지요?’   

(* 월간 에세이 2023년 9월호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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