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3. 참 생명은 죽지 않는다
설교자
본문 고전15:42-44
설교일시 200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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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생명은 죽지 않는다
고전14:42-44
(2002/3/31, 부활절)


하나님의 기쁨, 그리고 후회

공들여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진 세상을 아주 대견스럽게, 그리고 흡족하게 바라보십니다. 성경을 기록한 분은 그때의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헤아려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창1:31). 생각해보면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청명한 하늘, 온화한 대기, 초록빛으로 넘치는 세상, 모든 생명들이 살아있음의 기쁨을 저마다 노래하는 것 같은 분위기라면 누구라 흐뭇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둘러보시고 기쁨에 싸인 하나님은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시고 쉬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런 평화는 오래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기 시작한 인간의 선택은 모든 것이 조화롭던 세상의 평화를 깨뜨렸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우주적인 화음 속에 죄의 불협화음이 끼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에덴 동산 밖에서 태어난 최초의 인간 가인은 형제 살해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등진 사람은 형제와도 등질 수밖에 없음을 가인은 보여준 것입니다. 그 이후 갈등과 폭력과 타락의 역사는 계속되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내온 역사인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창6:5-6)


어찌 보면 인류의 역사란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어머니 하나님의 품을 향한 순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도주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던 인간이, 급기야 하나님으로 하여금 후회의 쓰라림을 맛보도록 했다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비극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지금 우리들을 보시면서 어떤 표정을 짓고 계실까요? 참 착잡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나 소중한 생을 허튼 데 탕진해버리고 그런 줄도 모르는 우리들, 사랑과 평화와 거룩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미움과 불화와 속됨에 깊이 빠져든 우리들…혹시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내신 것을 후회하고 계시지는 않을까요?


예수, 아름다운 존재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린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뭍으로 오르실 때 하늘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마3:17)


같은 음성이 변화산에서도 들려왔습니다(마17:5).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야 특별할 것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말은, 아들이 하는 일이, 그리고 그의 존재가 아버지에게 기쁨이 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쫓아주시고, 외로운 사람들을 소중한 사람으로 인정해주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숨결을 불어넣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으로 자처하며 사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에는 든 이런 일들이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 마음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운 삶은 그들의 고루하고 누더기 같은 삶의 실상을 통절하게 비추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박해하는 행렬에 서있습니다. 예수를 박해한 이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던 그 어둠이 여전히 우리 속에 머물고 있고,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미움과 비열함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그 어두운 음모의 강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제거한 이들은 편안했을까요? 더 큰 어둠이 그들을 사로잡지는 않았을까요? 그들의 눈에서 사라진 예수는 오히려 죽어서 더 크게 말씀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설교는 그들의 가슴을 관통하는 비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행2:36)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는 걸림돌이 되었던 예수님이 하나님의 마음에는 들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십자가 위에서조차 당신의 일을 끝까지 감당하고, 하나님의 품에 오롯이 자신을 맡긴 예수를 무덤이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 참 생명은 죽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일하는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헌신과 사랑은 결코 허무하게 사라져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몸을 가지고 하는 사랑의 일들, 어찌 보면 하찮아 보일 수도 있는 일들은 때가 되면 불멸의 옷을 입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의미입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적인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적인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15:42-44)


우리 가슴에 진홍색 꿈이

그렇다면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매우 분명합니다. 주님이 하셨던 일을 나의 일로 삼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주님의 피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함을 믿는 사람들은 이제 작은 예수가 되어 살아야 합니다. 『닐스의 모험』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라게를뢰프의 동화 중에「진홍가슴새의 비밀」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진홍가슴새라 불리우는 새가 있었습니다. 그 새는 온통 잿빛 털로만 덮여 있는 자기에게 왜 '진홍가슴새'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 궁금해서, 어느 날 대자연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대자연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언젠가 너는 네 마음가짐 하나로 빨간 날개 털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새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뒤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한 어미새가 진홍빛 털을 얻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다가 죽어간 수많은 조상들의 이야기를 새끼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때 마침 둥지 옆에서 심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이 어미새의 눈에 띄었습니다. 어미새는 그 사람이 가여워 견딜 수가 없었지만, 한 번도 사람 가까이 가보지 않았던지라 두려움 때문에 잠시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낸 어미새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이마에 박힌 가시를 뽑아주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어느 순간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어미새의 가슴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입술을 움직여 어미새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였습니다.
"너희 조상이 세상 첫날부터 애써 구해온 것을 너는 그 친절한 마음씨 하나로 기어이 얻어 냈구나."
깜짝 놀란 어미새는 곧 샘물로 달려가 몸을 씻었지만 가슴의 진홍빛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태어나는 모든 아기새의 가슴에는 진홍빛 털이 빛나게 되었다.


이 동화를 어떻게 읽던 그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하지만 고통 당하는 사람에 대한 연민 때문에 자기 속에 있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들은 결국 자기의 이름 값을 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우리 됨은 바로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예수님과 결합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성도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과연 성도라는 이름에 합당한 모습인지 돌아봅니다.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참 생명은 죽지 않는다는 엄숙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합니다. 고통 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것입니다. 굶주림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밥 한 숟가락을 덜어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땀 한 방울을 더 흘리고, 장애우들의 정당한 살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실업의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내 몫의 재화를 나누는 일, 차별과 학대 속에서 신음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이웃으로 인정하고, 학대받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고하는 것, 이것이 부활을 믿는 이들이 택해야 할 삶의 길입니다. 가장 소중한 부활의 생명은 우리들의 옹근 헌신을 통해 현실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부활절 아침,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성도답게 살겠다는 진홍색 꿈이 아로새겨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아름다운 평화의 세상을 열기 위한 일에 봉헌할 수 있기를 빕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