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31. 기도는 새 삶의 입구
설교자 김기석
본문 마6:5-8
설교일시 200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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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새 삶의 입구
마6:5-8

● 경건의 꿈
저는 가끔 경건하다는 말이 자아내는 묘한 울림에 가슴이 설레곤 합니다. '경건'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깊이 삼가고 조심한다"입니다. 여기에는 공경의 대상이 있고, 그리고 그 대상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4:8)고 했습니다.

경건은 오늘을 가장 아름답게, 그리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생이 다하는 날까지 향하여 달려갈 목표입니다. 기왕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났으면 사람값은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삶은 세상의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규격화된 상품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하신 걸작품입니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애프터서비스를 해달라고 떼를 쓰기도 합니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사는 한 우리는 늘 행복의 저편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누가 잘 사는 사람입니까? 남보다 돈이 많고,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배분해주신 삶의 몫을 충실히 살아내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삶의 모습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내적인 삶의 특징은 동일합니다. 그는 공경하는 태도로 살아갑니다. 그의 내면에는 고요함이 있습니다. 아무도 하찮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 이를 만나면 사람들은 자기들이 존중받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는 삶이 하나님의 은총이요 선물임을 알기에 늘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또 그는 늘 감사하며 삽니다. 그에게는 바라고 원하는 것보다 고마움이 더 큽니다. 없는 것만을 헤아리지 않고, 있는 것을 헤아리는 일이 그에게는 더욱 익숙합니다. 등불을 밝힌 마차에 앉아 밤길을 가는 이를 미워하지도, 부러워하지도 않습니다. 등불이 없기에 누릴 수 있는 달빛과 별빛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것은 다 분에 넘칩니다. 저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싶어합니다. 물론 그것은 이웃을 복되게 하는 일로 나타납니다. 그분께로부터 받은 것을 돌려드리는 마음이 곧 감사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소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늘 부지런합니다. 영적인 게으름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해로운 쾌락을 멀리하고, 음식을 절제하고, 소유도 줄이면서 살아갑니다. 많은 소유는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부딪칠 때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 기도, 경건한 삶의 토대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토대는 기도입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속에 있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옵니다. 바탕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다른 이들의 활동과 업적에는 주목하지만, 그 활동이나 업적의 토대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올림픽에 나간 이들이 따는 메달의 빛깔에는 주목하지만, 그들이 흘려온 땀과 눈물에는 주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예수님 되게 한 것은 기도입니다. 분주함 가운데서도 한적한 곳을 찾아가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이야말로 우리 삶의 모범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적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것은 모두 기도의 골방에 이르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무뎌진 우리 영혼을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숫돌에 벼리는 일입니다. 기도는 무너진 우리 마음의 토대를 수리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영원에 비끌어매는 행위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평생 남의 장단에 춤추다 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렇기에 기도는 우리 생의 중추입니다. 진실한 기도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행위가 아닙니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채 화려하기만 한 기도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물 흐르듯 유창한 기도를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떠듬대더라도 진정이 담긴 기도는 하늘을 움직입니다. 늦게야 예수를 믿어 늘 감격에 겨워 사는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 밥상을 가지고 들어온 며느리가 "오늘은 아버님께서 식사기도를 해주세요" 하고 부탁했습니다. 손자들도 고사리 같은 손을 모으고 할아버지의 기도를 기다립니다. 혼자는 해보았지만, 사람들 앞에서 기도해 본적이 없는 할아버지는 식은땀만 흘렸습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하나님 만세!" 하더랍니다. 투박하지만 가장 진실한 기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도는 은밀해야 합니다. '골방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는 까닭은 그곳에서라야 아무의 눈길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골방에 들어가서도 자기의 'ego'를 의식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골방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자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살이를 잊고 오직 하나님과 하나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 자리가 곧 기도의 골방입니다.

기도는 중언부언하면 안 됩니다. 기도의 시간이 길어야 효과도 만점이라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답안이 길고 장황합니다. 핵심을 알 수 없으니까, 그물을 넓게 치는 것이지요. 어느 한 대목이라도 걸리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앞못보는 사람은 당신 앞에 왔을 때 주님은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간결하게 대답했습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이게 핵심입니다. 그 한마디면 됩니다. 그 속에 진정이 담겨있다면 말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많이 천박해졌습니다. 청원기도가 기도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청원기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중심은 청원이 아니라 감사여야 하고,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일치여야 합니다. 물론 구색을 갖추기 위해 감사도 드리고, 잘못을 뉘우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사치레이기 일쑤이고, 속셈은 청원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연락조차 없이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서 이야기를 동서남북으로 길게 돌리면, '아, 뭔가 부탁할 일이 있구나' 하고 짐작하는데, 대개 그 짐작은 틀리지 않습니다. 대개는 돈을 좀 보내달라는 것이지요.

문제는 사귐의 깊이입니다. 가끔 만나기는 해도 자기 말만 하고 금방 돌아서 버리던 사람이 느닷없이 친한 척 하면서 뭔가를 달라고 불쑥 목록을 내놓으면 속 좁은 저는 마음을 닫고 맙니다. 하나님은 속이 넓으시니까 다르실까요?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채워주시지만, 정말 주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으신 것은 당신 자신입니다.

● 담요와 보름달
한 스승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의 오두막집에 홀로 살고 있었습니다. 보름달이 뜬 어느 날 밤 한 도둑이 그의 오두막에 들어갔습니다. 스승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선사에게는 도둑이 가져갈 만한 것이라고는 담요 한 장밖에 없었고, 마침 그것을 자기 몸에 두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너무나 걱정이 되어서 그 담요를 문 옆에 걸어두고 구석으로 가서 몸을 숨겼습니다. 도둑은 방안을 둘러보았지만 어둠 때문에 그 담요를 볼 수 없었습니다. 도둑은 실망하고 방을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스승이 소리쳤습니다. "기다려요, 담요를 가져가시오. 대단히 미안하게 됐소. 이 추운 밤에 그렇게 먼길을 오셨는데 이 집에서 가져갈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말이오. 다음에 올 때는 미리 나에게 말해 주시오. 그러면 내가 가난하긴 하지만 무언가를 준비하겠소. 이번에는 누추하지만 거절하지 말고 그 담요를 가져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이오." 도둑은 이런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그는 얼른 담요를 집어들고 달아났습니다.
그날 밤 스승은 보름달이 뜬 창가에 앉아서 한 편의 시를 썼습니다. 그 시의 내용은 대강 이런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달이구나! 저 달을 그 도둑에게 주면 좋으련만!"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중얼거렸습니다. "그 불쌍한 사람은 그렇게도 먼 곳에서 왔는데!"

주님은 우리가 꼭 필요한 것을 청원하면 들어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좋은 것을 구하지 않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진실한 기도, 하나님과의 일치를 구하는 기도는 새로운 삶의 입구입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몇 해가 지나도록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자 주인은 그것을 찍어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포도원지기는 말미를 주시면 나무 주위를 파고 거름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열매를 맺지 않으면 그때 가서 찍어버려도 늦지 않다는 것입니다.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고 가지에 거름을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뿌리에 있는 것입니다. 근본이 바로 서야 열매도 거둘 수 있습니다. 기도는 근본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삼복 더위의 한복판입니다. '伏'은 엎드림입니다. 열매들은 뜨거운 햇볕을 받아 무르익어 가지만, 우리는 잘 엎드림으로 인생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 모두가 진실한 기도, 깊이 있는 기도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달빛을 도둑에게 주고 싶었던 그 스승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그 귀한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아, 아름다운 사람들로 거듭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2004년 08월 01일 17시 12분 18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