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47. 단단한 씨앗
설교자 김기석
본문 고후4:16-18
설교일시 200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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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씨앗
고후4:16-18
(2002/11/24)


매미 소리 잦아들듯

주섬주섬하다 보니 환갑나이 되었네.
사람의 짜른 생애 이런 것이지.
세월은 바삐바삐 흰머리도 떨구지만
고생살이도 내 곧은 맘 어쩌지는 못했네.
가난을 깨달아서 凡骨은 면했지만
病이 들면 그 누가 妙方이 있나?
물 흐르듯 가는 餘生 묻지는 말게.
매미 소리도 나무에 붙어 지는 해를 따르네.


이 시는 만해 한용운이 환갑을 맞은 1939년에 쓴 <환갑날에>라는 시입니다. 일제의 압박 속에서 올곧은 정신으로 살아왔던 그이지만, 어느덧 환갑을 맞아 머리에는 흰 이슬이 내렸고 기력도 전만 못합니다. 시인은 사람의 짧은 생애가 본래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혼잣소리인양 말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시련의 가시밭길을 걸어왔지만 자기의 곧은 마음을 굽히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난을 자신의 직업처럼 여기며 평안하기를 구하지 않았기에 욕망에 따라 휘둘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고마운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쇠약해진 몸에 병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시인은 그것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가면 늙고, 병들고, 소멸하는 것은, 여름이 지나 해가 짧아지면 매미소리가 잦아드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강철같은 신념으로 살았던 시인이지만 생의 말년을 보내는 쓸쓸함이 이 시에 배어있음을 우리는 느낍니다.


낙심하지 않는 까닭

그런데 우리는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순응하면서도 여전히 푸른 마음을 잃지 않는 영원한 청년을 알고 있습니다. 시편 92편이 말하는 의인,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는" 그 청년의 이름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도 이제 나이가 많아져서 모든 것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절감합니다. 눈은 침침해지고, 기력도 줄어들어 빨리 걸을 수도 없고, 기억력도 전만 못합니다. 주름살과 흰머리가 속절없이 늘어만 갑니다. 하지만 그는 인생의 무상함 때문에 우울해하지 않습니다. 그칠 새 없이 몰려오는 시련과 환난 속에서도 그의 마음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16)


이런 삶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행하느라 시련을 겪고 있는 이들을 영원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확신(고후4:14)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을 실현하는 것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꿰뚫어 보는 것(히11:1)이라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외적인 화려함과 번성함이 아니라, 온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궁극적인 토대에 자기 삶을 잇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의 무상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젊음의 때는 잠깐이고, 외적인 아름다움도 세월과 더불어 스러집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일장춘몽과 같은 것입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면 한때 우리 마음을 설레게 했던 것들은 더 이상 우리 삶의 보장이 될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한때 우리가 온통 집착했던 것들이 서리맞은 배추처럼 폭삭 주저앉을 때에도, 결코 스러지지 않는 생명의 알짬,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분명히 있는, 아니 있어야 할 그것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편함이 아니라 참됨을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18)

바울은 보이지 않는 생명의 고갱이를 얻기 위해 고난도 시련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당대의 지식인이고, 경건한 바리새주의자였던 그가, 안락함이 보장된 삶을 버리고 시련의 풍랑 앞에 나선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뜻을 세운 사람은 아랫목을 탐하지 않는다 합니다. 바깥바람이 차다고 구들장만 지고 있으면 몸은 편할지 몰라도 정신의 몸은 물크러지게 마련입니다. 바울은 '편함'을 구하지 않고 '참됨'을 구했습니다. '부유함'을 구하지 않고 '빛됨'을 구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영원한 청년입니다.


우리의 잠시 받은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
리에게 이루게 하나니(17)


우리는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늘 고난 속에서 살았음을 압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겪는 고난을 일시적인 것(momentary)이라고, 또 가벼운 것(light)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생의 짐이 무겁다고 투덜거리거나 징징 우는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주를 위해 겪는 시련이 빚어낼 영원하고(eternal), 큰(great) 영광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찬 비바람은 아름다운 꽃잎을 떨어뜨리지만, 꽃잎이 진 후에야 열매가 맺힘을 우리는 압니다. 또 그 열매 속에 있는 단단한 중심인 씨앗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음을 압니다. 어려움 자체가 선은 아닙니다. 하지만 진리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겪는 어려움은 우리 속에 영원한 생명을 깃들게 합니다.


우직한 사람과 의붓자식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어 보입니다. 세상살이에 이골이 난 약은 사람들은 혀를 차며 말합니다. 소나기는 피해야 하고, 바람이 불면 몸을 낮추고, 앞이 막히면 돌아서 가라고 말입니다. 자기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나부끼는 정치인들을 보고 철새 정치인이라고 하더군요. 힘있는 이에게 엎드리는 것을 비겁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을까요? 미군이 장갑차로 어린 여중생들을 깔아죽여놓고도 운전병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미국의 오만함 앞에서, 대통령궁까지 사찰을 받겠다는 이라크에 대해 기어코 전쟁을 벌이겠다며 각국에 파병을 요청하는 미국을 향해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事勢不得已'(일의 형세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하단 말만 반복합니다. 그들은 꼭 있어야 할 배알은 내버리고, 없어도 좋을 배알(拜謁, 높은 어른 께 뵘)에만 마음을 씁니다.

'힘'이 정의가 되고 있는 세상에서 '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어리석음이야말로 곧은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愚直'해야 합니다. 어리석어(愚) 보이지만 곧아야(直) 한다는 말입니다. 세월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익을 향해 달려가느라고 의를 내팽개친 사람들은 자기 꾀에 스스로 넘어가고 말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사느라고 온갖 시련과 고달픔을 겪었지만, 오히려 그것은 그의 내면 속에 단단한 생명의 씨앗으로 응고되었습니다.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16c)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볼품없어 보여도 여문 씨앗을 품은 열매는 농익은 맛을 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느라고 세월을 낭비하지 말고, 내실을 다지기 위해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산길을 걷다가 우연히 바람에 실려오는 향기에 끌려 바라보니 서리를 맞아 시든 들국화 한 줌이었습니다. 시들어도 향내를 풍기는 들국화처럼 세월이 가도 변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딱히 크게 하는 일이 없다 해도,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우리 곁에 다가올 때 문득 향내에 끌려 그리스도에게 이르도록 한다면 우리는 한 생을 잘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어떤 경우에도 쇠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씨앗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심기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