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35. 시간의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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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전4:1-5
설교일시 20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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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징검다리
고전4:1-5
(2002/9/1)


개울을 건너는데 징검다리가 필요하듯이, 우리가 시간의 강물을 건너는 데도 징검다리가 필요합니다.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면 우리의 기억 속에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슬픔과 기쁨이 갈마드는 인생이지만, 대부분의 일들은 세월과 더불어 잊혀집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 어쩌면 점점 더 생생해지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슴 뿌듯한 순간일 수도 있고, 남에게 밝히기 어려운 부끄러운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기억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쳐서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짓곤 합니다.


요금 미터기를 끄고

콜택시 기사였던 토니는 어느 해 크리스마스 날 새벽에 시내 어떤 주소로 가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도어벨을 누르니 한참 있다가 문이 열렸고, 거기에는 마치 40년대 영화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복장에 모자까지 단정히 쓴 아주 나이 든 할머니가 서 있었습니다. 그 뒤로 보이는 방에는 가구가 다 흰색 천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차에 타자 할머니는 주소를 주면서 시내를 가로질러 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 돌아서 가는 건데요. 할머니." "괜찮아요. 난 시간이 아주 많아.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거든. 난 식구도 없고, 의사선생님 말씀이 이젠 갈 때가 얼마 안 남았다우."

어둠 속에서 할머니 눈에 이슬이 반짝였습니다. 토니는 요금 미터기를 껐습니다. 그로부터 두시간 동안 토니와 할머니는 함께 조용한 크리스마스 새벽거리를 드라이브 했습니다. 그녀가 젊은 시절 엘리베이터걸로 일하던 빌딩, 처음으로 댄스파티에 갔던 무도회장, 신혼 때 살던 동네 등을 천천히 지났습니다. 때로는 어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그냥 오랫동안 어둠 속을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어슴프레 날이 밝아오자 할머니는 "이제 피곤해, 그만 갑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토니는 몸을 굽혀 할머니를 안아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자네는 늙은이에게 마지막 행복을 줬어. 아주 행복했다우." 할머니의 말씀이었습니다. 노인이 된 토니는 그날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난 그날 밤 한참동안을 할머니를 생각하며 돌아다녔지. 그 때 내가 그냥 경적만 몇 번 울리고 떠났다면? 그래서 크리스마스날 당번이 걸려 심술 난 다른 기사가 가서 할머니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더라면…. 돌이켜보건대 난 내 일생에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해 본적이 없어. 내가 대통령이었다 해도 아마 그렇게 중요한 일은 하지 못했을지 몰라."
(2002년 8월 24일자 중앙일보 「삶과 문화」에 실린 장영희 컬럼 중에서)


토니가 요금 미터기를 끈 그 순간이야말로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를 불러낸 순간이었으니 말입니다. 이윤 동기에서 일하던 그가 한 할머니의 외로움과 쓸쓸함에 공감하는 사람으로 바뀐 그 변화의 순간은 또한 은총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를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는 순간 주님의 말씀이 천둥처럼 제 가슴을 울렸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나'와 분리된 '타인'은 없다

우리는 언뜻 보기에 사소해 보이는 일을 소홀히 할 때가 많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지 않는 이들은 대개 자기에게는 처리해야 할 더 크고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써야 할 더 중요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아이와 놀아줄 시간도 없고, 이웃의 어려운 사정에 귀를 기울이거나 눈길을 줄 시간도 없습니다. 그는 항상 피곤합니다. 계절이 바뀌어 꽃이 피든지 지든지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도 않습니다. 그럴 시간도 마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는 세상에서 유능한 사람으로, 성실한 일꾼으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좋은 사람'일까요? 우리는 이 물음에 쉽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그를 돕는 배필을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본래 서로를 위해 있는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나의 나됨'은 '너'를 향해 있을 때 온전히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다른 이들을 위해 사셨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말은 적절치 않습니다. 주님께는 '나'와 분리된 '타인'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귀신들린 사람들, 소외감 속에 유폐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그런 이들을 묶고 있는 고통의 사슬을 풀어내는 것이 주님의 존재이유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걸으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을 가리켜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들'이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또한 '눈을 뜬 자'입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생의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부름 받은 사람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일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의 중심을 가진 사람

사도들만이 '그리스도의 일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오한 진리를 맡은 것은 교역자들만이 아닙니다. '그 길'을 걷도록 부름 받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일군이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주인에 대한 충성'입니다. 자기가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사는 사람은 어떤 생의 시련이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리지 않으셨던 것은 하나의 중심을 굳게 붙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8-39)


이 말은 예수님의 생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늘 제 가슴에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 한 분 한 분에게 정성을 다하지 못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는 덜 중요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소홀히 해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는 말입니다. 모두가 다 소중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군중'으로 보시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만나든지 그와의 만남을 아름다운 순간으로 만드셨습니다. 병자들은 치유 받았고, 귀신들렸던 사람들은 정신이 온전해졌고, 소외감 속에 있던 이들은 살맛을 되찾았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만나 어떻게 아름다워지셨습니까?


부족함조차 봉헌하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기신 일을 알고, 또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바울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3-4a)


바울은 세상 사람들의 평판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칭찬도 비난도 그의 마음을 흔들 수 없습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심판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일이 잘 이루어졌어도 그는 우쭐하지 않고, 잘 안 됐을 때도 의기소침해지지 않습니다. '잘했다, 못했다' 평가를 하실 분은 주님 한 분뿐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산의 정상을 향해 갈 때 우리는 등성이를 오르기도 하고, 계곡으로 내려가기도 하면서 앞으로 전진합니다. 많은 순간 우리는 성도다운 삶의 길에서 벗어나곤 합니다. 때로는 이기적이고, 정욕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는 마십시오. 그게 우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은총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족함을, 그리고 허물을 하나님께 봉헌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도 아름다운 인생의 집을 지어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질병과 고독, 실패의 쓰라림, 부끄러운 기억들은 꿈틀거리는 애벌레처럼 징그럽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봉헌되면 하나님은 그것으로 오색찬란한 날개를 가진 나비로 바꾸어주십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이것이 해방이고 구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심오한 진리를 맡은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충성스럽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앞의 이야기에서 운전기사 토니가 요금 미터기를 끄고 외로운 할머니의 벗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한 번 두 번 그런 경험을 하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시간의 강물 위에 놓인 징검다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놓은 것이기에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놓은 그 징검다리를 통해 누군가가 고단한 세월을 안심하고 건널 수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임이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큰 일에 마음을 쓰느라고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이들이 되지 마십시오. 가장 소중한 사람은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이고,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시간은 지금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우리에게 사랑의 기회를 제공하라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거룩한 소명을 삶 속에서 온전히 이루어 고단한 시간을 건널 징검다리를 만들며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