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5. 소중한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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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신26:16-19
설교일시 200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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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내 인생
신 26:16-19
(2003/6/22)


자만심과 자학 사이

병원에 가보면 세상에 안 아픈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꼭 몸이 아프지 않다 해도, '나는 건강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건강하다는 것은 몸의 각 부분들이, 그리고 마음이 균형을 잃지 않았다는 말인데 완벽한 균형은 없습니다. 그리스말로 '병'은 '균형상실' 혹은 '치우침'이라는 뜻을 담고 있답니다. 몸이라는 유기체, 마음이라는 유기체의 균형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어느 부분에서는 넘치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모자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인가요? 우리는 자만심과 자학 사이를 오갑니다. 어떤 때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콧노래를 부르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자만심도 병이지만 자학도 병입니다.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했으면서도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갈6:3)을 바울은 자기 기만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고 귀한 손님으로 맞아주시는데(시23:5)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면서 함부로 사는 것은 죄입니다.

남에 대한 실망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입니다. 그 결과가 자못 파괴적일 수 있거든요. 自暴自棄는 자기 스스로에게 가하는 폭력이고, 자기를 함부로 내던져버리는 행위입니다. 사람들이 자포자기에 빠지는 것은 대개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는 자기의 유한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이런 이들의 눈은 항상 다른 이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남과 자기를 비교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의 시선은 늘 자기보다 형편이 나은 사람을 바라보지요. 그러니 늘 불만족이지요. 둘째로 사람들은 자기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포자기에 빠집니다. 뭔가를 멋지게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자기 속에 있는 가능성을 보고, 또 그것을 갈고 닦는 일에는 소홀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손 하나 까딱 않고 포부만 키우다가 죽는다"(잠21:25)지요?


대체할 수 없는 존재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남을 부러워하느라 정신이 팔려 자기의 소중한 삶을 허비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영혼이 못생긴 사람들은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이런대요. '내 얼굴이 장동건처럼만 생겼어도…', '내 키가 10㎝만 컸어도…',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래서 어쨌단 말이에요? 교회 살피 꽃밭에 하얀 접시꽃이 피었어요. 그리고 키 작은 채송화도 예쁘게 피었습니다. 봄꽃이 진 자리에 피어난 그 여름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시원해져요. 채송화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접시꽃은 백합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본성에 따라 피어날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닮으려다보니 우리는 쉽게 지치고 실망하게 됩니다. 돈과 명예와 쾌락과 힘을 얻기 위해 쉴새 없이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 내면의 공허함을 느끼게 되지요. 그러면 자기 자신이 낯설어지고, 자기와 대면하는 시간을 피하고 싶어서 사람들은 욕망이 잡아끄는 대로 이끌립니다. 그러면 내면의 소리는 점점 들려오지 않고, 하나님의 질서에서 차츰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이게 타락이에요. 잘 산다고 하는 것은 남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답게 사는 겁니다. 봉화에 사시는 전우익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어요.


"동리에 개가 몇 마리 있는데 한 놈은 지나가는 사람 보는 족족 짖어대요. 다른 한 놈께선 하루 종일 지그시 눈감으시고 편히 엎드려 있어요. 가는가 보다 오는가 보다, 나하고 무슨 상관이랴. 난 이렇게 게으름 피우며 살란다 하는 툽니다. 앞의 놈같이 살면 암 걸리기 십상이구요. 뒷놈같이 살고 싶어요."(『사람이 뭔데』중에서)


앞의 놈처럼 사시겠어요, 뒷놈같이 사시겠어요? 유대인 철학자인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은 우리는 '복사판'이 아니라 '원판'으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뭔가 눈이 떠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라고 하는 존재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어요.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어요. 이 말은 우리들 각자는 이 세상에 나눠줄 수 있는 고유한 선물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에요. 내가 아니면 줄 수 없는 선물 말입니다. 석가모니는 태어나면서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지요? 그 말은 자기가 제일 잘났다는 말이 아니라, 태어난 생명의 존귀함을 말하는 걸 거예요. 지금 우리 사는 꼴을 보면 기가 막히지요? 하나님이 우리들 각자에게 주신 밑천을 다 까먹고 껍데기만 남은 것 같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이 있어요. 비록 숨겨져 있다 해도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존경해야 해요. 제 잘난 맛에 살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 속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실패할 수 없고 낙심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믿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여쭙고 사는데 어떻게 실패할 수 있겠습니까?


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살기 위해서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없으면 자꾸 여기저기에 매이게 되니까요. 그런데 그 힘은 어디에서 생길까요? 오늘 본문은 그 답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하시나니 그
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16)


주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 곧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분이 하라시는 일은 별로 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사실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거 아닐까요? 할끔할끔 눈치를 보면서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그는 참으로 믿는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올인' 하라는 겁니다. 전적으로 자기를 그분의 마음에 던지라는 겁니다. 그래야 우리 속에 다소라도 남아있는 보화들이 역사의 용광로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초본 식물인 대나무가 하늘 높이 오를 수 있는 것은 마디가 있기에 가능하다지요? 영적인 게으름뱅이에다가 아담의 후예인 우리가 더할 수 없이 지극한 것에 가닿으려면 하나님의 뜻에 대해 '아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아멘' 하기 위해서는 조용히 앉아 그분의 마음의 바다에 우리를 던져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던가요? 모처럼 기도를 하려고 앉으면 온갖 잡념이 기다렸다는 듯이 떠오릅니다. 갑자기 처리하지 못한 일이 떠오르고, 해야 할 일이 떠오르고,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급기야는 피곤기가 몰려들어 기도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기도를 포기하지는 마십시오.

기도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몸이 편안해야 합니다. 뭔가를 향해 달려가는 데 익숙해진 몸은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뭔가를 보거나 듣거나 만지거나 말하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불안해집니다. 이게 우리 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요히 앉아서 자기 몸을 마음으로 쓰다듬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참 수고했다', '이제는 긴장을 좀 풀어라' 하면서 몸과 대화를 하다보면 몸과 마음이 다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속에 스며드는 순간입니다. 이럴 때면 '예수님' 하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훌륭한 조력자가 옆에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께 우리 사정을 내놓고 '어떻게 할까요?' 하고 여쭈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바를 우리가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받들면,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은 '칭찬과 명예와 영광'을 덤으로 얻게 됩니다.

하지만 덤으로 얻는 것보다는 우리가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내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의 선물로 살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지 않습니까? 여러분, 남이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독자적인 생명을 살지 못함을 염려하십시오. 물론 오직 나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인지는 스스로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주님께 들어바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실 것입니다. 이 꿈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생명의 기운에 넘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3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