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 우리의 내일은 밝습니다
설교자
본문 사52:7-12
설교일시 2003/1/5
오디오파일
목록

우리의 내일은 밝습니다
사52:7-12
(2003/1/5)


미소 수행

며칠 전 뉴질랜드에서 성공적인 사업가로 일하고 있는 어느 여성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고생도 많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도전하는 자세로 사는 분이었어요. 늘 즐겁게 일하려고 애를 쓰지만, 일이 너무 힘들고 마음이 무거워지면 슬며시 거울 앞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얼굴이 웃으면 가슴도 따라 웃거든요." 참 중요한 통찰이에요. 그 아주머니는 일상 속에서 '미소를 통해 자기 마음을 닦는 수행'을 실천하고 있었던 거예요. 삶이 힘겹다고 자꾸 인상을 쓰다보면 마음은 점점 흐려지고, 좁아지게 마련이에요. 하지만 얼굴에 미소를 띄우는 순간 답답했던 우리 마음이 조금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오늘 설교 제목이 "우리의 내일은 밝습니다" 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목사님 말씀은 언제나 지당한 말씀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분도 계실 거예요. 하지만 우리의 내일이 밝다는 말은 앞날에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은 아니에요. 설사 어두운 날이 다가온다 해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면서 어둠 속에서도 미소를 짓겠다는 다짐을 나타내는 말이에요.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뭐냐는 물음에 많은 이들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대답했더군요. 북한의 핵문제 해결보다 경제문제가 더 시급하다는 것이지요. 물가는 오르는데, 주가는 떨어지고, 소득도 줄어들면 정말 힘들지요. 생활의 규모를 줄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저의 소망은 우리 사회가 상식이 통용되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거예요. 어느 때부터인지 우리 사회에는 부정과 부패가 관행이 되고 말았어요. 뻔히 잘못된 일을 하면서도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누군가가 그런 잘못을 지적하면 "나만 그런가?" 하고 대꾸하지요. 그런 말을 부끄러움도 없이 해요. 내적인 부패는 나라의 토대를 허물어뜨리게 마련이에요. 이제 새로워져야 해요. 이사야는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주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라

이사야는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외침을 듣고 있어요. 타락한 백성들 때문에 속이 상해서, 백성들을 멀리 떠나신 줄 알았던 하나님이 지금 돌아오고 계시다는 것이지요. 보초는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산등성이를 넘어 숨가쁘게 달려와요. 숨이 턱 끝까지 차 올랐지만 그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면합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마침내 평화의 새 시대가 도래했다'고 외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 복되도다." 정말 그래요.

평화의 시대는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될 때 열리게 마련이에요. '욕망'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던 우리에게 평화가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요. 하지만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면 불화는 저절로 그치게 되어 있어요. 욕망은 사람들을 다투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하나 되게 하세요. 관계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순간부터 우리는 '나 좋을 대로' 살 수 없어요. '하나님 좋으실 대로' 살게 돼요.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의 통치는 받아들이지 않아요. 겉보기에는 기독교인 같은데 살아가는 모습은 그렇지 못한 이들이 참 많아요. 누군가를 알려면 그의 뒷모습을 봐야 한다지요? 미셸 투르니에의 『뒷모습』이라는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내게 왔다가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으니!


화장으로 주름살은 가릴 수 있고, 남루한 가슴은 넥타이로 숨길 수 있지만, 우리의 뒷모습은 어쩔 수 없어요. 우리가 머물다간 자리에 남는 것이 곧 우리들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게 마련이에요. 사랑과 평화와 온기를 남기고 가는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행복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앞모습은 틀림없이 좋은 신앙인인데, 뒤에는 악취만을 남기는 사람이라면 그는 실패자이겠지요. 예수님은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막9:50) 하셨는데, 우리는 이 교훈을 이렇게 바꿀 수 있어요. "우리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서로 화목하자."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게 마련이에요. 하나님은 우리 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거든요. 하나님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하시고,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맡겨주세요. 길가에 굴러다니던 돌멩이가 다윗의 손에 들려졌을 때, 하나님을 모독하던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도구가 되었어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여인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과 만났을 때 성녀 마리아로 변했어요. 길가에 서서 십자가를 메고 가는 죄수들을 구경하다가, 불운하게도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구레네 사람 시몬은 성 시몬이 되었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의 손에 쓰임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따금 목수 김씨라는 이가 쓴 『목수일기』라는 책을 뒤적거립니다. 그의 나무 사랑은 참 유별납니다. 길가에 베어진 채 버려진 나무, 오랫동안 창고에 방치된 채 썩어가는 나무, 무너진 집터에서 비를 맞고 있는 나무, 아무 데도 쓸모 없어 아무의 눈길도 사로잡지 못하는 나무를 그는 참 소중히 거두어들여요. 그 나무들은 목수 김씨의 손에 들려지면 마치 마술처럼 아름다운 가구로, 혹은 장식품으로 되살아나더군요. 저는 그의 손길이 참 부러워요. 일단 그의 손길이 닿고 나면 버림받았던 나무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와요. 그런데 하나님도 목수 김씨처럼 생명의 손길로 우리를 어루만지셔요. 주님의 손길이 스치기만 하면 우리는 새로운 생명이 깨어나게 됩니다. 자기밖에 모르던 사람이 남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화 잘 내던 사람이 너그러운 사람으로, 항상 불평만을 쏟아내던 사람이 감사의 사람이 되고, 누구를 대하던 냉소적이던 사람이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변해요.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우리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능성을 끄집어내시는 주님의 능력에 있어요.


떠날찌어다, 떠날찌어다

주님의 손길을 경험한 사람들은 옛 삶에 머물 수가 없어요. 예언자는 압제의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 그 땅을 떠나라고 권고합니다. 삶은 떠남의 연속이에요. 절망과 부자유의 땅, 불신과 미움의 땅을 떠나 희망과 자유의 땅, 신뢰와 사랑의 땅으로 자꾸만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란 말이에요. 달콤한 죄의 유혹을 뿌리치고, 찬바람 부는 광야에 설 각오를 해야 해요. 예언자는 이제 부정한 것은 아예 건드리지도 말라고 하네요. 우리는 하나님의 그릇을 받들고 살아갈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너무 힘겹다구요? 하지만 예언자는 떠남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우리보다 앞서 가시고, 또 우리를 호위하신다고 말합니다.

새해 첫날 아침 도봉산을 오르면서 '잠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했어요.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눈 덮인 산길을 오르노라면, 마음에 쌓여있던 우울과 스트레스가 말끔히 씻겨나가는 것을 느껴요. 또 살갗에 닿는 찬바람의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따뜻한 아랫목을 떠나지 못하면 그 찬 맛, 잠들어 있는 우리의 야성을 깨우는 그 맛을 경험할 수 없어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예수님은 사십일 동안 광야에 머무셨어요. 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주님은 안일하고 편안한 일상을 떠나신 것이지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안주의 유혹을 뿌리치며, 옷자락을 잡아채는 죄의 손길을 뿌리치며,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해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안주의 자리를 떠날 때, 우리는 홀로가 아니에요. 길이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에요. 믿음을 지킬 것인지 죽음을 택할 것인지,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권력 앞에서 단호히 죽음을 택했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맹렬히 타고 있는 풀무불 속에 던져졌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뜻밖에도 그들과 함께 유유히 풀무불 속을 걷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우리가 어둠의 행실을 버리지 않는 한 세상에서 어떠한 성공을 거두든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이 앞서 가신 그 길로 나아간다면 비록 미래가 불투명하다 해도 우리의 내일이 밝을 거예요. 빛이신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의 어둠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진리이고 사랑이에요. 토마스 머튼 신부는 이런 말을 했어요.


"옳은 일을 지향하는 우리는 위험스런 인물들이다.…진리가 무기로 사용될 때 우리는 그 진리의 무서운 날카로움을 깨닫게 된다. 진리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둠의 행실을 떠나 빛을 향할 때, 거짓의 옷을 벗고 진리로 옷 갈아입을 때, 미움과 무정함의 동토를 떠나 사랑의 나라를 향할 때, 우리는 이미 밝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도 빛이신 주님과 함께 세상을 밝히는 빛의 사자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3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