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컬럼

제목 [목회서신] 새 시대에 산파가 되십시오 2020년 04월 04일
작성자 김기석


새 시대의 산파가 되십시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16:33)

주님의 은총이 교우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빕니다. 한 주간도 무탈하게 잘 지내셨는지요? 도처에서 왈큰왈큰 피어나는 꽃들이 봄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화사한 복사꽃, 명자나무 붉은 꽃이 연록의 숲을 화려하게 치장하더니, 수수꽃다리도 아름답게 피어나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절로 흥겨운지 딱새, 박새, 노랑턱멧새, 직박구리도 나무 사이를 경쾌하게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우울한 것은 그저 사람뿐인 듯싶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유채꽃 사이를 걷고 싶은 것은 비단 젊은이들만의 춘정이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마저 누릴 수 없는 봄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가끔 공원을 걷다가 망연히 서서 운동 기구를 이용하는 이들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젊은 분들보다 연세 지극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얼굴의 주름과 희끗희끗한 머리를 보며 교회의 어르신들을 떠올립니다. 누구보다도 교회에 오고 싶으실 텐데, 차마 그럴 수 없어서 마음으로만 끌탕하는 그 마음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그래도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모두 건강 잘 유지하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이번 주일은 종려주일이고, 이어 한 주간 동안 고난 주간이 이어집니다. 유대교인들도 이 주간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유월절 명절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음을 들으시고 역사 속에 깊이 개입하셨습니다. 애굽의 찬란한 문명은 사실 노예들의 피땀으로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애굽에 내렸던 첫 번째 재앙은 물이 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재앙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도구처럼 이용했던 문명의 본질이 폭력임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피는 그 폭력의 상징입니다.

아홉 번째 재앙은 애굽 온 땅에 사흘 동안 짙은 어둠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재앙은 ‘태양신의 나라’를 자처하는 애굽과 태양신의 아들을 자처하는 바로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드러내 보여주었습니다. 그 빛은 가짜 빛이었습니다. 바다 위를 환히 비추는 집어등에 홀려 오징어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홉째 날의 재앙은 그 빛의 실체가 어둠임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빛이 있었다”(출10:23)고 말합니다. 그 빛은 창조의 첫날 창조하신 그 빛입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뚫고 터져 나온 빛 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절망에 빠진 이들 속에서 빛을 창조하십니다. 지금은 물론 어둠의 날입니다. 힘겹습니다. 모두가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희망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마치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모세를 태어나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탄생 못지않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입니다. 바로가 그들을 불러서 히브리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 잘 살펴서 낳은 아기가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고 명령했지만, 두 여인은 그 명을 거역했습니다. 왕의 지엄한 명령을 어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몰라서가 아닙니다. 차마 연약한 생명을 죽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이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의 서곡입니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19 이후 시대의 삶은 이전까지의 삶과 같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의 재편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 조직, 노동의 형태, 관계를 맺는 방식, 교육, 삶의 방식은 물론이고 교회의 형태도 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생태적 사고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원되는 삶이 얼마나 폭력적인 삶이었는지를 우리는 이제야 절실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가장 앞선 것처럼 보이던 유럽을 비롯한 서구 사회가 사실은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공공성이 무너진 각자도생의 사회는 위험에 처한 사회입니다. 코로나19는 우리 문명을 생명 중심적으로 재편하라는 하나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십브라와 부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불평등과 억압과 불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벗어나 모두가 서로를 귀히 여기는 새로운 질서를 탄생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둠과 죄와 모순 그리고 연약함까지 당신 어깨에 짊어지시고 주님은 죽음의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한 인간의 처절한 실패로 바라보지만, 믿음의 눈이 열린 이들은 바로 그것이 구원의 문임을 또한 깨닫습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해 남을 살리는 것,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사순절의 막바지에 그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유튜브를 통해 그날의 말씀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대략 15분에서 20분 정도가 될 것입니다. 요일별로 목회자들이 번갈아 가며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그것은 다만 생각을 해볼 실마리를 제공하려는 것입니다. 가장 편리한 시간에 고요한 장소에서 그 말씀과 만나십시오. 그 말씀을 새기고, 삶에 적용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말씀은 우리가 세속의 물결에 떠밀려 가지 않도록 해주는 영혼의 닻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가야 할 방향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키입니다.

외로움이 증대되는 시절이지만 우리가 그분의 큰 품 안에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기쁨도 누려보십시오. 한 주간 동안 주님께서 환한 얼굴로 우리를 대해주시기를 빕니다. 그 빛을 내면에 간직한 채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이들의 동행이 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0년 4월 3일
김기석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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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팀목 에스더(20 04-05 09:04)
자기를 희생해 남을 살리는 사람, 새시대의 산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그동안 우리의 삶이 뒤틀려 있었던 것은 재화를 놓고 이웃을 밀어내었기 때문임을 생각합니다.
이번 주는 목사님의 목회서신을 따라 지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주 앞에 그 이름을 아뢰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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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ta(20 10-22 07:10)
청파교회 교인이 아니면 매일 같이 제공하시는 말씀을 접할 수 없겠지요? 많이 아쉬워요. 목사님은 청파교회 뿐 아니라 national, 그리고 international audience 가 있는데... 아!!! 아쉽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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