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47. 빛을 향해 고개를 들라
설교자 김기석
본문 엡5:8-14
설교일시 200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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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향해 고개를 들라
엡5:8-14
(2004/11/21)

● 아름다운 변화
고향에 내려갔다가 38년만에 초등학교 동창생들을 만났습니다. 둘은 장로가 되어 고향 교회를 섬기고 있었고, 하나는 서울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했습니다. 만남의 세월보다 헤어짐의 시간이 더 길었지만 그들은 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만나지 못한 그 세월 동안 시간은 각자의 얼굴에 자신의 흔적을 새겨놓았더군요. 헤라클레이토스라는 고대 철학자는 "우리는 두 번 다시 같은 물결을 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새로운 물결이 흐르게 마련이고, 우리들 자신도 순간마다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인간 존재는 인간 되어감(Mensch-sein ist Mensch-werden)"이라는 말도 아마 그런 뜻일 겁니다. 제 친구들과 저와의 만남도 그렇습니다. 38년의 세월을 괄호 속에 넣고 보니 10여 세의 소년이 나이 쉰을 바라보는 중늙은이가 되었습니다.

무릇 살아있는 것은 변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변화는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왕 변하는 것이 생명이라면 좋은 변화의 과정 위에 서서 살면 좋겠습니다. 편협하고 이기적이던 사람이 너그럽고 남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바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음씀이 인색하던 사람이 나눔의 기쁨을 아는 사람으로 바뀐다면 그 또한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교활하고 사악하던 사람이 정직하고 정 깊은 사람으로 바뀐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요? 성도의 삶은 바로 이러해야 합니다. 에베소서는 성도의 마땅한 변화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8).

'전에'는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빛으로 살고 계십니까? 이런 질문은 우리를 좀 불편하게 만드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어둠 가운데서 살고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아니, 어떻게 해야 빛으로 살 수 있을까요? 성경은 아주 간단하게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너희가……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자신을 아무리 찬찬히 둘러보아도 우리에게는 빛이 없습니다. 아주 이따금 빛살이 우리 속에 비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우리 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등은 전원에 연결되지 않으면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예수와 깊이 연결되지 않는 한 우리 삶은 어둠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의 혼에 지피지 않고는 우리는 어둠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 속에 흐르지 않는 한, 그분의 눈물이 우리 눈에 있지 않는 한 우리는 빛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속에는 이미 마르지 않는 주님의 피와 눈물이 있습니다. 세상일에 지쳐 뜨거운 피가 차가워지고, 눈물샘이 마르긴 했지만 주님은 분명 우리 속에 계십니다.

●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삶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정체성을 바로 하는 것입니다. 타락이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가 죄의 종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세상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쥐엄나무' 열매를 먹으며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남보다 좀 덜 먹으면 어떻습니까? 남보다 좀 가난하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얼이 '살았는가 죽었는가'입니다. 자존심을 좀 되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빛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빛의 열매를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착함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이면 음습한 우리의 욕망은 힘을 잃게 되고, 우리 속에 있던 가시는 스러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합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사람들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의로움입니다. 하늘의 빛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의 우선적인 관심은 이해타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그의 삶을 불편하게 하게 하거나,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왕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습니다. 정도를 걷습니다.
셋째는 진실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안에 있는 모순되고 거짓된 것들을 말끔히 걷어낸 사람이라야 진실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인류의 첫 사람들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도무지 숨길 것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의미에서 진실한 분이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가 기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 노래도 있잖아요? "나는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이쯤 되어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안 읽던 책도 읽고, 정성껏 밥도 짓고, 청소도 하고….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삶 속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한번이라도 묻는다면 우리 삶은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 어둠을 어둠으로 드러내라
칠흑같이 어둔 방이라도 불을 밝히면 어둠은 물러가게 마련입니다. 윤동주는 <초 한대>라는 시에서 촛불을 밝힌 자기의 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나의 방'. 믿는 이들은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는 요구 앞에 서있습니다. 부정한 재물이나 뇌물을 받지 말고, 학연·지연·혈연 등 연고에 따라서 판단하지 말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적당히 타협하지 말고, 세상이 왜 이 모양이지 하면서 외면하지 말고, 어둠을 어둠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건 'trouble-maker'가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사실 세상이 제멋대로인 것은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일 겁니다. 이건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쾌해하면서도 어둠의 일에 눈을 감고 맙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롯의 잘못을 지적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잘못된 일을 지적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당장 행동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지적을 받고 나면 똑같은 행동을 아무런 가책 없이 반복하기는 어렵습니다. 미약하지만 이게 바로 변화의 시작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누군가의 어둠의 행실을 폭로하는 것은 나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그에게 망신을 주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둠의 행실을 폭로하는 빛은 신문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쉬여서는 안 됩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의 빛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의 태도 때문에 마음이 더욱 닫히는 것을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13)
And when all things are brought out to the light, then their true nature is clearly revealed.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뒤뜰에서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베드로를 주님은 조용히 돌아보셨습니다(눅22:61). 그 눈빛은 그의 배신을 책망하는 눈빛이 아니라, 그의 연약함을 안타까워하는 사랑의 눈빛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서는 사람은 누구든지 한사코 가리고 싶었던 자기의 허물을 보게 됩니다. 누추하고, 부끄럽고, 너절한 자기의 참상을 보기에 그들은 울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 울음이 새로운 삶의 단초입니다.

● 깨어나십시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14)
Wake up from your sleep, rise from the dead, and Christ will shine on you.

이미 아침이 밝았습니다.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십시오. 나른하고 게으른 영적 나태 속에 더 이상 머물지 마십시오. 우리 옷자락을 붙들고 조금만 더 이 들큼한 잠을 즐기자는 세상의 유혹을 떨쳐버리십시오. 창문을 여십시오. 주님의 빛이 우리에게 비추고 있습니다. 빛을 향해 고개를 드십시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로 인해 밝아질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소망이고 보람입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4년 12월 12일 16시 32분 5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