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33. 깊이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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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111:1-10
설교일시 200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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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생각하라
시111:1-10
(2002/8/18)


매혹의 땅 메이서

미국의 뉴 멕시코에는 매혹의 땅 메이서(Mesa)라는 곳이 있습니다. 광막한 사막 위로 높이 솟아있는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메이서 꼭대기에 살고 있을 때만 해도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그곳에 오르는 가파른 길이 몇 가닥 나있었지만 그곳만 지키면 외부의 침입을 염려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물은 바람과 정령들이 공급해주었습니다. 그들은 하늘 가까운 곳에서 계절과 조화를 이루며, 예부터 전해오는 의례와 기도와 춤을 통해 그곳의 정령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 생활에 익숙해진 몇몇 사람들이 점차 옛 방식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비가 오고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잊었고, 봄과 겨울이 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기도와 감사를 게을리하고, 자기들이 누리는 모든 것들이 선물로 주어진 것임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정령은 마음이 언짢았습니다. 그래서 경고를 보냈습니다. 메이서에는 가뭄과 홍수가 갈마들었고,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고, 여름은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더웠습니다. 그러나 그런 표징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상황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나이 든 몇몇 분들만이 춤을 추었고, 자기들의 내력을 이야기했고, 수확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위대한 정령에게 옥수수를 바쳤습니다. 경외심을 담아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더 적었습니다. 어느 날 밤 무서운 폭풍이 불어와 메이서에 오르는 길들이 다 끊어졌습니다. 집들도 무너졌고, 조심스럽게 간직되고 있던 물도 흐려졌습니다. 아침이 되어 태양이 떠오르자 사람들은 비로소 메이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몇날 며칠이 흘러갔습니다. 먹을 것은 떨어졌고 설상가상으로 물도 바닥이 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노래를 불렀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천둥이 치고 구름이 모일 때도 있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서원을 하고 신음 소리를 내며 도와달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침묵할 뿐이었습니다. 얼마 후 메이서에는 옛 방식을 존중하고, 하늘에 이르는 가파른 계단을 소중히 여기는 몇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방문자들을 이곳저곳으로 안내하면서 자기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억하고, 노래하고, 기도하고, 삼라만상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말입니다. (McKenna/Cowan,『Keepers of the Story』, pp.28-29)

지금 세계는 기상이변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비 피해는 참혹할 정도입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블타바강이 범람하면서 천 년 고도인 체코의 프라하가 물에 잠겨 소중한 문화유산이 유실될 위기에 빠졌고, 엘베강이 범람하면서 드레스덴을 비롯한 중부 유럽이 물에 잠겼습니다. 메이서의 비극이 지금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재앙의 원인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질서에만 집착해 가장 소중한 생의 한 차원을 잃어버린 인간의 탐욕일 것입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피조물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미하고, 삶의 순간 순간을 하늘의 선물로 받아 누리면서, 마땅히 돌려야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기에 우리는 오늘의 위기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라

성경은 도처에서 '깊이 생각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 생의 이면의 질서에 눈을 돌리라는 말입니다. 보이는 것만 보지말고,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질서를 알아차리기 위해 마음을 모으라는 말입니다. 시편 111편은 예배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를 상기하며 그분의 뜻을 받들어 살자고 다짐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소중한 것은 잘 가려내어 마음 속에 새겨두며 사는 것이 참 삶의 비결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간사합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도우심을 간구하지만,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하나님을 괄호 속에 묶고 살아갑니다.

이게 인간의 비극입니다. 자기가 누리고 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영혼의 타락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타락은 익숙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 한 모금, 밥 한 그릇조차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는 것, 이것이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게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을 함께 기리고, 기억을 이어가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시인은 예배 공동체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은총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참으로 훌륭하시니, 그 일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모두 깊이 연구하는구나. 주님이 하신 일은 장엄하고 영광스러우며, 주님의 의로우심은 영원하다. 그 하신 기이한 일들을 사람들에게 기억하게 하셨으니, 주님은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다."(2-4)


예배를 통해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기억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역경과 환난 속에서도 그들과 동행해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생의 버팀목

세상을 보면 정말 하나님이 계신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악인이 흥왕하고, 선인이 시련을 겪는 것은 보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옛 사람은 '하늘 그물은 성기어도 빠뜨리는 것이 없다 天網恢恢, 疏而不失'(老子,『도덕경』73장) 했습니다. 폭풍이 몰려와 바다 표면이 일렁일 때도 바다 깊은 곳의 흐름은 바뀌지 않는다지요? 세상이 어떠하든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만일 우리들처럼 경박하게 마음을 쓰신다면 세상은 뒤죽박죽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옳고, 그분의 마음은 언제나 신실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은 이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먹거리를 주시고, 당신이 맺으신 언약은 영원토록 기억하신다.(5)


이 말씀 하나 굳게 붙잡고 살면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을 잊으시는 법이 없습니다. 당장 나의 욕구에 응답하지 않으셔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려는 용기

믿는 사람이 고요히 자기의 삶과 역사를 성찰하면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법도는 귀찮은 짐이 아니라, 소중한 도우심이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 하나님의 법도를 옆으로 밀어놓고 삽니다. 그것은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일처럼 어리석습니다. 최근에 기독교인 연예인들이 저지르는 여러 가지 불법적인 행동들을 보면 참 속이 상합니다. 그들은 잘못 믿고 있습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면 반드시 더 큰 것을 잃게 되어 있습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그 성안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니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성과 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전멸시켜서, 그것을 주님께 제물로 바쳐라……너희는, 전멸시켜서 바치는 희생제물에 손을 댔다가 스스로 파멸당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여라. 너희가 전멸시켜서 바치는 그 제물을 가지면, 이스라엘 진은 너희 때문에 전멸할 것이다.(수6:17-18)


이 명령은 일견 잔인해 보이지만 그것은 고대 세계의 종교관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에서 아주 심오한 진실을 발견합니다. 내 몫이 아닌 것을 탐내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입니다. 제 아무리 근사한 것이라 해도 내 것이 아니라면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의 것을 가로채고, 하나님의 것을 가로채서 얻을 것이라고는 파멸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도는 더딘 것처럼 보여도 틀림없이 시행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의 행복

시인은 우리가 잘 아는 지혜문헌의 경구로 자기 시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우리가 삶을 통해 얻게 되는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공부를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바른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때 그는 영원토록 주님을 찬미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 행복의 신화, 성공의 신화에 걸려 허둥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돈이 많은 데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해지는 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메이서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하나님 경외하기를 잃어버린 문명, 자연과 더불어 찬미하고 경탄하기를 잃어버린 문명은 스스로 파멸을 향해 나아갑니다. 세상의 달콤한 유혹에 맞서십시오. 그리고 마음 속에 슬며시 파고들어 우리를 지배하려는 절망감에게 퇴거를 명하십시오. 하나님은 살아 계심을 날마다 몸으로 체험하십시오.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가팔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편안한 길이고 안전한 길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선물이고 은총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 그리고 그 은총을 마음을 다해 찬미하십시오. 그것이 살길입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