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8. 우리를 만지소서
설교자
본문 눅4:40-41
설교일시 2002/2/24
오디오파일
목록

우리를 만지소서
눅4:40-41
(2002/2/24)


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대행자

지난 해 초여름 저는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그린 프레스코화도 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멈춰 서서 고개를 들고 그림을 감상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거장의 작은 숨결이라도 느껴보려는 듯 숙연한 표정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과 인류의 삶을 자기의 그림 속에서 재창조하고 있었습니다. 전기 작가인 어빙 스톤은『르네상스인 미켈란젤로』에서 미켈란젤로가 그 그림을 그리려고 결심할 때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천장 위에 충만한 인류와 전능하신 창조주를 함께 그리기로 작정했다. 숨막히는 아름다움, 약점, 파괴될 수 없는 힘으로 그려지는 인류. 모든 것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하느님. 우주를 뒤집어놓을, 고동치는 생명력을 투사해야 했다. 천장은 현실이 되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환상이 되도록.(663쪽)


그의 소원대로 그 천장은 우리가 잊고 있는 또 하나의 현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기운이 넘치는 세상, 하나님의 돌보심과 이끄심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그림의 중심에는 그 유명한 "아담의 창조"가 있습니다. 천사들에게 에워싸인 채 흰 수염에, 흰 겉옷을 입은 하나님은 비스듬히 누운 아담에게 손을 뻗고 있습니다. 아담도 천사들에게 둘러싸인 하나님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두 손가락이 닿을 듯 말 듯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어려서부터 품어온 영상을 그림으로 옮긴 것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력하고, 지적이며, 사랑하는 힘으로서의 하느님.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만드셨으므로, 인간의 얼굴과 육체를 가진 분. 하느님이 창조하신 첫 인간인 아담은 분명히 자신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훌륭한 몸매와 고귀한 생각과 다감한 정신과 아름다운 얼굴과 천국과 지상의 모든 최상의 원형인 신의 아들, 아버지의 진정한 창조물인 아담을 만들어서 아버지 하느님을 반영하게 되었다. 남성적인 흰 수염에 걸맞는 흰 겉옷을 걸친 하느님은 한 극미한 숨길을 터주려고 아담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같은 책, 690쪽)


생명을 불어넣는 하나님의 손길은 강인하면서도 부드럽습니다. 이 때 손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대행자입니다. 손은 인체의 수많은 부위 가운데서 가장 예민하게 마음을 전하는 기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두 손을 모으고, 약속을 할 때는 손가락을 걸고, 헤어질 때 손을 흔듭니다. 제 아내가 사고를 당해 구급차에 실려왔을 때 응급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겨우 손을 꼭 잡아주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손을 마주잡은 것만으로도 우리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담을 향해 뻗은 하나님의 손은 곧 하나님의 사랑이고 생명입니다.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천장화를 그리도록 했던 교황 율리우스2세는 처음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미켈란젤로에게 묻습니다.


"너는 정말로 하느님이 저렇게 인자하시다고 믿느냐?"
"그렇습니다. 성하."
"머잖아 그분 앞에 서야 될 테니까, 나도 정말 열렬히 그렇기를 바란다. 만일 그분이 네가 그린대로라면 내 죄를 용서받겠지." 그는 밝은 표정으로 미켈란젤로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로 인해 기쁘다, 아들아."(같은 책, 692쪽)


아담을 향해 내뻗은 하나님의 손과 그 강인하면서도 인자하신 표정은 상처입은 심령을 감싸주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치유와 능력의 손

하나님은 인자하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그 손은 지쳐 쓰러지는 사람들을 붙잡아 일으키고, 낙심한 영혼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십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사람들을 치유하실 때마다 그들의 몸을 만지셨다고 전합니다. 각색 병으로 앓는 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면 예수님은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심으로 고쳐주셨습니다. 환자들에게 손을 댄다는 것은 지극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장교들끼리 축구를 하다가 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다. 상대 진영을 향해 질주하던 부연대장이 다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그만 삐죽 튀어나온 돌부리에 무릎 위가 심하게 찢어졌습니다. 토요일 오후였기 때문에 연대 군의관이 응급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취도 하지 못한 채 식염수로 살 속에 박힌 모래들을 씻어내고, 꿰매는 수술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부연대장의 손을 붙잡고 수술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부연대장은 나의 손을 잡는 순간 고통이 줄어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어쩌면 제 마음 속에 일고 있던 간절한 염원과 사랑이 그의 고통을 줄여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외롭고 쓸쓸한 이들의 손을 잡아주십니다. 예수님의 손은 기계적으로 사람들을 만지지 않습니다. 그 손은 사랑이고 관심이고 연민입니다. 그렇기에 그 손길이 닿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시인 강은교는 그 손의 기적을「당신의 손」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의 손이 길을 만지니
누워 있는 길이 일어서는 길이 되네.
당신의 슬픔이 살을 만지니
머뭇대는 슬픔의 살이 달리는 기쁨의 살이 되네.
아, 당신이 죽음을 만지니
천지에 일어서는 뿌리들의 뼈


주님의 손이 닿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무기력했던 사람들이 일어나 새로운 세계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갈릴리의 어부들이 새로운 세상의 초석이 된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남성들 곁에 머물면서도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생을 살았던 막달라 마리아는 거룩한 여인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그의 내면적인 상처를 어루만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네 손을 내밀어라

지금도 곤고한 인생에 지쳐 허덕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좀처럼 아물지 않는 마음의 상처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우리를 만지시기 원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담이 하나님을 향해 손을 뻗었던 것처럼 손을 뻗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셨다가 한 편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보셨습니다. 주님은 잔뜩 주눅이 든 채 살아가는 그의 처지를 헤아리시고는 그를 한 가운데로 불러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내밀어라."(눅6:10) 우리도 지금 이 말씀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정신적으로 위축된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파스칼은 "왕자의 운명을 타고났으면서도 거지의 인생을 사는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염려에 몰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하나님은 바로 우리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까맣게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우리입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병에 시달리던 여인은 예수의 옷술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내게 손을 댄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쾌함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였습니다. 여인이 떨면서 나아와 자초지종을 아뢰자 예수님은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눅9:45-48) 예수님에게 손을 대는 행위를 통해 여인은 몸과 영혼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육체적으로 뵈올 수 없는 데 어떻게 그분을 만질 수 있나?' 참 중요한 물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마태복음 25장을 통해 얻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십니다. 병든 사람, 배고픈 사람, 헐벗은 사람, 전쟁의 참화 속에서 신음하는 이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돕기 위해 손을 내밀 때, 우리는 주님을 만지게 됩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그들을 만질 때,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돕기 위해 사랑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때, 영혼이 맑아지고, 깊어지고, 평안해지는 것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상처입은 삶에 손을 대는 순간 주님이 우리를 만지시는 것입니다. 놀라운 신앙의 비밀입니다. 삶이 힘겨우십니까? 지고 가는 인생의 짐이 너무 무거워 울고 싶으십니까? 그 모든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그것이 치유의 길이고, 해방의 길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를 만지시는 주님의 손길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