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7. 물 댄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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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58:9-12
설교일시 200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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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댄 동산
사58:9-12
(2002/4/28, 교회 설립 기념)


사랑의 고리

오늘은 우리 교회 설립 73주년을 기념하고 또 감사하는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 우주적인 사건인 것처럼, 이 땅 어딘가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 또한 우주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를 통해 역사 속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오셨습니다. 73년의 발자취가 가지런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사의 질곡을 그리스도의 말씀 붙들고 뚫고 나왔으니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연세 드신 분들이 많으십니다. 이게 우리 교회의 자랑입니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옛말이 그르지 않습니다. 수십 년 동안 한 교회를 섬겨오신 분들이 교회의 전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화를 닮았습니다. 매화는 늙은 등걸이 용의 몸뚱이처럼 뒤틀려 올라간 곳에 성긴 가지가 군데군데 뻗고 그 위에 띄엄띄엄 몇 개씩 꽃이 피는데 그 품위가 있다 합니다. 매화는 또 은은한 향기, 즉 暗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우리 교회가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나름대로 의미있는 교회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매화처럼 신앙의 꽃을 피워내는 든든한 어른들이 계시기 때문임을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몇 대를 이어서 이 교회를 섬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물 댄 동산'입니다만, 푸른(靑) 언덕(坡) 교회야말로 물 댄 동산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우리는 청파 신앙 공동체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어깨를 겯고 '한 울타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교우들을 심방하면서 큰 위로와 희망을 봅니다. 교우들이 서로의 설 땅이 되어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몸이 자유롭지 못한 이들을 위해 아침저녁으로 찾아가 보살펴드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봉사의 현장에 소리도 없이 나아가는 이들이 계심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랑의 고리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우리를 지켜줍니다. 물론 이 울타리는 다른 이들을 배제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하늘 다리

말장난이지만 어느 분은 '한 울타리'라는 말을 '하늘 다리'라고 고쳐 부르더군요. 신앙 공동체는 하늘에 이르는 다리를 놓는 것을 본령으로 한다는 의미이겠지요.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한 울타리'는 하늘이 내려와 누운 땅인 셈입니다. 재미있지요? 그런데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숙연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 칠월칠석이 되면 까막까치가 견우와 직녀를 위해 몸으로 다리를 만든다는 데, 우리도 세상과 하늘을 잇는 다리가 되도록 부름 받았구나.' '비록 나는 작지만 그 작은 나들이 모여 우리가 될 때 하늘 다리가 되는 거구나.'

교회는 항상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곳, 태어난 생명이 진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곳, 그리고 거룩한 삶으로 거듭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살이에 지쳐 힘겨워하는 이가 있으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곳, 뒤쳐진 사람이라 해도 큰사랑으로 기다려주는 곳이 곧 교회입니다. 무슨 영화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오랫동안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을 치기 시작합니다. 험난한 파도를 가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잃은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가 파도를 헤치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적어 보였습니다. 해 저문 시간 젊은이들은 마침내 목적지 해안에 도착했습니다. 단 한 친구를 빼고는 말입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나뭇가지들을 모아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염려의 어둠이 그들을 사로잡을 즈음 젊은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쿰바야 마이 로드 쿰바야, 쿰바야 마이 로드 쿰바야, 오 로드 쿰바야."
"여기 오소서 내 주여, 여기 오소서 내 주여, 여기 오소서 내 주여, 오 주여 오소서."


마침내 그 몸이 불편한 젊은이가 지친 모습으로 해안에 당도했을 때, 젊은이들은 다 함께 달려나가 한 덩어리가 되어 감사의 환호를 올렸습니다. 그들은 그 하루, 기다림의 의미와 하나됨의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체득했던 겁니다. 이제 그들은 한 울타리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한 울타리'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의 비전이 그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버릴 것, 취할 것

먼저 우리가 할 일은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일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버려야 할 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이 그것입니다. 멍에는 소를 마음대로 부리기 위해 소의 목에 'ㅅ'자 형태로 걸쳐놓은 가로 나무를 뜻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를 내 마음대로 조정하기 위해 다른 이의 정신에다가 멍에를 얹어놓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멍에를 얹기도 하고, 선생이 학생에게 얹기도 하고, 목사가 교우들에게, 교인들이 목사에게 멍에를 얹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목 언저리를 살펴보면 저마다 멍엣상처 흔적이 있습니다. 그 멍에에 쓸려서 난 상처 말입니다. 멍에는 구속입니다. 구속은 사람의 자유로운 성장을 방해합니다. 아름다운 생명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목에다가 멍에를 얹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손가락질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손가락질만큼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 없습니다. 손가락질을 잘하는 사람은 깨끗하고 흠없는 사람이 아니라, 대개는 열등감이 많은 사람입니다. 융이라는 심리학자는 '그림자'라는 말로 이것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몹시 못 마땅해 하는 것은, 그에게서 내 모습을 보기 때문이래요. 내가 억압하고 살아온 욕망을 그에게 투사하고는 그것에 대해 분노한대요. 어떻게 보면 성실하고 모범적인 사람들이 융통성이 없는데, 그들에게는 그림자가 많기 때문이에요. 믿음의 사람이란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 그것을 하나님께 내놓고 치유받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이들은 자기들의 어둠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약함과 상처, 부족한 것을 보고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안으려 합니다. 누군가를 손가락질하고 싶을 때마다, 아, 내 속에 있는 치사한 욕망이 발동하는구나 생각하고 그것을 그만둘 때 우리 영혼의 힘은 자랄 것이고, 교회는 한결 따뜻해 질 것입니다.

허망한 말도 버려야 합니다. 교만한 말, 거짓말, 거친 말, 빈 말 따위 말입니다. 말이란 결국 사람 사이의 다리인데, 그 다리가 부실해지면 아무도 서로에게 다가설 엄두를 내지 않습니다. '믿을 信' 자에 '말씀 言' 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부리는 말이 곧 나의 나됨을 드러낸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모든 말이 진실해야 합니다. 허망한 말이 우리 사이를 떠돌지 못하도록 입 단속을 잘해야 공동체에 평화가 깃듭니다.

그 다음에 할 일은 어려운 사람의 소원을 정성을 다해 충족시켜 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다 기울여야 합니다. 요한도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요일4:20)고 했습니다. 어려운 형제자매를 돕기 위해 지속적인 정성을 기울이는 동안,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것을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달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가르쳐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찾아내야 합니다. 할 일을 찾아 아무 말 없이 그 일을 시작하십시오. 우리의 정성이 있는 곳, 그곳에서 하늘에 이르는 다리가 시작됨을 잊지 마십시오. 그 다리는 다른 사람을 건네주는 다리인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건너야 할 다리임도 잊지 마십시오.


물 댄 동산의 꿈

우리가 이렇게 살 때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겠어요? 이사야는 이런 아름다운 비전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11)


물 댄 동산 같은 사람 혹은 공동체, 얼마나 멋집니까?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인생의 불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 같은 공동체, 속에서 자꾸만 사랑이 솟아나 세상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공동체……

이런 신앙공동체는 결국 사람들 사이에 미움과 갈등으로 갈라지고 무너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공동체, 곧 평화를 만드는 공동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혀 있던 인정의 통로가 열리게 하는 '하늘 다리'인 것입니다.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는 소문이 빈 말이 아닌 교회, 저는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는 어느 누가 완성품으로 우리에게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차근차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길 없는 곳에 길을 만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 어두운 집에 불을 밝히고, 아궁이에 불을 넣어 집안에 훈기를 불어넣는 사랑의 수고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불쏘시개가 될 사람들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아질 때 우리 교회는 참 멋진 하늘 다리가 될 것입니다. 연둣빛 새잎이 봄을 아름답게 장식하듯, 사랑과 섬김으로 이 공동체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감사함으로 동참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