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9. 하루를 충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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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90:7-17
설교일시 200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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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충만하게
시90:7-17
(2003/5/11)


흘러 넘치고 싶은 사랑

어버이주일인 오늘 세상에 있는 모든 어버이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실 수가 없어서 어머니를 만드셨다는 제목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의 사랑의 온전한 대행자라는 말일 거예요. 부모의 사랑 앞에서 죄인 아닌 자식은 없을 거예요. 어릴 때는 잘 모르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분들 생각에 가슴이 짠해지지요. 소설가인 이청준 선생이『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라는 동화를 쓴 것도 어쩌면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동화 속에 나오는 은지 할머니는 키가 아주 작아요. 은지는 집안에서 제일 어른 노릇하시는 할머니 키가 왜 그렇게 작은지 궁금했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지금 은지가 키가 자라는 것은 할머니께서 나눠주시는 나이를 먹고 있는 덕"이라고 가르쳐주셨어요. 은지는 할머니에게 매우 미안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는 자꾸 어린아이처럼 변하고 계셨어요. 말씀도 어린아이처럼 하시고, 같이 놀다가도 은지의 인형이나 장난감을 탐내어 억지 떼를 쓰시다가 엉엉 울기도 하셨어요. 밥을 달라고 보채기도 하셨어요. 끝내 할머니는 아주 어린아이처럼 되셔서 세상을 떠나셨어요. 슬퍼하는 은지를 위로하느라 엄마가 말해요.


"할머니의 마음속에 가득 찬 사랑 때문에 할머니는 계속 자신의 나이를 나눠주시고 지혜를 나눠주시며 자신은 대신 키와 몸집이 자꾸 작아져서 끝내는 어린 아기로 돌아가실 수밖에 없으시단다."


그 '사랑'이 뭐냐고 묻는 은지에게 이번에는 아버지가 대답해요.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그 나이와 함께 지혜가 쌓이는 것은 은지도 전에 들어서 아는 일이겠지. 그런데 지혜가 마음속에 가득 찬 어른이 되고 나면 그 지혜가 마음속에서 삭아서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 넘치고 싶은 사랑이 된단다. 사람들은 그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착하고 좋은 일을 하게 되는 것이고. 할머니께서 늘 가난한 사람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눠주시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시고, 아픈 사람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시는 것, 그 모두가 할머니 맘속에 가득한 사랑 때문에, 그 사랑이 넘쳐흘러서 하시는 일들이란다."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 넘치고 싶은 사랑이 되는 것이라네요. 옛 사람들은 그래서 '성인'이란 단어를 '이룰 成'과 '사람 人' 대신 '이룰 成'에 '어질 仁'을 써서 설명했나봐요. 그러니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란 말이지요. 이 말을 뒤집으면 사랑할 줄 모르고, 남에게 뭔가를 줄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 '미성년'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전심전력하여 배워야 하는 것이 곧 사랑이에요. 그래야 사람된 보람을 느낄 수 있어요.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모세는 이제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 온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자기가 살아온 날을 돌아봅니다. 세월의 온갖 풍상이 그의 뇌리 속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을 거예요. 자기가 걸어온 인생길이 마치 꿈결처럼 아련하기만 했겠지요. 세월의 덧없음이 그의 존재 전체를 사로잡았나봐요. 그래서 인생은 마치 아침에 돋는 풀 같아서,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이 되면 잘려서 그만 말라버리고 만다고 탄식하고 있어요. 살아온 날이 긴 것 같기는 한 데, 또한 돌아보니까 평생이 '숨 한번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에 지나지 않더라는 것이지요. 남들은 칠 팔십 년 살았다고, 장수했다고 부러워하지만 그 세월을 돌아보니까 단 두 마디만 남더랍니다. '수고'와 '슬픔'. 정말 그런 것인가요?


먼 곳을 바라보자

지난 주일 오후에 저는 효창교회에 다녀왔어요. 36년간 그 교회를 담임하셨던 김연기 목사님께서 은퇴하시고, 제 후배인 김정만 목사가 담임목사로 취임하는 자리였습니다. 늘 겸손하셨고,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셨던 김연기 목사님은 꽤 담담한 표정이셨어요. 여러 가지 순서가 지나가고, 마침내 목사님께서 고별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나오셨어요. 목사님은 미소 띤 얼굴로 잠시 회중들을 둘러보시고는, 아주 차분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그 동안 너그러운 사랑으로 당신과 함께 해주신 교우들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또 자신의 잘못 때문에 마음 아팠던 분들이 있다면 다 용서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리고는 목회자로 살아온 46년의 세월을 지켜준 노래가 있는데, 벗들과 함께 그 노래를 부르시고 싶다고 하셨어요. 박봉배 목사님과 서형선 목사님이 단상에 올라오셨고, 세 분은 "먼 곳을 바라보자"라는 노래를 부르셨어요. 괴로울 때, 답답할 때 눈앞의 현실에 매몰되지 말고, 먼 곳을 바라보자는 가사였는데, 테너 음성이 멋진 서형선 목사님은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인지 노래를 잘 부르시지 못했어요. 김연기 목사님께서는 끝까지 편안한 베이스 음색으로 담담하게 찬양을 하셨어요. 참 좋았어요. 그 노래는 오랜 세월 동안 그 어른들을 지켜온 생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어요. 그분들이 바라보셨던 '먼 곳', 그곳은 바로 '주님'이실 거예요. 물론 주님은 누구보다도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시지만, 세상 걱정 근심에 가린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으시지요. 어쩌면 '먼 곳'은 거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를 뜻하는 말일 거예요. 저는 그 노인 목사님들의 아름다운 퇴장 앞에서 마음으로 많은 박수를 보냈어요. 쉽지 않은 세월을 인내하며 달려온 생이었기에 더욱 존경스럽더군요.

수고와 슬픔에 가득 찬 생, 이게 우리 생이지요. 평면적으로만 보면 그래요. 어른들께 그 동안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드리면 한숨부터 한 바탕 쏟아놓고는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옛 일을 회상하시지요. 기가 막힌 사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물론 인생은 수고와 슬픔만 있는 건 아닐 거예요. 기쁨도 감격도 간간히 우리를 찾아와요. 하지만 하나님은 수고와 슬픔이라는 재료를 가지고서도 곱디고운 인생의 천을 짜실 수 있어요. 솜씨 없는 목수는 연장을 탓한다지만, 하나님은 참 솜씨 좋은 예술가이시지요. 그 험한 십자가를 새 생명의 문으로 바꾸신 것만 봐도 그래요. 박해자 사울을 전도자 바울로 변화시키시고, 방황하던 어거스틴을 성인으로 변화시키고, 망나니 프란치스꼬를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진 성인으로 바꾸셨어요. 그뿐인가요? 하나님은 힘없는 이들을 택하셔서 힘있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또 가난한 이들을 택하셔서 부유한 이들을 부끄럽게 하셔요.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8:28)고 말했나봐요.


선물로 받은 '오늘'

이걸 우리가 믿는다면 남은 세월이 얼마이든 더 이상 원망이나 칭얼거림으로 시간을 보내지 말아야해요. 하루하루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가실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해요. 때로는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조차도 우리를 하나님께 붙들어매는 소중한 끈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루를 영원처럼 살아야 해요.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돕는 일은 마음에 떠오른 그 순간에 해야지,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할 수 없게 돼요. 그러면 마음에 찜찜함이 남게 되고, 나중에 그를 대하더라도 서먹서먹해지기 쉬워요. 그런 마음을 우리 속에서 불러일으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셔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내면의 소리에 순간마다 응답하며 살아야 해요.

하루살이는 시간의 짧음을 탓하지 않지요. 그에게는 그 하루가 한 생이니까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이들은 하루하루를 아주 소중하게 여기잖아요? 어떤 일을 하든 '마음'을 담아서 하지요. 누구를 바라보거나, 어떤 풍경을 바라볼 때, 그분들의 눈길은 어루만지듯 그 대상을 바라보지요. 그런 이들이 어떻게 함부로 시간을 낭비하겠어요? 아직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니까 우리가 함부로 살지요.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어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간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잊지 말게 해달라는 것이지요. 모세는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아 알았기에, 그 至福의 기쁨 속에서 남은 생을 마무리하고 싶어해요. 그의 또 다른 소망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자기들을 통해 나타나고, 주님의 영광이 그의 자손들에도 나타나는 것이었어요. 이것은 한 민족의 어버이 된 이의 당연한 소망일 겁니다. 저는 종종 믿음이란 질척거리는 일상 속에 하늘의 빛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미움의 땅에 사랑을 가져가고, 탐욕이 지배하는 땅에 섬김과 나눔을 가져가는 것, 눈물의 골짜기에 생명의 기쁨을 가져가는 것, 이게 주님이 우리를 불러 맡기신 일이에요. 우리가 그런 삶을 택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을 헛되이 하지 않는 철든 자식이 될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오늘'을 선물로 주셨어요. '내일'로 이어지는 '오늘'이 아름다워야 우리 삶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의 하루하루가 보람과 사랑의 빛으로 충만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3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