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51. 강보에 싸인 평화
설교자 김기석
본문 눅2:8-14
설교일시 2003/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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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에 싸인 평화
눅2:8-14
(2003/12/25, 성탄절)

● 마지막 꽃잎 한 장이 열리는 시간

죽음의 그늘에 앉은 이들에게 구원의 빛으로 오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 성탄의 기쁜 소식이 우리의 음습하고 어두운 마음을 환히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성탄절이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세속의 명절이 된 것 같습니다만, 주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세상일로 갈래갈래 찢긴 마음의 흥분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성탄절 아침 저는 이호우님의 <개화開花>라는 시조 한 수를 떠올려 봅니다.

꽃이 피네, 한 잎 두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시인은 세상의 이면과 내통하는 존재라지요? 그들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시인이 되라는 말씀인 것 같기도 합니다. 시인은 지금 꽃봉오리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촛대처럼 안으로 꽃을 머금고 있던 꽃봉오리에서 꽃잎이 하나 수줍게 고개를 듭니다. 잠시 후 또 다른 꽃잎도 주저주저하며 고개를 듭니다. 이 놀라운 개화의 순간은 시인에게 하늘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시인은 경외심에 사로잡혀 꽃의 기적을 바라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한 잎입니다. 그 한 잎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의 설렘을 시인은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라 표현합니다. 계시처럼 열릴 개화의 시간을 기다리며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입니다. 시인도 따라 눈을 감습니다. 그 순간은 거룩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서 마지막 꽃 잎 한 장이 열리는 그 거룩한 시간은 바로 성탄절입니다.

● 절망의 땅에 들려온 평화의 노래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천하를 호령하던 때,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던 때, 세계사의 변방인 유대의 시골 마을 베들레헴에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로마의 평화라는 허구의 신화가 사람들의 의식과 삶을 옭죄던 때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혹한 세금에 살림이 거덜났고, 새로운 세상의 꿈은 꺼질듯 가물거리고 있었습니다. 삶에 여백이 없으니 민심은 흉흉해지고, 인심은 각박해졌습니다. 사람들은 한숨을 물고 사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유대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마 새벽이 밝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자기들 속에 깃든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순간 그들은 이전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신비한 빛이 자기들을 감싸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꿈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들은 신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 들판에 엎드렸을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귀로 들었는지 마음으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부드러운 소리를 들었습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2:10-11)

하나님의 사자들이 온 것은 절망의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여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구주 탄생의 소식이 '모든'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아님을 잘 압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만족 속에 사는 사람, 하나님을 등지고 이생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구주 탄생의 소식은 재난입니다.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당황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마2:3). 그들은 기득권자들입니다. 그렇기에 기존질서를 뒤흔들어놓을 수도 있는 메시야의 탄생을 반기지 않습니다. 반기든 반기지 않든 하나님은 당신의 시간에 구원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 강보와 구유

그런데 태어난 메시야를 알아볼 수 있는 징표 두 가지가 참 놀랍습니다. '강보'와 '구유'.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두 이미지가 갖는 혁명적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보십시오. 온 백성에게 평화와 구원을 가져오실 메시야가 강보襁褓에 싸여 있습니다. 갓난아기니까 당연하지, 하고 생각하시는 분은 설마 안 계시겠지요?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은 연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온 세상의 구원자가 누군가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이 놀라운 역설이 저는 사무치게 좋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주님이 우리의 문제를 들어주시고, 해결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강보에 싸인 주님은 우리에게 '나는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우리에게 완제품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산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항상 가능성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염원하는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 오시는 주님은 지금 우리의 돌봄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어 당신의 일에 동참하게 하십니다. 저는 이것을 큰 은총으로 받아들입니다. 세상 도처에서 날마다 전쟁과 분열의 소식이 들려와도 이제 낙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강보에 싸인 평화를, 그리고 생명을,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소중히 보듬어 안으려 합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다"고 외쳤습니다. 강보에 싸인 아기는 바로 우리의 꿈이기도 합니다. 평화와 생명에 수의壽衣를 입히려는 헤롯의 무리들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그들은 강보에 싸인 아기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아기를 알아보는 두 번째 표징은 '구유'입니다. '구유'는 가장 비천한 삶의 자리를 상징합니다. 축제에 들뜬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도 않는 구석진 자리, 바로 그곳이야말로 우리 주님을 만날 자리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분과 만나기 위해 찾아가야 할 구유는 어디일까요? 그것은 우리들 각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삶의 희망을 잃고 자식을 버리는 비정한 부모들의 마음 자리, 카드 빚에 몰려 온 가족이 죽음을 선택하는 절망의 자리, 찬바람 부는 거리에 내몰린 이주 노동자들의 마음 자리, 성한 이들조차 숨가쁘게 만드는 세상에서 저만치 뒤쳐진 채 살아가는 장애우들, 갈 곳 없는 노인들과 버림받은 어린이들이 서있는 삶의 자리, 바로 그곳이야말로 우리가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는 구유가 아닐까요? 그곳에서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는 어쩌면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곡일 겁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든 안 다니는 사람이든 이 곡을 좋아합니다. 멜로디의 서정성 때문인지 어린이들도 좋아합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고백이 말만이 아니라, '너'를 향한 우리 삶의 태도와 입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네편 내편을 갈라가면서 서있는 삶의 자리가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나도, 한 번만 이 노래의 첫 구절을 흥얼거려보십시오. 마음이 훨씬 자유로워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인종과 피부색,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우리가 서로를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로 대접할 때 강보에 싸여 있는 '평화'는 크게 자랄 것입니다.

● 나를 둘러 당신의 옷으로 삼으소서

꽃 한 송이의 피어남 속에서 우주적인 기쁨과 황홀을 경험한 시인의 마음으로 우리가 세상을 본다면, 우리는 삶이 제 아무리 힘겨워도 낙심할 수 없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탄절이 우리 모두의 거듭남의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 품에는 강보에 싸인 아기가 안겨 있습니다. 우리 속에 숨겨져 있는 가장 따뜻한 사랑으로 그 아기를 품어 안을 때, 우리는 하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추운 겨울, 인정이 메말라 더욱 추운 세상에 주님은 알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시인의 음성을 빌어 기도합니다.

나를 둘러 당신의 옷으로 삼으십시오
알몸으로 오시는 주여

우리들이 그분의 옷이 되려 할 때, 역사의 새 봄은 다가올 것입니다. 약한 듯 보이나 세상의 어떤 힘도 꺾을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분을 가슴에 모시고 살면 우리는 하늘의 힘으로 든든할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의 빛이 교우 여러분들과 여러분의 가정에 환히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3년 12월 25일 14시 38분 09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