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45. 기쁨의 축제
설교자 김기석
본문 신16:13-15
설교일시 200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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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축제
신16:13-15
(2004/11/7, 추수감사절)

초막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큰 기쁨으로 즐기는 절기입니다. 올리브와 대추야자 포도 등의 수확을 마친 후에 맞이하는 명절이기에 사람들은 한껏 기뻐합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단순히 힘겨운 노동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이나, 많은 것을 거두어들였다는 데 대한 안도의 기쁨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초막절기가 대속죄일(Yom Kippur)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말 성경이 7월로 옮기고 있는 티쉬리(tishri) 달은 우리로 치면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 사이가 됩니다. 티쉬리 달 10일은 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대속죄일입니다. 이 날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중재기도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티쉬리 달의 초반은 하나님께 철저히 자기 잘못을 통회하고 자복하는 기간이고, 10일은 죄를 용서함 받은 것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이런 욤 키푸르의 기쁨은 그로부터 닷새 후에 시작되는 초막절 축제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초막절의 기쁨은 하나님께 용서받고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을걷이를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의 심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초막절 명절은 칠일 동안 계속되었는데 그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이 꼭 지켜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 노동 금지
첫째, 노동 금지입니다. 레위기는 초막절기를 지키라고 하면서 그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23:35, 36)고 말하고 있지만, 신명기 본문은 이것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宴樂하라"(16:14). 함께 '연락하라'는 말은 함께 즐거워하라는 말입니다. 축제가 축제가 되려면 소외되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부자와 주인은 즐기는데, 가난한 사람과 노예는 죽도록 일한다면 그것은 진짜 축제일 수 없습니다. 옛날 우리의 잔치 마당에는 각설이들도 손님이어서 한 상을 제대로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잘산다는 것을 너무 물질적인 면에만 국한하여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잘 사는 것은 이웃과 함께 걸어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고마운 줄 알아야 사람입니다. 농사도 사람의 힘만으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 흙 속의 미생물도 있어야 하고, 햇빛과 비와 바람도 있어야 합니다. 생명은 나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늘 우리는 빚진 자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과 자연을 대해야 합니다. 노동의 금지는 바로 우리 생명이 그런 그물망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돌아보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 온전히 즐거워함
둘째, 온전히 즐거워해야 합니다. 영어 성경을 보았더니 본문의 14절을 이렇게 옮겼습니다. "You must rejoice at your feast." 즐거워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닙니다.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것은 의무입니다. 좀 억지스럽지요? 즐거워해야 할 일이 있어야 즐거워하지요. 살림살이도 어렵고, 정치는 우울하고,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즐거워하랍니다. 온전한 즐거움은 어디서 옵니까? 먼저 그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옵니다.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지금까지 우리 삶을 이끌어오신 하나님의 도우심과 돌보심을 함께 기억할 때 우리는 기쁨을 맛봅니다. 하지만 온전한 즐거움은 과거로부터 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래로부터도 옵니다. 지금의 현실은 어렵더라도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하라."(15)

물론 이 본문은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을 지시하는 내용이기에 미래형 시제이겠습니다만, 저는 '복 주실 것을 인하여'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작정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이 아니라, 철두철미한 약속이고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 초막 생활
셋째, 초막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초막절이 되면 집집마다 초막을 만들고 그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닥에 나무판자를 깔고 도금양 가지와 버드나무 가지,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엉성한 초막을 만듭니다. 규정에 보면 안에서 별빛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잡니다. 현대식 가옥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왜 이런 불편을 사서 하는 것일까요? 물론 종교적인 의미는 그들이 애굽을 탈출해 나와서 가나안에 이르는 40년 동안 초막에서 지냈던 것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는 재미있는 캠프 경험일지 모르겠지만, 어른들에게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인들은 편리함과 사치함에 중독된 채 살아갑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중독입니다. 그래서 불편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더 많이', '더 편리하게'가 우리의 생활 철학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년 중 한 주일을 초막에서 삽니다. 그것은 단순하고 소박한 삶에로의 귀향이 아닐까요?

● 말씀 읽기
넷째, 말씀 읽기를 시작합니다. 초막절이 끝난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심하트 토라(Simchat Torah)라는 날입니다. 이 말은 '토라의 기쁨'이라는 뜻인데, 이 날은 절기의 초점이 자연에서 율법으로 옮겨가는 날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기 전까지 농한기 동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성지 순례 기간 중에 이스라엘에 입국한 날이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차를 탔기에 몹시 피곤한 상태여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 데, 건너편 호텔 마당이 무척 시끄러웠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틀어놓고 둥그런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회당에 가서 모세 오경 두루마리를 궤에서 꺼내 들고 회당 주변을 행진하다가 축제를 즐기기 위해 그곳에 왔던 것입니다. 그들의 축제는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읽기 시작한다는 기쁨이 그렇게도 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소리 때문에 짜증이 났지만 말입니다. 우리도 이 추수감사절을 계기로 해서 성경 읽기에 공을 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내년 추수감사절에는 우리 모두 성경을 완독한 것을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삶이 아무리 힘겨워도 생은 계속됩니다. 그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살아온 날에도 감사해야 하지만, 살아갈 날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흐리고 어둔 날에도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복을 내리십니다. 오늘을 계기로 우리 삶이 허영의 옷을 벗고 단순하고 소박해지기를 바랍니다. 이 추수감사절에 교우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가 가득 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4년 11월 07일 18시 37분 04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