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5. 죽어도 죽지 않는다
설교자 김기석
본문 롬4:17-25
설교일시 2004/4/11
오디오파일 s040411.mp3 [4424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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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죽지 않는다
롬4:17-25
(2004/4/11, 부활절)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이 이 예배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가슴마다 꽃처럼 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길고 긴 사순절 수난의 여정이 끝나고, 이제 우리는 부활의 빛을 가슴에 품고 기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 안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원수인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쏘는 가시'를 빼앗겼습니다.

부활절을 상징하는 꽃은 백합화입니다. 부활절 무렵에 피어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부활백합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빛나는 흰 색, 우아한 자태, 그리고 짙은 향기가 부활하신 주님의 이미지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이 자리에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서 동화 한 편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옹달샘 곁에 한 송이 백합이 있었지. 백합이 활짝 피면 작은 숲 속이 그 알싸한 향기로 가득 찼어.
세상에 누가 백합 향기를 싫어할까? 옹달샘은 백합이 피면, 은은하면서도 그윽한 향기에 취하여 바람이 없는 날에도 잔물결 지으며 일렁였지.
"백합아, 난 너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내 곁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단다."
"그건 나도 그래, 어쩌다가 너같이 맑고 다정스런 옹달샘 곁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난 네가 있어서 목마르지 않고 이렇게 언제나 행복하단다."
"난 네 향기가 참 좋아."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백합 향기를 사방에 흩뜨렸지.
"으흠! 향기는 한 곳에 모여 있는 게 아니야. 끝없이 흩어져야 해. 이 바람아줌마가 도와주마."
백합은 향기를 있는 대로 바람아줌마 날개에 실어 멀리 날려보냈어. 그러나 아무리 날려보내도 날려보내도 향기는 없어지지 않았지.
그렇지만 바람아줌마가 날려 버릴 수 없었던 백합 향기도 시간이라는 할아버지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어.
"백합아, 이제 때가 되었구나. 꽃잎은 시들고 향기는 사라져야 할 때가 되었다. 준비하렴."
백합은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시간 할아버지의 말을 들었지.
뚝.
뚝.
백합 꽃잎이 천사 눈물처럼 옹달샘 위에 떨어졌어.
옹달샘은 가슴이 아팠지.
"백합아, 이제 너랑 나랑은 이렇게 헤어지고 마는 거니?"
"헤어지다니? 우리가 어떻게 헤어질 수 있겠니?"
백합이 말했어. 그런데 그 소리가 옹달샘 저 밑바닥에서 들려왔지. 백합이 뿌리로 말을 한 거야.
"난 언제나 네 곁에 이렇게 있단다."
옹달샘은 백합의 하얀 실뿌리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지. 가슴이 울렁거려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멀리서 바라만 보던 백합꽃 향기를 가슴에 품게 되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니?
(이현주, 「꽃과 실뿌리」)

이 동화에 어떤 설명을 덧붙이는 것은 사족이 되겠지요? 뿌리가 살아있는 한 백합은 죽지 않습니다. 꽃잎이 하나둘 다 떨어져도 백합은 다시 살아납니다. 세상의 어둠은 우리 주님의 몸은 죽일 수 있었지만, 그분의 영은 죽일 수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속한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주님은 이 세상을 떠나심으로 더 풍성한 은혜로 우리 곁에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이라고 표현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확신을 가졌기에 믿음의 조상이라는 영예스러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가능성과 이해력을 의지해 살아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은 이미 죽은 것 같았던 아내의 몸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십자가와 무덤이 생명으로 통하는 문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십자가는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가없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세상에 머무시는 동안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나, 사람이 얼마나 고귀할 수 있나를 보여주셨던 예수님은 인간의 야수적인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실 수밖에 없었지만 그분의 죽음은 영원한 사라짐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이었습니다.

주님의 무덤은 새로운 생명을 품고 있는 흙과 같았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 비탄에 잠겨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은 무덤을 가로막고 있던 돌문이 이미 굴려진 것을 보았습니다. 산다는 게 힘겨워 절망의 무덤에 누워 계시지는 않습니까? '나는 어쩔 수 없어', '이 나라에는 소망이 없어' 하면서 탄식하고 계십니까? 힘을 내십시오. 돌문은 이미 굴려졌습니다. 절망은 죄입니다. 그것은 불신이고 교만입니다. 백합꽃 뿌리가 옹달샘에게 말했습니다. "난 언제나 네 곁에 이렇게 있단다." 이 소리가 들리십니까? 부활절 아침, 하늘의 빛이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 비쳐들고 있습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가슴을 여십시오. 그리고 부활의 빛을 한껏 받아들이십시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는 생명을 모신 사람들입니다.

이제 일어나 옹달샘이 백합화의 실뿌리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던 것처럼, 주님의 마음을 얼싸안으십시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우리가 흘러가는 곳마다 주님의 향기를 퍼뜨리며 사십시오. 추상적으로 믿지 말고, 몸으로 믿으십시오. 우리보다 앞서 가신 주님의 뒤를 따라 이 땅의 눈물과 아픔이 있는 곳으로 흘러가, 낙심한 영혼들을 일으킵시다. 갈팡질팡하는 이 사회를 일으키십시오. 이라크의 팔루자에서 일어난 학살에 저항하여 일어서는 민중들의 거대한 저항과 행진을 보면서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열림을 예감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천부의 인권과 생명은 세상의 어떤 세력도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시작된 청정한 생명의 새 바람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가슴에 모시고, 병들고 시들어버린 이 민족의 가슴에 생명의 불을 지피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4년 04월 11일 15시 39분 49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