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6. 삶의 원칙을 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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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단1:8-17
설교일시 20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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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칙을 세우라
단1:8-17
(2002/2/10, 졸업감사예배)


이름은 빼앗겨도 혼만은

바벨론 땅에는 전쟁에서 패한 후 포로로 잡혀와 있던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유대인 젊은이들 가운데서 총명한 사람들 몇을 뽑아서 궁중에 머물게 하면서, 자기들 말을 가르치고, 갈대아의 학문을 두루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물론 그것은 유대인들의 삶에 바벨론의 문화를 이식하기 위한 준비 단계였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미국식 생활방식에 익숙하고 독일어를 잘하는 사람은 독일식 생활방식에 익숙하잖아요?

바벨론 왕은 뽑혀온 유대인 청년들에게 공을 들였습니다. 좋은 음식과 포도주를 공급해주고,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돌보아줌으로써, 아무 걱정 없이 공부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다니엘(하나님은 재판관이시다), 하나냐(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신다), 미사엘(누가 하나님이신가?), 아사랴(여호와께서 도우신다)라는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환관장은 그들의 이름을 바벨론식으로 고쳐서 벨드사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고 불렀습니다. 일종의 창씨개명입니다. 이름을 빼앗겼다는 것은 역사를 빼앗겼다는 것이고, 뿌리를 유린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 네 젊은이들을 보고 비겁하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나라를 빼앗긴 이들이 감내해야 했던 아픔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현실에 대해 체념하고 되는 대로 산 것은 아닙니다. 이름은 빼앗겼지만 혼조차 빼앗길 수는 없었습니다. '혼'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종교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종교는 문화의 내용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사회의 문화를 한 겹 한 겹 벗겨가다 보면 최후에 남는 고갱이가 곧 종교라는 말입니다. 종교가 바로 서지 못할 때 한 개인의 정체성은 무너지고, 한 사회의 문화는 타락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먼저 자기들을 돌보아주는 감독관에게 왕이 제공하는 맛있는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좋은 음식을 마다하다니 이상하지요? 우리 같으면 좋은 음식을 달라고 데모했을 텐 데요. 하지만 유대인들은 율법의 규정대로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을 구별해야 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지만,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먹는 것'은 자기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문제였습니다.

2002년 1월부터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각 나라에 갈 때마다 돈을 바꾸어야 하는 불편을 덜게 되었습니다. 아직 모든 유럽 국가들이 다 가입한 것은 아니지만,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가 사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1 유로화의 한 면에는 가입국의 어떤 나라에서도 통하는 1 유로라는 통화가치가 양각되어 있지만, 다른 면에는 주조한 나라의 상징들이 양각되어 있다 합니다. 독일은 독수리, 이태리는 다빈치의 인체비례에 대한 유명한 스케치, 오스트리아는 모차르트 하는 식입니다. 유럽이라는 단일 경제 공동체를 만들려는 목적은 동일하지만 각 민족국가의 정체성은 든든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그들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니엘은 혼이 살아 있는 젊은이였습니다.


믿음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사람

다니엘의 사람됨을 보고 호감을 가지고 있던 감독관은 어떻게든 그를 돕고는 싶었지만 도울 방법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왕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지 않고 거친 음식을 먹었다가 낯빛이 초췌해 보이기라도 한다면 자기가 경을 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걱정을 하자 다니엘이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 일단 열흘 동안만 시험해 보시지요. 우리가 소박하고 거친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낯빛이 흐려진다면, 그래서 다른 젊은이들보다 못해 보인다면 더 이상 고집하지 않겠습니다.' 감독관은 다니엘의 청을 받아들입니다. 초조하고 불안한 열흘이 지났습니다. 결과는 어땠나요?


"열흘이 지났을 때에 보니, 그들의 얼굴빛이 왕이 내린 음식을 먹은 젊은이들의 얼굴빛보다 좋고 건강하여 보였다."(1:15)


이걸 보면서 역시 육식보다는 채식이 좋다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이건 영양학에 대해서 말해주는 텍스트가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손해를 감수하려는 이들을 하나님이 돌보아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니엘의 이런 장한 결심을 8절은 "뜻을 정하여"라는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뜻을 정한 사람은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제 아무리 상황이 변해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간직한 사람이라야 큰 사람입니다. 원을 그리려면 콤파스가 필요합니다. 콤파스의 한 쪽은 연필을 끼우게 되어 있지만, 다른 쪽은 철심이 박혀 있습니다. 철심을 축으로 해서 한바퀴 돌리면 원이 완성됩니다. 반지름의 크기는 달라질 수 있어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면 원은 바르게 됩니다.


하늘 빛 환하게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왕의 산해진미를 거절하고 자기의 신앙의 원칙을 지켰습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 내적인 힘이 생깁니다. 그 내적인 힘이 겉으로 피어난 것이 곧 환한 얼굴빛입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환하게 바뀌었다는 것이나, 살기등등한 공회원들 앞에서도 그 얼굴이 천사와 같았던 순교자 스데반 집사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저는 그것을 '내적 고요의 외적 드러남'이라고 말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어떤 위협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런 이들을 누가 당해요? 그런데 그들의 그런 힘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네 젊은이들이 지식을 얻게 하시고, 문학과 학문에 능통하게 하셨다. 그밖에도 다니엘에게는 환상과 온갖 꿈을 해석하는 능력까지 주셨다(1:17).


우리가 단호히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우리나라를 '부패 공화국'으로 생각한답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피치 못할 상황이라면 자기도 부패를 저지를 수 있겠다고 대답했답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든든히 서있어야 할 삶의 원칙들이 흔들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왕의 산해진미에 침을 흘리지 않을 수 있는 결기와 근기입니다. 부정한 이득이나 허황된 명예를 멀리할 때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오늘 졸업하는 모든 학생들은 정말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삶의 원칙을 든든히 세우고 살기 바랍니다. 중심이 흔들리면 우리의 삶 전체가 흔들립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의 운명이 되고 맙니다. 세상이 뭐라 해도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결의를 다질 때, 우리는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 속에 차오르는 힘을 말입니다. 이익을 따르는 사람들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살기를 구하는 사람은 당장은 어려움을 당할는지 모르지만 결국은 아름다운 이름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러분 모두의 삶에서 하늘의 빛이 환하게 드러나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