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47. 아침을 기다리며
설교자 김기석
본문 시30:4-12
설교일시 200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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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기다리며
시30:4-12
(2003/11/23)

살다보면 몸이 불편할 때도 있고,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불편해지면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고통이 지속되면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게 어쩔 수 없는 사람의 한계인가 봅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처럼 개운한 몸을 가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욕심일 뿐입니다. 몸이 개운하지 않으면 마음도 덩달아 어두워집니다. 그럴 때면 세상을 너그럽게 보지 못합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그러니까 마음이 어두운 사람입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생의 위기를 경험합니다. 그 위기가 근본적일 때 우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 체험 앞에서 사람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쉽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살아갈 희망조차 스러져갈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런 탄식에는 땅에는 공평함이 없어도 하늘은 공평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땅을 딛고 살고는 있지만, 실상 우리 삶의 토대는 하늘, 곧 하나님이심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노염과 울음의 현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는 죽음의 문턱에서 구원받은 사람의 감사 찬양입니다. 그는 생명을 위협하는 병에 걸렸다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산 자의 땅에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사소한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아도 기쁜 데, 생명을 되찾은 감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사람은 대개 자기가 일상적으로 누리고 사는 것들에 대해서 고마운 생각을 갖지 않습니다. 그것은 늘 그곳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숨을 쉬면서 공기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고, 수도꼭지를 돌리면 쏟아지는 물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 섰던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당연하지 않습니다. 모든 게 은총이고 선물입니다. 시인의 고백은 그래서 더욱 절실합니다.

내가 편히 지낼 때에는 "이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겠지" 하였지만, 아,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님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 나는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6-7, 표준새번역)

가만히 우리 삶을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저마다 제 잘난 맛에 살지만 사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너' 없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과 대기와 이웃들이 없는 '나'는 생각할 수조차 없습니다. 생명은 서로를 기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댐의 궁극적인 근거가 되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을 그렇게 인식한 것은 하나님의 외면하심을 겪은 후의 일입니다. 그는 언제까지라도 평안하리라 생각하던 자기 삶이 토대로부터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였을 때, 비로소 자기의 평안한 삶이 하나님의 돌보심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오늘의 현실을 돌아볼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계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기대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서로를 마치 원수인양 대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착잡합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앞두고 실의에 빠진 농민들의 시위는 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부안 군민들과 경찰의 충돌을 보면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습니다. 이주 노동자 추방 정책 때문에 하늘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가난한 나라 출신의 젊은이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지금 우리는 신뢰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근본적인 위기입니다. 구석구석에 울음이 깃든 땅에 살기에 우리 삶에는 평안함이 없습니다.

● 희망은 하나님께 있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요?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물음은 우리를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고치는 것처럼, 극지를 탐험하는 탐험가들이 때때로 멈추어 서서 지리측정시스템(GPS)를 통해 자기 위치를 확인하곤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 앞에서 우리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엘 살바도르의 순교자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초월이란 사방이 막혀 있을 때 하늘을 보는 것'이라 했습니다. 신뢰상실과 사회적 갈등이 노골적인 폭력으로 드러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소란을 그치고 조용히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만이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길입니다. 서로가 마음을 열고 易地思之의 심정으로 대화를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오늘의 시인처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영원하니,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5, 표준새번역)

우리가 어둠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믿기 때문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사랑과 진실이 그지없으신 하나님'(시86:15)이 우리 희망의 근거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오실 메시야가 하실 일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는 해를 하늘 높이 뜨게 하셔서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눅1:79)

지금은 어둠이 지극한 것처럼 보여도 새벽이 밝아올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둠 속에서 아침을 내다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시간으로서의 아침은 우리가 애쓰지 않아도 밝아오지만, 역사로서의 아침은 우리의 노력을 요구합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새 날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얼마 전에 <지리산생명평화결사>가 조직되었습니다. 그 결사에 동참하는 이들은 생활 속에서 7가지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저는 이것을 분열과 갈등의 땅에 심는 하늘의 씨앗이라고 생각하여 소개합니다.

첫째,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겠습니다.
둘째, 모든 생명을 우애로 감싸겠습니다.
셋째, 대화와 경청의 자세를 갖겠습니다.
넷째, 나눔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청빈하게 살겠습니다.
다섯째, 모든 생명의 터전을 보존하겠습니다.
여섯째,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한 길에 앞서겠습니다.
일곱째, 끊임없이 깨어 공부하겠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노력 없이 역사의 아침은 오지 않습니다. "평화에 이르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곧 길입니다."(There is no way to peace. Peace is the way.)

●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죽음의 위기를 벗어난 시인은 이제 자기가 살아있는 한 하나님의 구원과 진리를 세상에 널리 알리며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까닭은 하나님이 인생행로를 편안하게 해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험한 일이 다가와도 포기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힘과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자기의 능력과 의지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순간마다 다가오는 하나님의 은총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정현종은 그의 시 <사람은 언제 아름다운가>에서 "자기를 벗어날 때처럼/사람이 아름다운 때는 없다"고 노래합니다. 자기로부터 벗어난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질긴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한 사람은 햇빛과 바람, 건강과 음식, 이웃과 친구에 대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자기로부터 벗어난 사람이라야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고, 역사의 아침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가 자기를 철저히 비워 하나님의 뜻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역사의 아침을 기다립니다. 지금 우리는 혼란 가운데 있지만 어둠을 향해 '빛이 생겨라' 하심으로 빛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모실 때 우리는 돋는 해 아침 빛 같은 주님의 은총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꿔 주시고,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으로 갈아 입히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불신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도 이 믿음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희망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습니다. 인도에는 "어둠을 욕하기보다는 촛불 한 자루를 켜는 게 더 낫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소박한 실천입니다.

지금 갈등 속에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도 아파하실 것입니다. 그 아픔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사랑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생명을 우애로 감싸안으려는 마음이 점점 커질 때 역사의 아침은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애쓸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말입니다. 이런 도우심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은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으로 갈아 입혀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아침을 기다리며, 아침을 살아가는 생명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3년 11월 23일 13시 48분 13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