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29.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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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계19:5-10
설교일시 200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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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복
계19:5-10
(2002/7/21)


크로이소스와 솔론

주전 7세기 경, 리디아의 왕이었던 크로이소스는 여러 나라를 정복하여 복속시켰습니다. 번영의 절정을 이룬 그 나라에 많은 현인들이 찾아왔습니다. 그 가운데는 아테네인 솔론도 있었는데, 그는 아테네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법률을 최초로 제정한 사람이었습니다. 크로이소스도 그에 대한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솔론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의 위엄을 과시하고 싶어졌던 것 같습니다. 왕은 시종을 시켜 자기의 보물 창고로 솔론을 안내하여 호사스럽기 이를 데 없는 보물들을 다 보여주게 했습니다. 그런 후에 자기의 위엄에 스스로 우쭐해진 왕이 솔론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테네의 친구여, 그대에 대한 소문을 이 나라에서도 우레처럼 듣고 있소. 그대가 현자라는 것은 물론, 지식을 찾아 널리 세계를 돌아다니며 견학한 것도 들어 알고 있소. 그래서 그대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제까지 본 사람 중에 누가 제일 행복한 사람인 것 같소?"


물론 크로이소스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물은 것인데, 솔론은 아테네의 텔로스라는 사람이 그런 인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기분이 상한 왕이 그 이유를 묻자 솔론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텔로스는 우선 번영하는 나라에 태어나 훌륭한 자식들을 두었고, 그 자식들에게서 모두 아이들이 태어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잘 살았습니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기준에서 보아 생활도 유복했고, 그 임종이 또한 실로 훌륭했습니다. 즉 아테네가 이웃 나라와 엘레우시스에서 싸울 때, 텔로스는 아테네를 구원하러 가 적을 패주시킨 후 훌륭하게 전사했습니다. 아테네는 국비를 들여 그가 전사한 곳에 그를 매장하고 크게 그의 명예를 기렸습니다."


같은 질문을 두 번, 세 번 던졌지만 실망스럽게도 솔론은 다른 사람의 이름만 거명합니다. 화가 난 크로이소스가 "그러면 나의 이 행복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솔론은 잠깐 행복을 맛보다가 신의 노여움을 사서 완전히 파멸해 버리는 인간도 상당히 있다고 말하면서 그 결말을 보지 않고는 누구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크로이소스 왕은 지금 누리고 있는 번영을 제쳐두고 모든 것의 '결말'을 보라는 솔론을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고는 냉담한 태도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하다

대체 누가 행복한 사람일까요? 솔론이 제시한 행복은 참 소박합니다. 좋은 나라에 태어나, 자식 낳아 잘 기르다가, 훌륭하고 명예롭게 죽는 것이 그것입니다. 가난을 달팽이 껍질처럼 지고 살던 천상병 시인의 행복은 더욱 소박합니다.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사실 행복은 행복한 사람의 것입니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뱀은 이슬을 먹고 독을 만들지만, 양은 젖을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행복한 사람은 어떤 재료를 가지고도 행복을 만들어냅니다. 풀잎을 보아도 행복하고, 찬 없는 음식을 먹어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행복을 밖에서 찾습니다. 어딘가에, 혹은 무언가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을 얻기 위해 숨찰 정도로 열심히 일합니다. 세상이 제시하는 행복의 기준에 나를 맞춰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거지요. 그러나 행복은 우리가 팔을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있는 것 같은데, 야속하게도 우리가 다가가는 만큼씩 멀어집니다. 살다보면 행복하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우리는 이 느낌 속에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우리는 또 다시 행복에 굶주린 사람이 되어 두리번거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 있든지 행복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주십니다. 행복은 그렇게 어려운 목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가까이에 있고,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 행복은 다른 이와 경쟁을 통해 얻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공짜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 행복이 싸구려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값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성경은 여러 가지 답을 주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생에 아주 근본적인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신5:33)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롬4:8)

"그대가 지니고 있는 신념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간직하십시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를 정죄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롬14:22)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받아들여주심을 믿는 사람이고, 자기의 신념대로 살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물론 행복이 물질적인 조건과 전혀 무관한 것일 수는 없습니다. 너무 가난하면 우리는 고통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고, 우리 영혼의 평정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형적인 것들은 행복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일 수는 없습니다.


초대받은 자의 행복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또한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을 것이냐도 중요합니다. 죽음을 생의 종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죽음은 허무한 것이고, 두려운 것이고, 어떻게든 회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다가올 현실입니다. 죽음은 또한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하늘의 길은 땅의 길과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삶을 통해 죽음 이후의 삶을 예비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비밀을 안 사람들은 오늘을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계시록의 저자는 우리에게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를 밝혀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19:9)


깨끗하고 빛나는 세마포를 입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청을 받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들이 입는 깨끗하고 빛나는 옷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간 그들의 선한 행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죄의 얼룩은 어린양의 피로 씻어야 합니다(계7:14).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 속에 있어야 우리는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빈혈이 심하거나 핏기 없는 이들은 살기 위해 수혈을 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핏기 없이 파리한 얼굴로 살아가는 신자들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속에 흘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가슴이 뜨거워진 사람들, 삶과 죽음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 '주님을 섬기다가 죽기를 소망하는 사람들'(계14:13)이야말로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는 세상의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기에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고 삽니다. 권력 앞에 주눅들지 않고, 고난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힘이 있다고 교만하지 않고, 무력하다고 비굴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마련하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물론 그 잔치에 참여하기까지 우리가 이 땅에서 겪어야 하는 일들이 힘겨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잔치에 참여할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우리는 현실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철저히 신뢰한다면 우리는 생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렇기에 그는 가볍습니다. 가볍기에 노래부를 수 있고, 춤출 수 있습니다. 그는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루하루를 일에 지친 사람으로가 아니라, 행복이라는 보물찾기에 나선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이미 용서받았고, 자유인이 되었고, 하나님 나라에 초대받았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잊지 말고 하루하루를 축제로 바꾸며 사십시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