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53. 하루를 영원처럼
설교자
본문 전도서3:1-13
설교일시 200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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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영원처럼
전3:1-13
(2001/12/31, 송구영신예배)


점과 선

어떤 사람이 눈 덮인 산을 올라갑니다. 아직 아무의 발자국도 찍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산 위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며 '오늘도 복된 하루 되소서' 기원을 하고 내려옵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 오직 자기의 발자국만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얼핏 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오직 한 발짝씩만 걸었구나. 한 발 또 한 발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에 의해 내 몸이 옮겨졌구나. 그렇다면 인생도 결국 한 발짝이 아니겠는가.' 대학 시절의 한 스승은 시대와 불화하면서 방황하는 저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미스터 김, 머리가 복잡할 때일수록 한 걸음을 잘 내딛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요" 하고 충고를 해줬습니다. 한 걸음을 제대로 걷는 것이 먼 길을 제대로 가는 길임을 저는 그때 배웠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수많은 선택에 직면합니다. 이불 속에 10분만 더 있을까 말까, 식구들에게 다정한 미소와 말 한 마디를 건넬까 말까, 집 대문을 나서다가 스쳐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날이 추워요' 하면서 인사를 건넬까 말까, 점심 식사는 된장찌개를 먹을까 순두부를 먹을까, 편지에 대한 답장을 지금 쓸까 말까……. 그런 작은 선택들은 쉽게 잊혀집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 인생에 점 하나를 찍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점들이 모이면 하나의 선이 되고, '나'라고 하는 존재는 바로 그런 점들이 이룬 선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의 생 전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한 걸음씩 걸어 이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이곳에 몰아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걸어온 길입니다. 물론 내가 좋아하지 않은 길도 걸었습니다. 애당초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곳에 이르렀을 수도 있습니다. 후회와 죄스러움이 우리를 엄습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 앞에 서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스승에게 말했습니다.
"제 삶은 부서진 유리와 같습니다. 저의 영혼은 악에 찌들었습니다. 제게도 무슨 희망이 있을까요?"
"예, 부서진 조각마다 다시 붙이고 얼룩진 데마다 깨끗이 지우는 그런 게 있지요."
"뭔데요?"
"용서."
"누구를 용서할까요?"
"누구나: 삶을, 하나님을, 이웃을―그리고 특별히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해야지요?"
"탓해야 할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앤소니 드 멜로, {일분 헛소리} 중에서)


그렇습니다. 이제 지난 한 해를 다 놓아주십시오. 못난 우리 자신의 모습까지도 말입니다.


때를 분별하며 살라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달력을 아무리 바꾸어 달아도 삶은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전도서 기자는 먼저 때를 분별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심을 때인지 거둘 때인지, 나아가야 할 때인지 물러서야 할 때인지, 세울 때인지 허물 때인지, 울 때인지 웃을 때인지. 때를 분별하고 때에 맞게 살아야 철든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땀흘려 수고하는 일에는 뒤로 물러서 있다가, 상을 받는 일에는 앞으로 나가 얼굴을 내미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좀 얄밉지요. 분명히 물러서야 할 때인데 중뿔나게 앞으로 나아가다가 누추한 꼴을 보이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기의 때를 알고 살면 생의 비애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인생이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살아가는 것임을 알기에 남들을 부러워하거나, 헛된 우월의식으로 남들에게 상처를 입히지도 않습니다.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빨라야 5분'이라는 교통 안전 표지판이 나옵니다. 그래요, 앞서가야 얼마나 빨리 가겠어요. 다른 이들의 속도에 내 삶의 속도를 맞추려 하는 한 마음의 평안은 없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가늠하면서, 내 보폭에 맞게 걸으면서, 천천히 주변도 둘러보며 살아야 합니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좀 보고, 이웃들의 표정도 살피고, 때로는 멈추어 서서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그의 어려운 사정에 마음이 동해서 그를 돕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뒤로 물러설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선생님 한 분은 별명이 '前進女'입니다. 후진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인데 차를 몰고 가다가 좁은 골목에서 다른 차와 마주치면 그 선생님은 핸들에 머리를 박고 기다립니다. 누군가가 와서 도와줄 때까지 말입니다. 그저 이런 경우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뒤로 물러설 줄 알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의 삶을 '다른 이를 위해 자기의 권리를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뒤로 물러섬으로 그와 나 사이에 여백이 생길 수 있다면 때로 물러서는 것이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항상 물러서기만 하는 사람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삶의 원칙까지도 포기한다면 그는 변화의 누룩이 될 수 없습니다. 진리를 위해서는 용감해야 합니다.


모든 때는 아름다운 때이다

그런데 전도서 기자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3:11). 저는 이 말씀이 사무치게 좋습니다.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 이 말씀을 굳게 붙잡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 있다면 우리의 모든 때는 아름다운 때입니다. 울 수밖에 없는 때에도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병에 시달릴 때에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려고 마음의 눈을 뜹니다. 실패의 쓰라림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는 확고한 믿음 말입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육체의 두 눈을 잃었을 때 오히려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날 수 있었고, 그 만남의 기록으로 수없이 많은 찬송시를 남겼습니다. 베토벤은 청각을 잃었을 때,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더 웅장한 소리를 듣고는 그것을 '합창'이라는 곡 속에 담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의 유형지에서 그리스도와 만났습니다. 이런 예는 참 많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불행이라고 말하는 것 중에서도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불행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것은 용기입니다.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 둘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생을 비관하고,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다가 죽어갑니다. 그는 시간을 어둠으로 바꾼 사람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알차게 살아가려고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이 사람은 시간을 빛으로 바꾼 사람입니다.

다가오는 한 해 우리는 평안한 날만 계속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어려운 일도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산다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기대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숨겨놓으신 보물이 무엇인지.


기뻐하며 선을 행하라

전도서 기자는 세상의 모든 영화로움을 다 맛본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인생에 대해 결론적으로 하는 말은 이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3:12-13)


착한 일을 하고서 마음이 불쾌해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니, 내가 어쩌자고 착한 일을 한 거지" 하면서 후회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배고파하는 사람에게 밥 한 끼를 먹이고 나면 기분이 좋습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모금을 대접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정에 굶주린 사람에게 따뜻한 정을 나누어주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 좋은 일을 하면 다들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렇다면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은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그런 본딧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고 삽니다. 각박한 세상에 살다보니 그리된 모양입니다. 욕심사납고, 화 잘내고, 관능적이고, 잘 삐지고, 원망하는 버릇이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리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힘과 정성을 다해서 착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엡2:10)


새해에는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기면, 하나님은 가장 아름다운 삶을 이루어주십니다. 우리 속에서 그리스도가 커지기 위해서는 내가 작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배를 탔습니다. 이미 2002년의 항해는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광활한 신대륙이 있습니다. 이기심과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미움과 토라짐, 인색함의 대륙은 충분히 돌아다녔으니 이제 사랑의 대륙, 이해의 대륙, 관용의 대륙, 섬김의 대륙으로 발을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런 대륙의 극히 일부분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대륙에 발을 옮기며 살면 우리는 저절로 남을 복되게 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남을 복되게 하면 우리 삶이 복되게 될 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오신 것을 기뻐하는 이 계절에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어 산다면 참 좋겠습니다. 올 한 해 교우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