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6. 상처, 희망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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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20:19-23
설교일시 200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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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희망의 샘
요20:19-23
(2003/4/20)


한 알의 밀알처럼

오늘은 우리 주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날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만물이 봄기운에 놀라 깨어난다는 경칩 절기로부터 시작된 사순절은 춘분·청명을 거쳐왔고, 이제 마침내 곡우 절기에 부활의 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곡우가 되면 봄비가 잘 내려 백곡을 윤택하게 한다 했습니다. 생명운동이 가장 왕성한 이때 사람들은 볍씨를 물에 담가 싹을 틔웁니다. 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은 미움과 불신과 이기심의 땅에 떨어져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무덤은 그를 가두어둘 수 없었습니다. 새싹들이 굳은 지각을 들고 일어서듯이, 예수님 속에 있던 영원한 생명은 죽음의 문을 열고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야수성을 절실하게 경험한 터라, 죽음이 생명을 삼킬 수 없음을 보여준 부활 사건을 더욱 기쁨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저는 사순절을 지나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이라크로 향하고 계시다고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물이 자기보다 낮은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흘러가는 것처럼, 인류의 아픔이 있는 곳이야말로 주님이 온 몸으로 나아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 그곳에서 죽임의 세력에 맞서 생명을 보듬어 안고 계실 것입니다. 전쟁으로 죽어간 남편들과 가족들 때문에 가슴에 피멍이 든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그들 속에 말없이 삶의 용기를 심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진정한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들 속에도 오셨습니다.


존재의 연금술

수난절을 지나면서 저는 전쟁과 테러와 질병과 극한 가난 속에 있는 이들의 고통과 아픈 기억과 빈곤함이야말로 우리 주님의 몸에 새겨진 상처임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주님은 지금도 여전히 몸을 찢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몸에 새겨진 그 상처는 우리에게 희망의 샘이 됩니다. 절망과 두려움 속에 유폐된 채 어찌할 바를 모르던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은 그들을 위해 '평화'를 빌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몸에 난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어쩌면 그 상처는 로마의 군병들이 아니라, 죄악 가운데 있는 인류가 공모하여 새긴 것인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그 상처 자국을 패배의 증표로서가 아니라, 승리의 표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난 상처를 통해 죽음을 넘어서는 주님의 깊은 사랑을 보았습니다. 사랑으로 인해 입은 상처이기에 주님의 몸에 난 상처는 희망의 샘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상처를 희망의 메시지로 바꾸는 존재의 연금술을 보여 주십니다. 그분의 상처를 본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자기들의 상처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몸에 새겨진 것이든, 영혼에 새겨진 것이든 우리의 실패와 고통의 흔적인 상처가 오히려 희망의 관문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불의의 사고로 전신에 화상을 입었던 이수진 씨가, 절망을 극복하고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희망의 전령이 되어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상처를 희망의 샘으로 바꾼 것입니다. 세상에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누구나 다 남에게 숨기고 싶은 내밀한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에 자신을 맡긴 사람들은,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에 안긴 이들은, 그 상처를 사랑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증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존재의 연금술이 아니겠습니까?


기분이 아니라 확신이 우리 삶의 토대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첫 열매라는 말은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부활의 생명을 내다보며 주님을 따라갑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낙심하지 않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숙명론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울적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세상일을 돌아보면 희망이 부질없어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생명을 기획하고 계십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봄의 사람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땅에 봄기운을 가져가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영어로 부활절을 뜻하는 'Easter'라는 단어는 동쪽을 뜻하는 'east'에서 왔습니다. 동쪽은 해가 떠오르는 쪽입니다. 부활의 생명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쁨을 선택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기분이 우리 행동의 토대가 되는 한 우리는 영적으로 깊은 곳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기분이 아니라 의와 사랑과 생명의 영속성에 대한 확신이 우리 삶의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무기력해진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그들을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그들이 할 일은 이제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미워하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서로를 돌보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호의가 싸늘한 거부에 부딪칠 때도 있고, 선한 노력이 아무런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에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이켜 희망의 샘이 된 예수님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새겨진 상처자국을 보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절망할 수 없습니다. 세월과 더불어 우리 몸과 마음에 그런 상처자국이 새겨진다 해도, 우리는 바울처럼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갈6:17)고 고백할 수 있을 겁니다. 이 곡우 절기에 은혜의 단비로 오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이 저와 여러분 속에, 그리고 흑암 가운데 있는 이 나라와 온갖 피조세계 위에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3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