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53. 괜찮습니다
설교자 김기석
본문 시94:16-19
설교일시 2004/12/31
오디오파일 s041231송구영신.mp3 [5547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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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시94:16-19
(2004/12/31, 송구영신예배)

● 생은 계속되어야 한다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살아온 날을 돌아보아야 할 시간이지만 우리는 저 인도양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죽거나 다친 수많은 사람들을 인해서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을 접하면서 "어찌하여 그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이런 비극이 빚어지는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 참극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의 이웃이 됨으로 자기를 실현해갑니다. 빚어진 비극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들이 겪는 아픔을 다소나마 위로하고 넘어진 그들을 붙들어 일으킬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일에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일년 동안 사는 게 참 힘드셨지요? 기쁘고 신명난 일보다는 우울하고 맥빠지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가고, 신용불량자도 늘어났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살기 힘들다'고들 말합니다. 또 실제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물경제의 어려움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들 마음에 패배주의 혹은 무력감의 망령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문인가요? 올해는 광고에 등장하는 몇 가지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낙심하여 어깨를 늘어뜨린 채 걷고 있는 벗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그 앞에 썩 나서서 최민식이 부른 노래 기억하시지요? "거치른 벌판으로 달려가자 희망의 태양을 마시자." 그리고는 친구의 어깨를 감싸안습니다. 이 장면은 금년에 제가 본 영상 중 가장 진한 페이소스를 남긴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송혜교와 함께 부르는 응원가도 있습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또 기운이 빠져 터덜터덜 걸어가는 남편 옆에서 짐짓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아내는 만화영화 <캔디>의 주제가를 부릅니다. "외로워도 슬퍼도∼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홍승우 화백은 이 노래를 패러디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울고 싶은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외롭고∼ 슬프면∼나는 막 울어∼♬ 참는데도 한계가 있지 뭘 더 또 참아∼♬". 울 땐 울더라도 눈물을 닦고 일어서서 우리는 걸어가야 합니다. 어쨌든 생은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지관순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파주 문산여고 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이 학생은 지난 11월 7일 한국방송의 <도전 골든벨>에서 골든벨을 울렸습니다. 지관순 학생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지만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검정고시로 중학교에 입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저녁이면 지병과 장애를 지닌 부모님과 함께 군부대 자투리땅을 빌려 오리를 키웠습니다. 그런 사연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그를 역경을 극복한 소녀라고 추켜세웠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지관순 양은 "나는 가엽지도 대견하지도 않은 평범한 학생"이라며 "아직 역경을 경험한 적이 없고, 앞으로 극복해야 할 일이 더 많이 남았다"고 말합니다. 지관순 양의 말은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비명을 지르는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제가 힘들게 살아왔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꿋꿋하게 살 수 있었고요.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저를 '힘들게 살아온 소녀'라고 말하면 저 자신마저 그 말을 믿어버릴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씩씩하게 살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서 두려워요."

●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지관순 학생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와도 그것을 자기 인생의 최악의 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지간한 사람들 같으며 엄살을 할만도 한 상황이지만 그는 씩씩하게 자기의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울고 짠다고 형편이 달라질 것이 아니라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것입니다. 그는 정신적으로 건강하기에 남과 비교하면서 자기 처지를 비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너진 자기의 정신을 곧추세워야 합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싱은 여러 번 히말라야를 넘나들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몸도 약한 그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정신의 키를 산보다 높이면 어떤 산도 넘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다른 것 아닙니다. 底力입니다. 남들이 다 포기하는 때에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힘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물러터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남들보다 먼저 비명을 지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큰일났다고 말할 때에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이란 존재에의 용기(courage to be)입니다. 남과 비교하면서 괜히 우쭐거리거나 주눅들지 않고, 자기의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해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현실이 어둡다고 탓만 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작은 등불이라도 내거는 것이 믿음입니다. 물론 현실을 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오늘의 시인도 무도한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는 현실을 보면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를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서서 죄악 행하는 자를 칠꼬"(16)

하나님의 뜻을 시행하도록 힘을 위임받은 이들이, 받은 권력으로서 자기 잇속이나 차리고 힘없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현실 속에서 경건한 사람은 누구나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탄식은 절망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절망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악인의 결말이 어떠할지가 그의 눈에 훤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로 보지 않습니다.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렇기에 외적인 현실에 매여 전전긍긍하지 않습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17).

우리가 지금 새해의 출발점에 서있습니다. 새해에도 우리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위험이 두려워 길을 떠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넘어지기를 두려워하면 자전거 타기를 배울 수 없습니다.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지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려움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없다면 삶의 비약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개에게 쫓기는 닭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짤막한 두 다리로 죽자 하고 달아나다가 거의 잡힐 지경이 되면 혼신의 힘을 다해 지붕 위로 날아오릅니다. 위기가 없다면 닭이 지붕에 오를 생각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어려움이 예기되는 미래 앞에서 주눅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18-19)

우리 집 아이가 목소리가 큰 양세훈 목사를 보고 "스피커와 앰프 내장형"이라고 말해서 웃은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속에 든든한 반석을 마련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한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아는 사람이 어떻게 절망할 수 있겠습니까?

●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
저는 새해에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헛된 말로 여러분을 속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에게 현실을 현실로 직면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한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게 우리의 희망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김달진 선생의 <<山居日記>>라는 책에서 본 구절이 생각납니다. 대체로 이런 내용입니다. '비가 온다고 하여 뛰지 말아라. 뛰거나 걷거나 젖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천천히 걷다보면 비애는 적을 것이다.' 공감되지 않으십니까? 이게 생의 지혜일 것입니다.

새해에는 '힘들다', '미치겠다'…이런 말은 버리십시오. 오히려 '괜찮다', '재미있다', '신난다'…이런 말을 즐겨 사용하십시오. 말은 어떤 의미에서 운명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우리 삶을 결정합니다. 힘들 때마다 지금까지 함께 해주신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해에는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의 부족한 부분은 말없이 채워주고, 그가 잘한 것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기려주십시오. 누군가를 위해 바친 물질과 시간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을 하나님은 가장 귀한 예물로 받으실 것입니다. 올 한 해 나눔과 섬김의 일에 동참하는 기쁨이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기를 원합니다. 일년 삼백 예순 다섯 날 내내, 하늘의 기쁨과 평강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5년 01월 02일 15시 01분 22초