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5. 단비 내리고 물오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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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레26:3-13
설교일시 200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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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 내리고 물오르니
레위기 26:3-13
(2002/4/14)


당신이 나를 소중히 여겨

먼저 섬진강변에 있는 어느 작은 초등학교의 교사로 일하고 있는 김용택 시인의 시 한 대목을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학교에 출근한 시인은 어느 날 아내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아침에도 보고 온 아내인지라 그는 의아해하며 편지를 엽니다.


당신께.
당신이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게
오늘은 더 행복합니다
나도 어제, 내리는 봄비를 보며
당신 생각 많이 했습니다
늘 당신의 눈길이 머무는 강이며, 운동장
몇 안되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따뜻한 숙직실에 초이, 소희, 창우, 다희 순서로 나란히 이불 속에 눕혀 한숨 재웠다는 당신,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당신의 노래보다도,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아름답다는 걸 나는 압니다
오월이 오면 우리 만난 지 십육 년이 됩니다
십육 년을 하루처럼 내게 다정한 당신이지만
오늘 당신이 내게 불러준 사랑노래는
이 봄,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당신이 나를 너무도 소중히 여겨
나는 이 세상에 귀한 사람이 되었답니다
여보 고맙습니다.
당신의 아내.


당신의 눈길이 머무르곤 하는 곳을 바라보며 당신을 떠올리고, 당신이 서 있
는 자리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하는 그 마음이 참 포근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내게 불러준 사랑노래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당신이 나를 너무도 소중히 여겨 나는 이 세상에 귀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 대목을 거듭 읽으면서 저는 우리 모두의 '당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난의 골짜기를 지나 골고다 언덕에 오르면서도 끝끝내 인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 그리고 마침내 부활산의 정상에 서심으로 영원한 소망이 되신 주님, 그 주님의 깊디깊은 사랑이 우리를 귀한 존재로 만들고 있습니다.


水流花開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 때문이지만, 우리 영혼에 봄이 오는 것은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부활절기를 맞은 지금 우리는 금빛 햇살이 잠들었던 생명을 깨운다는 淸明과 봄비가 내려 백곡을 윤택하게 한다는 穀雨 사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때때로 불어오는 황사 바람이 우리를 괴롭히기는 해도, 바야흐로 우리는 생명의 계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맑습니까? 영혼의 정원에 심겨진 부활의 씨앗이 싹을 틔우도록 잘 돌보고 계십니까? 저는 요즘 김성한 장로님께서 미국에 가시면서 써놓고 가신 '水流花開'라는 글자를 자꾸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물이 거침없이 흐르듯이 막힌 곳은 통하게 하고, 봄 되어 꽃이 피어나듯이 머무는 곳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라는 말이겠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생은 바로 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들도 마찬가지구요.

그런데 물이 흐르는 데에는 억지가 없습니다. 낮은 곳이 있으면 흘러가고, 막히면 돌아갑니다. 꽃이 피는 것도 그렇습니다. 물오른 나뭇가지 끝에서 꽃들은 저마다 터져 나옵니다. 산수유나무에서는 산수유꽃이 피고, 생강나무에서는 생강꽃이 피어납니다. 조팝나무에서는 조팝꽃이 피어납니다. 여기에는 어김이 없습니다. 자연은 순리를 어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살이는 좀 다릅니다. 순리대로 살면 좋을 텐데, 억지를 부리다가 낭패를 당할 때가 많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박찬호 선수가 5월 중순이나 되어야 경기에 나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작년에 몸이 좋지 않았는데도 2002년 연봉 협상에서 고액을 받기 위해서 무리를 한 게 원인이라더군요. 무리를 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삼중적 복의 약속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복은 삼중적입니다. 첫째는 일상적 삶의 '풍요로움'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고, 땅은 그 산물을 내고, 수목들은 탐스러운 열매를 맺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둘째는 약속의 땅에서 누리는 삶의 '안전성'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전쟁의 공포없이 안심하고 살도록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설사 전쟁이 벌어져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도록 하겠다고 하십니다. 셋째는 그들이 사는 곳을 함께 거니시면서, 그들이 사는 땅에서 함께 사시겠다는 것입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 살면서 자연재해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언제 벌어질는지 알 수 없는 전쟁의 공포에 항상 시달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참으로 꿈같은 약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이 살게 될 땅은 하나님이 거니시는 땅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류의 첫 사람들의 죄 때문에 벌을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던 땅,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벨의 피가 소리를 지르는 그 불모의 땅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땅이 될 것이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약속을 여는 열쇠; 순종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아름다운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열쇠를 찾아야 합니다. 3절이 그 열쇠입니다. 조건문으로 되어 있는 그 구절은 매우 간결합니다. "너희가 내가 세운 규례를 따르고, 내가 명한 계명을 그대로 받들어 지키면"(If you walk in my decrees and faithfully keep my commandments)이 그것입니다. 이 구절에서도 핵심어는 '따른다', '지킨다'입니다. 즉 관건이 되는 것은 '순종'입니다. '順'이라는 글자는 '내 川'에 '머리 頁'가 결합된 글자입니다. 즉 '順'이란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질서에 머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從'은 '좇는다, 따른다'는 뜻이니까, 중뿔나게 앞서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는 말이겠습니다. 복 받는 비결은 '順' 하고 '從' 하는 데 있습니다. 옛말에도 '順天者興 逆天者亡'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순종하는 삶의 가장 아름다운 모범이십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2:6-8)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이의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자기 비움'과 '자기 낮춤'이 그것입니다. 배에 물이 차오르면 그 물을 퍼내야 배가 가라앉지 않듯이 우리는 날마다 저절로 채워지는 이기적인 자아의 욕구를 비워내야 합니다. 그래야 가벼워지고, 그래야 하나님의 품을 향한 여정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또 한없이 높아지려는 우리 마음을 자꾸만 끌어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노여움이나 교만의 덫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고전1:25) 했던 사도 바울의 말에 자꾸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십자가의 길은 사람의 눈에는 패배의 길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인기가 없습니다. 그리고 걷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야말로 참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 주님은 자기의 뜻에 반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영문을 알 수는 없었지만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뜻보다 깊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고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의 삶은 결코 허망하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가슴속에는 영원한 생명의 씨앗이 심겨 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청명을 지나 곡우로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나의 욕망을 비워내고, 누구를 만나든 높은 마음을 품지 않고 나를 낮추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꽃을 피우기 위해

며칠 전 저는 생명의 기적 앞에 잠시 넋을 빼앗겼습니다. 지난 겨울 화분에 심긴 채 밖에서 추위를 견디던 영산홍(映山紅)이 누렇게 타들어가기 시작하더니, 줄기까지도 다 죽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봄이 되어서 새 잎이 나오지 않아, 저는 속으로 '저거 언제 버려야 하는데' 하면서 지나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출근을 하던 저는 누런 잎 사이로 언뜻 푸른빛이 비치는 것 같아 화분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 거기에는 죽음을 이긴 새 생명이 돋아나오고 있었습니다. 단비 내리고 물이 오르고 햇빛이 나자 잠들었던 생명이 깨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영산홍은 가녀린 꽃 몇 송이를 힘겹게 피워냈습니다. 뿌리가 죽지 않았으면 생명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이렇게도 무섭습니다. 단비 내리고 물오르자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워낸 그 장한 영산홍을 보면서,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의 가능성을 새삼스럽게 돌아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마음 편히 머무실만한 땅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심으로 순종하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서로를 진실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섬김의 도리를 다하려는 우리의 관계 속에서 주님이 설 땅을 발견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소중히 여기심으로 우리는 소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철 따라 우로를 내리시는 주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아서는 안 됩니다. 아무쪼록 회색 도시의 한복판에 사는 우리들의 삶에도 그리스도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