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37. 주님의 밭으로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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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9:35-38
설교일시 200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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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밭으로 나오라
마9:35-38
(2002/9/15)


땅이 몸부림을 칠 때

황금물결이 넘실거려야 할 들녘에 농부들의 한숨소리가 가득합니다. 흙에 묻힌 농작물을 바라보는 그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한가위 명절이 다가와 소담스런 햇곡식을 거두며 땀흘림의 기쁨을 맛보는 이들도 있지만, 죽은 자식을 바라보듯 꺼멓게 타들어가는 농부들의 시름이 빈들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쉴새없이 닥쳐온 시련 앞에서 눈물을 삼키고, 절망감을 다독이며 삶터를 복구하고 기어코 일어나는 잡초를 닮은 사람들, 이것이 어질고 순후한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고, 우리의 핏속에 심겨진 질긴 생명력입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안타깝습니다. 이런 자연 재해가 결국은 우리가 지향하는 삶이 초래한 결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땅의 몸부림입니다.

땅이 몸부림을 칠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자연재해가 인간의 죄와 밀접히 연루되어 있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의 사람들은 예기치 않은 불행이 찾아왔을 때, 그 불행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등진 삶의 방식이 그런 재앙을 낳았음을 알아차리고 회개했습니다. 이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하늘의 소리에 귀가 뚫린 것을 '총聰'이라 하고, 눈이 뚫리면 '명明'이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총명합니까? 우리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삽니다. 하지만 홍수에 마실 물 없다는 격으로, 정말 소중한 것에 귀가 열리지 않고 눈이 뜨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알아야 할 것은 모르는 헛똑똑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보라고 하십니다.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적인 가치관의 노예가 되어 살다가는 다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물이 바다를 채울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욕망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욕망의 길이 아니라, 사랑의 길을 택해야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사랑의 길은 섬김의 길이고 보살핌의 길이고, 자기 포기의 길이고 나눔의 길입니다. 그 길은 좁은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예수님의 길입니다. 영원한 아버지에게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그 길을 외면한 채 살았습니다. 그 결과가 이런 재해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번 재해는 우리에게 일정한 선물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웃의 불행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바라보지 않는 마음이 이 땅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은 분명 희망의 조짐입니다. 수해복구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몸으로 일한 사람들이나, 성금을 보낸 이들 모두 우리 주님의 밭에 나간 사람들입니다. 그 고통의 현장이야말로 주님의 일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세상의 아픔을 온몸으로 아파하신 분이십니다. 제2이사야는 고난받는 종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주님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주님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떠도는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보여주셨고,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고쳐주셨습니다. 본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36)


예수님은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세상의 모든 약한 이들을 품어 안습니다. 공생애라야 3년에 지나지 않는데, 예수님이 하신 일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주님은 한 사람의 가슴속에서 솟아나는 사랑의 열정이 얼마나 위대한 변혁의 힘인지를 인류에 깊이 각인시키셨습니다.

·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 '사랑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 '사랑의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사랑을 연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사랑을 몸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힘과 능력, 시간을 사랑을 위해 바치셨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돌보아 주어야 할 사람은 넘치는 데 돌볼 사람은 너무도 부족했습니다. 주님은 정말 간절히 누군가 당신의 일에 동참해주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하소연하듯 말씀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37-38)


까르페 디엠(Carpe Diem)

주님의 마음은 절박합니다. 추수란 때를 놓치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느타리버섯을 재배하는 제 친구는 버섯 수확 때가 되면 밤을 새기 일쑤입니다. 1시간만 수확이 늦어도 상품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라더군요. 우리는 누군가를 돕고, 돌보아주어야 할 필요에는 공감하지만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은 쉽게 잊습니다. 아직도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다려주지 않는 것은 부모님만이 아닙니다. 사랑의 기회는 재빨리 우리 곁을 지나가 버립니다. 'Carpe Diem'(Seize the Day)! 지금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사랑을 위한 모험에 나설 것인가, 자아 속에 갇혀 살 것인가? 우리는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항상 뭔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아 허덕입니다. 도리스 되리(Dorris Doerrie)의 영화 <<파니 핑크>>에 나오는 인물 오르페오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번민하는 파니에게 말합니다.


"이 잔을 봐! 반쯤 찼어, 비었어?……봐! 그게 문제야. 없는 것이나 불가능한 것, 잃어버린 것에 대한 불평, 항상 부족해 하는 마음……. 너는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어. 일, 집, 가족, 하얀 피부색……. 뭘 더 바래? 난 아무것도 없어. 병에 걸렸고 곧 죽을 거야.……누굴 위해 한 번이라도 희생해 본 적 있어? 사랑 받고 싶어 안달하면서도 항상 자기만 생각하지?"


파니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일 겁니다. 우리는 자신의 상처와 아픔에 사로잡혀 더 어려운 이웃들의 고통에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은 항상 더 화려하고 편안한 삶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 속에 있는 사랑의 능력은 소멸되고 맙니다.


쭉정이는 없다

어느 날 마더 테레사가 한 어린이의 고름 든 몸을 만지면서 치료하고 있을 때 어느 분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수녀님은 잘 사는 사람, 평안하게 사는 사람, 그리고 높은 자리에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시기심이 안 생기나요? 이런 삶에 정말 만족하세요?" 수녀님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답니다."

테레사 수녀의 말은 인간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일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주님 주변에는 온통 고통받는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추수를 기다리는 알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보기에 쭉정이처럼 보이는 사람도 주님에게는 알곡입니다. 그 알곡들을 모아 하나님나라의 창고에 들이는 것이 주님의 추수입니다. 얼마 전에 구걸하러 다니는 어떤 분이 제게 와서 성미를 좀 나눠달라고 했습니다. 하루 3000원을 내고 서울역 근처에서 살고 있는데, 병 때문에 일도 못하고,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쌀을 준비해놓을 테니 언제든 와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지난 목요일 세분이 와서 쌀을 가져갔습니다. 조심스럽게 쌀을 가방에 담고는 한 분이 수줍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호두 두 알이 들려 있었습니다. 뭐라도 드리고 싶은데 드릴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빵 한 봉지를 내밀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받은 선물 중에 오랫동안 잊지 못할 선물이었습니다.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서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들조차 추수를 기다리는 알곡으로 보시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속에 있는 아름다움과 인간미를 일깨우는 것은 일꾼으로 부름받은 우리의 마땅한 책임입니다. 주님의 밭에서 추수를 기다리는 영혼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는 사랑의 모험을 감행해야 합니다. 고통이 있는 곳, 눈물이 있는 곳, 바로 그곳이야말로 주님을 만나뵐 수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가운데서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노숙자들, 꿈을 이루기 위해 왔지만 차별과 박해 속에서 시름하는 이주 노동자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망명처를 찾고 있는 북한 이탈 주민들, 세상의 그늘진 곳에서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에게 한가위 보름달 같은 주님의 넉넉한 사랑을 전파하는 사랑의 전령이 되십시오. 주님의 밭은 무르익어 추수할 일꾼을 찾고 있습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주십시오' 했던 이사야의 응답이 오늘 우리 가운데 나타나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