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51. 만물의 상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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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히1:1-4
설교일시 200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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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상속자
히1:1-4
(2001/12/25)


긍휼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

하늘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사랑의 왕, 평화의 왕이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저는 이번 대강절기를 보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사랑받을만한 것이 없는 우리를 왜 사랑하시는가? 그러다가 이런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인도에 아주 나이 많은 노인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날마다 새벽이면 갠지스 강둑에 난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아 명상을 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노인이 막 명상을 마치고 눈을 떴는데, 전갈 한 마리가 하릴없이 거센 강물에 떠내려오는 게 보였습니다. 떠내려가던 전갈은 나무 가까이에 오자 강물 속으로 뻗어내려간 나무뿌리에 걸렸습니다. 전갈은 벗어나려고 죽을 힘을 다했지만 얼기설기 엉켜있는 뿌리에 점점 더 얽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본 노인은 곧 길게 늘어진 뿌리 쪽으로 몸을 굽혀 물에 빠진 전갈을 구하려고 손을 뻗쳤습니다. 그런데 노인의 손이 전갈에 닿자마다, 전갈은 사납게 손을 쏘아버렸습니다. 순간, 노인은 본능적으로 손을 끌어당겼습니다. 하지만 곧 다시 몸의 균형을 잡고, 전갈을 구하려고 몸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손이 이를 때마다 전갈은 독있는 꼬리로 사정없이 쏘아서 노인의 손은 부어올랐고, 노인은 고통을 참느라고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바로 그 때 지나가던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소리쳤습니다. "저런, 어리석은 늙은이 보았나. 정신 나간 것 아니오? 어리석은 바보나 목숨을 걸고 그 쓸모없고 추악한 놈을 구하려 할 것이오. 그 배은망덕한 것을 구하려다가 당신 죽을 것을 모른단 말이오?"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그 낯선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쏘는 것은 전갈의 천성 아닌가? 그렇다고 그것을 구해주고자 하는 내 천성을 포기해야 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헨리 누엔, {빈센트 반 고호의 소명} 중에서)


최근에 읽은 이 이야기가 두고두고 제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전갈처럼 물고 쏘아대고, 배은망덕한 우리들을 위해 주님이 오셨습니다. 주님의 오심은 곧 말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죄의 물결에 휩쓸려가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주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우리 가운데로 내려오셨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선물

우리가 예수님의 나심을 기뻐하는 것은 그분의 삶과 죽으심이 의미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은 그가 세상에 남긴 족적이 의미심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없었더라면 예수 나심의 소식은 기쁜 소식일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바르게 사는 법과 바르게 죽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는 삶이야말로 영생임을 보여주셨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Christ'에 성만찬을 뜻하는 'Mass'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곧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으로 우리에게 오셨음을 기억하는 날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기 위한 양식으로 이땅에 오셨다는 뜻이 크리스마스란 말에 이미 담겨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말 구유에 오셨다는 말은 참으로 상징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오심을 제대로 기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먹고 마시고 즐기고, 친한 사람끼리 선물을 주고 받으면 그만인가요?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한 먹이가 되어야 합니다. 남을 살리고, 남을 복되게 하고, 남을 살맛나게 하는 것, 이것이 성탄절을 기념하는 참된 의의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가리켜 만물의 상속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도 합니다. 즉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야말로 세상 만물의 주인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시고 주인이신 예수님이 스스로 선물이 되어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우리 생명을 위한 양식으로 말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주님 자신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품이 되라

그런데 그렇게도 크신 하나님이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셨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입니까? 아기는 어른들의 돌봄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가져오신 꿈도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그 꿈을 소중히 보듬어 안고 보호하고, 키워가야 할 품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바로 그 일을 위해 세움을 받았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흉포합니다. 힘있는 이들이 힘없는 이들의 살 권리를 짓밟는 세상입니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며 밤잠을 설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퀭한 눈으로 먹을 것을 달라고 손을 내민 아이들도 있습니다.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수단에서, 북한에서 전쟁의 공포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추운 밤거리에서 신문 한 장으로 추위와 싸우는 이들, 죽지 못해 사는 구차한 사람들, 세상에 들뜰수록 더욱 외로와지는 이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이들은 누구나 이 성탄절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날아온 편지 한 통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저는 고아입니다. 나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전에는 그래도 조금은 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요. 저는 당신이 화가 나서 우리가 먹을 음식을 싹 치워버렸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뭔가 잘못했다면 죄송합니다. 먹을 것을 좀 주세요. 아주 조금이라도 괜찮습니다. 당신네 나라 비행기들이 떨어뜨리는 폭탄 때문에 저는 죽을지도 몰라요. 어쩜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배고픈 건 싫어요. 그게 지금 내 운명이지만요. 음식을 주시든지, 폭탄을 주시든지, 어쨌거나 저는 기다릴 거예요.


이 짧은 편지는 딜라와르 칸이라는 여덟 살배기 소년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것입니다. "먹을 것을 좀 주세요". 우리는 이 요청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길이요,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피콜라의 크리스마스

며칠 전 신문에서 본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제목은 [피콜라의 크리스마스]입니다. 옛날 어느 작은 마을에 피콜라라는 소녀가 살았습니다. 피콜라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피콜라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오늘밤 우리집에 오실까요?" 엄마는 슬프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마 못 오실 것 같구나. 내년에는 꼭 오실거야." 그래도 피콜라는 작은 나무구두를 벗어 굴뚝 밑에 놓았습니다. 그날 밤, 눈폭풍 속에 헤매다 날개가 부러진 작은 새 한 마리가 피콜라의 집 굴뚝으로 떨어졌습니다. 작은 새는 피콜라의 나무구두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구두 속에 아무 것도 넣지 못한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피콜라는 아주 일찍 일어나서 굴뚝 밑으로 갔습니다. 구두 속에는 날개 부러진 작은 새가 있었습니다. "엄마, 이것 봐요!" 피콜라는 엄마에게 뛰어갔습니다. "거봐요, 산타할아버지가 날 잊지 않으셨어요. 이렇게 예쁜 새를 선물로 주셨어요. 다쳤으니까 잘 돌봐 줄 거에요."(장영희, 12월 22일 조선일보)


날개 부러진 새 한 마리를 하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피콜라의 마음으로 우리가 상처입은 이들을 보듬어 안는다면 세상은 한결 아늑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 뵐 곳은 매우 분명해 보입니다. 동방 박사들을 인도했던 별빛이 머문 곳은 초라한 마굿간이었습니다. 교회마다 장식품으로 만들어놓은 마굿간 말고, 우리 시대의 마굿간, 바로 그곳이 주님을 만날 곳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선뜻 실행의 용기를 내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안하고 말 수는 없습니다.

어느 날 수도원을 나서던 프란치스코는 지네프로 수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성품이 단순하고 착하여 프란치스코의 사랑을 받던 수사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지네프로, 우리 함께 설교하러 갑시다." 그러자 지네프로는 "원장님, 저는 배운 것이 별로 없는데 어떻게 사람들에게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면서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가 계속 청했기 때문에 따라 나서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은 도시를 두루 다니며 상점과 밭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말없이 기도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미소를 보냈고, 가난한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따뜻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노인들을 만나면 다정하게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았고, 환자들을 위로했습니다. 물이 가득 담긴 무거운 양동이를 들고 가는 여인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시내를 여러 차례 돌고 나서 프란치스코는 말했어요. "지네프로, 이제 수도원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군요." 그러자 지네프로는 "설교는 언제 하지요?"라고 물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미소지으며 대답했어요. "우리는 벌써 설교를 다 했어요."

여러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굉장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십시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거든 그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넘어진 사람이 있거든 일으켜 주십시오. 배고픈 사람이 있거든 먹이십시오. 외로운 이가 있으면 그의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그게 시작입니다. 만물의 상속자이신 주님은 그런 이들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옴을 잊지 마십시오. 이 아름다운 성탄절기에 여러분 좋은 설교 많이 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